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요트 세계일주 97일째 윤태근씨-조선일보

구름위 2013. 4. 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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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미쳤어요] "지친 몸보다 외로움이 더 죽을맛"정세영 기자

요트 세계일주 97일째 윤태근씨
만나는 외국인마다 미친 거 아니냐며 놀라 만날 김치찌개 지긋지긋 졸다 빠져죽을 뻔하기도

▲ 작년 10월 부산 수영만에서 세계 일주를 떠나기 직전의 윤태근 선장. /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알유 크레이지(Are you crazy)?'라고 하데예."
만나는 외국인마다 "당신 미쳤느냐"고 한마디씩 한단다. '부산 사나이' 윤태근(48) 선장이
지난 10월 11일 전장 11.3m짜리 요트 '인트레피드(Intrepid)'에 몸을 싣고 부산에서 출발해, 약 4만233㎞ 세계 일주에 나선 지 15일로 97일째이다. <본지 8월 6일자 A27면, 10월 12일자 A26면 참조>

14일 어렵게 통화가 된 윤 선장은 "태국 푸껫에서 몰디브로 떠나는 길"이라며 "피부는 새카매졌고, 체중이 5㎏ 이상 빠졌지만 순간순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관 생활을 접고 '뗏목으로 태평양을 건너겠다'던 어릴 적 꿈을 좇고 있는 '요트맨'의 항해기를 들어봤다.

■못 먹고, 못 씻고, 못 자고

윤 선장은 일본~대만~홍콩~필리핀을 거쳐 지난달 29일 태국 푸껫에 도착했다.

망망대해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뜨거운 날씨에 쉽게 상하는 음식이 우선 문제였다. 항해 도중 80㎝ 정도 되는 다랑어를 여러 마리 잡았지만, 혼자 먹기에는 너무 컸다. "일부를 잘라 김치찌개에 넣어 먹고 다음 끼니때 꺼내 보면 쉰 냄새가 나더라"고 했다.

가족이 마련해 준 장조림·멸치볶음 등 밑반찬도 그래서 대부분 버렸다. 끝까지 남은 것은 "쉬어야 더 맛있다"는 김치 10㎏. 윤 선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식단의 대부분을 김치찌개로 채웠지만, 석 달이 지나자 "씹기도 싫을 정도"로 지겨워졌다고 한다.

잠자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트에 '오토파일럿(자동항해장치)'이 있지만, 항해 도중 여분으로 준비한 오토파일럿까지 모두 고장 나 며칠씩 잠도 제대로 못 자며 키를 잡아야 했다. 윤 선장은 "새벽에 갑판에 서서 졸다가 바다 밑으로 떨어질 뻔한 적도 많다"고 했다.

선상의 샤워법은 간단했다. 준비물은 2L 생수 한 통. 바가지로 바닷물을 퍼서 온몸을 구석구석 닦은 뒤 생수로 헹구는 식이다. 문제는 생수가 아까워 3~4일에 한 번 씻을까 말까 한다는 점. 윤 선장은 "안 씻는 게 내 전문"이라고 웃었다.


▲ 윤태근 선장은 14일 푸껫을 떠나 몰디브로 향했다. 그는“파도가 세게 치면 속이 뒤집힐 정도로 배가 요동쳐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사진은 푸껫에서 만난 일본인 선장이 기념으로 찍어준 것. /윤태근 선장 제공
■"시간도 돈도 문제"

윤 선장은 "푸껫 도착이 계획보다 보름 이상 늦어진 것이 더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 오키나와와 홍콩에서 태풍과 강한 몬순(계절풍) 탓에 예상 외로 열흘 이상 발이 묶였다.

푸껫에서도 2주 넘게 시간을 보냈다. 몰디브까지 보름 정도 가야 하는 긴 항해를 앞두고 배를 꼼꼼히 정비하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그는 "1월 말까지 몰디브에 가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바쁘다"고 했다. 몰디브에서 동부 아프리카를 지나는 동안엔 해적이 많아 다른 요트 4~5척과 선단(船團)을 꾸려야 위험을 줄일 수 있는데, 그러려면 1월 말이 적기라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재산'이 줄어드는 것도 걱정이다. 그는 이제껏 음식 및 요트 수리비로 500만원 이상을 썼다. '강요'에 의해 외국 공무원에게 뜯긴 현금도 50만원은 된단다. 그는 "가족에 주고 온 생활비 5000만원도 예상보다 쭉쭉 줄어들더라"며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 가족이 먹고살 생활비도 벌어야 한다"고 걱정했다.

■"가장 힘든 건 외로움"

윤 선장은 "육체적 고통이나 돈 문제 이상으로 힘든 것은 외로움"이라고 했다. 망망대해에서 말벗도 하나 없는 상황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다. 우두커니 바다를 보다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하는 후회로 몸을 떨기도 했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기도 했다고 한다. "세계 최초가 아니라서 아무도 안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 가족들은 나를 안 보고 싶어한다는 괜한 서운함까지 들었죠."

하지만 100일 가까이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며 그런 잡념들을 차츰 이겨내고 있다는 윤 선장이다. 그는 "인생에서 요즘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때가 있었을까 싶다"고 했다.

윤 선장은 세계 일주의 의미를 묻자, "부산에 돌아가서 따져도 늦지 않을 것"이라며 "일단 인생의 의미를 찾는 항해, 항해의 의미를 찾는 인생쯤으로 하자"고 했다. 이런 '요트맨'에게 기자는 "몸조심하라"는 인사밖에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