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③ 타이완에서 홍콩까지

구름위 2013. 4. 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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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③ 타이완에서 홍콩까지
화롄항서 궂은 날씨에 요트 요동 심한 멀미


오토파일럿 고장으로 몇시간씩 조종간을 잡고 야간 항해를 해야 했던 것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사진은 타이완 남단에서 홍콩으로 가는 항해 도중 바다 속으로 잠겨드는 태양을 바라본 모습.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③ 타이완에서 홍콩까지

오토파일럿 고장으로 몇시간씩 조종간을 잡고 야간 항해를 해야 했던 것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사진은 타이완 남단에서 홍콩으로 가는 항해 도중 바다 속으로 잠겨드는 태양을 바라본 모습.


타이완 화롄항에 도착한 지 둘째날. 화롄은 국제항으로 태풍이 와도 끄떡없다고 들었는데 와 보니 궂은 날씨에 요트가 정박하기에는 위험했다. 철선 옆에 묶어 놓은 인트레피드호가 마치 고무보트처럼 출렁거린다. 강풍에 요동치는 배가 철선쪽으로 얼마나 비벼댔는지 스티로폼으로 된 휀다(배의 파손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원통형 완충재)가 납작하게 됐다.

타이완 동쪽 해안선 마을불빛 보며 남하
조타기 오토 파일럿 고장 항해 어려움
선실입구 앉아 깜빡 졸다 뒹굴 뻔하기도

파도가 앞쪽에서 계속 밀려 왔다. 비옷으로 갈아입고 나가 이웃 배에서 빌린 휀다를 더 갖다 대었다. 배 위에 서 있는 것 만으로 멀미가 났다. 튼튼한 밧줄을 꺼내 몇 가닥 더 단단히 묶었다.

화롄항 정박 넷째날. 기상을 체크했다. 파고는 2~3m로 여전했지만 바람의 방향이 아주 좋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물탱크에 물을 가득 채우고 연료도 충분히 보충했다. 항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자동조타에 맞춰놓고 계류줄이며 휀다를 정리해 튼튼히 묶었다. 등대를 돌아 동쪽으로 얼마쯤 벗어났다. 하늘은 흐렸고 3m 정도의 너울파도가 밀려왔다. 선선한 가을 동풍이 불고 있었다. 배를 바람을 향해 달리게 해놓고 메인 세일을 올렸다. 방향을 돌려 배를 남으로 향하게 한 다음 메인 세일을 바람의 각도에 맞추어 조정해 주고 짚세일(보조 돛)을 펼쳤다. 배가 미끄러지듯 남으로 잘 내려갔다. 남으로 남으로 대만의 남쪽 끝단을 향해 내려갔다.

타이완 동쪽 해안선을 따라 5㎞쯤 떨어져 평행선을 이루며 내려갔다. 해안선에는 끊임없이 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타이완은 육지의 대부분이 산이고,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평지마다 마을이 있는 것 같았다. 쿠로시오 난류가 가장 세찬 지역을 통과했지만 해류의 영향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해류가 강한 곳에서는 2노트, 보통은 1노트 정도였다.

노트북 GP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화면이 크고 또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긴 하지만 안정성이 높지 않은 게 문제다. 반면 해상용 GPS는 안정성이 높아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없었다. 역시 해상전문용 장비가 좋다. 하지만 그 장비에 세계지도를 다 넣으려면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간다. 우리나라 주변 해도만으로도 30만원이 넘으니까 1천만원이 넘게 들어야 세계일주에 필요한 해도를 GPS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새벽녘에는 오토파일럿이 작동을 멈추는 바람에 배가 제멋대로 달리고 있었다. 아직 3일이나 더 가야 하는데 자동조타기 없이는 항해가 곤란하다. 배를 세우고 수리를 시도했다. 조타기를 완전히 분리해 내고 그 안쪽에 붙어있는 오토파일럿을 떼어냈다. 다행히 여분의 장비가 한대 더 있어 수리를 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만 남쪽 끝단을 돌아 홍콩 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주문한 메인 세일이 홍콩에 있기 때문에 들렀다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은 완전 서쪽이다. 일주 경로상 남으로 내려가야 하는 입장에서 서쪽으로 600㎞ 그러니까 3일간의 항해를 허비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정도 거리면 필리핀에 도착할 수 있는 정도다. 필리핀을 경유하면 말레이시아까지 짧은 시간에 편안하게 갈 수 있다. 하지만 홍콩을 거쳐가면 베트남 다낭까지 5일, 말레이시아까지는 다시 8일이 소요된다. 필리핀으로 내려 갈까 하고 몇번이나 망설여졌다.

저녁 무렵 바람이 약해지더니 뒷바람으로 변했다. 펄럭거리던 메인세일이 보기 좋게 가로로 쫙 찢어지고 말았다. 진작에 내렸어야 되는데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홍콩에 도착하면 새 메인세일로 교체할 예정이기 때문에 별 문제는 아니었다.

다음날 새벽 오토파일럿이 다시 고장나고 말았다. 배가 제멋대로 돌아간다. 여분의 기계가 없어 이제부터는 직접 조종간을 잡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혼자 항해하면서 가장 좋은 않은 케이스에 걸렸다. 둘만 되어도 교대로 항해할 수 있지만 혼자서 만 하루 이상을 잠시도 쉬지 못하고 배를 직접 조종해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오토파일럿 트러블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따금씩 내부에서 날카로운 소음이 나길래 한번 분해해 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었었다. 화롄에 하루를 더 머물더라도 수리부터 했었어야 하는데 설마설마 하다가 고장이 나고 만 것이다. 누구를 탓하겠나?

몇 시간을 조종간을 잡고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24시간 이상 버텨낼 체력도 없고 밤에 몰려올 잠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배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고장난 3개의 오토파일럿을 분해해놓고 끼워 맞추기를 시도했다. 낡은 벨트를 힘들게 끼워넣었는데 작동스위치를 넣지않아도 꽉 조여서 방향조절이 됐다. 가끔식 벨트가 헛돌긴 했지만 작동이 되었다.

"제발 하루만 버텨 다오!"

이런 내 기원 덕분인지 오토파일럿은 그런대로 순조롭게 작동됐다. 주위에 어선들이 보였다. 선실 입구에 앉아 보초를 서다 깜박 졸았다. 하마터면 선실 아래도 굴러떨어질 뻔했다. 혼자서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나흘째다. 곳곳에 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곳 배들은 항해하는 배들이 아니어서 사방 주시를 잘 안하기 때문에 깜빡 졸다가는 충돌할 것 같았다.

화롄항을 나선지 닷새째. 아침 무렵 홍콩에 접근했다. 옅은 해무 속에 육지가 모습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대형 상선들도 많아졌고 밤새 작업한 어선들도 포구로 서둘러 돌아가고 있었다. 목적지인 홍콩로얄요트클럽에 당도했다. 화롄으로부터 총거리 800㎞, 4박5일간의 만만치 않은 항해였다. 홍콩은 입항절차가 간단해 여권에 스템프를 받는 것으로 끝났다. 이곳 요트클럽은 방문요트에게 14일간 무료로 정박을 하게 해주고 근사한 수영장과 사워장 사용도 무료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부산처럼 폰툰시설이 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앵커 부이에 배를 묶어 정박하는 것이었다.

11월 4일 15:00경 대만 화련항을 출발,
약 500마일을 항해하여 11월 8일 08:00경 홍콩 로얄요트클럽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합니다. (한국까지 남은 거리가 500마일 줄어들었습니다.^^)

이번 항해 때에는 오토파일럿의 고장으로 고생을 좀 하셨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잠깐 휴식하시며 요트 정비후 베트남으로 출발예정..


현재까지 항로
10/11 11:05 부산 출발 10/12 15:55 일본 나가사키 데지마항 도착
10/14 16:00 나가사키 출발 10/16 17:00 아마미오 도착
10/17 07:00 아마미오 출발 10/18 11:00 오키나와 기노완 마리나 도착
10/27 11:00 오키나와 출발 10/28 15:30 미야꼬지마 섬 평랑항 도착
10/29 05:00 미야꼬지마 출발 10/30 08:00 이시가키 섬 도착
10/31 06:50 이시가키 출발 11/01 10;45 대만 화련 항 도착
11/04 15:00 대만 출발 11/08 08:00 홍콩 로얄요트클럽 도착

즐겁고 안전한 항해 계속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