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장의 요트 세계일주기] ① 부산에서 오키나와까지

구름위 2013. 4. 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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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5천 마일 1년여 대장정 첫 물살 가르다


부산을 출발해 인도양, 대서양, 파나마운하를 거쳐 다시 태평양을 거슬러 부산으로 돌아오는 장장 1년, 총거리 2만5천 마일의 고난의 대장정.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요트 단독 세계 일주에 도전하는 부산 출신 윤태근(47) 선장의 역사적인 세계일주 항해기를 격주로 연재한다. 요트 한 척에 몸을 맡긴 윤 선장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지독한 고독과 싸우고 험난한 바다와 사투를 벌이며 망망대해 위를 흘러가고 있다.

출발 당일 중압감에 멍한 기분
주변 위험물 살피느라 잠 설쳐

돌고래떼 만나 쿠로섬 함께 남하
태풍 탓 오키나와서 닷새 묶여

10월 11일 오전 11시 부산 해운대 수영만 요트경기장. 무사 항해를 빌며 손을 흔드는 이들을 뒤로 하고 배를 몰아 세계의 바다를 향해 첫 물살을 갈랐다. 항해의 첫 목표는 일본 나가사키 데지마 항으로 정했다. 첫 걸음이니 만큼 무리하지 않고 나 자신을 배와 바다에 적응시키기 위해 가까운 코스로 정했다.

나가사키로 가는 뱃길은 일단 쓰시마(대마도) 북단으로 접근한 뒤 섬의 서안을 지난다. 이어 남단에서 왼쪽으로 10도쯤 변침(배의 침로로 변경함)한 뒤 큐슈 서쪽 해안선을 따라 90마일쯤 내려가는 총 항해거리 150마일의 코스다.

적당한 바람과 확 트인 가을 하늘이 맞는다. 하지만 마음은 밝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떠나는 첫날이 제일 어려울 줄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마음이 무거울 줄은 몰랐다. 그저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쓰시마의 형상이 변해가는 것만 바라보고 있다. 나가사키까지의 항해는 모든 짐들을 내려놓고 가는 항해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혼자서 장거리 항해에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수면 문제이다. 잠은 자야하는데 견시(주변에 위험물이 없는지 살핌)는 24시간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양으로 접어들면 이런 문제는 조금 줄어들지만 지금처럼 상선과 어선들이 많은 곳에서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잠을 어떤 식으로든 조금씩 안전하게 자는 것이 혼자서 하는 장거리 연안 항해에 있어서 최고의 테크닉일 게다.

내 마음이야 어떻든 배는 달렸다. 나가사키가 가까워지면서 바람이 약해져서 속도가 뚝 떨어졌다. 도착시간에 맞추기 위해 시동을 걸어서 힘을 보탰다. 엔진 사용시간이 늘어나면 그 만큼 비용부담도 커지기 때문에 조금 늦더라도 연료비를 아껴야 될 것 같았다.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출발한지 28시간30분이 걸려 12일 오후 3시30분 나가사키 데지마항에 무사히 접안하였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하버 사무실에 찾아가 계류신청을 했다. 외국요트가 방문하면 7일간 무료라며 등록비로 500엔만 지불하라고 하였다. 전기며 수도시설도 잘돼 있었다. 이미 다국적 요트가 3척 머무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정보도 얻을 겸해서 이웃 계류라인으로 놀러갔다. 먼저 캐나다 국기가 달려있는 레브호에 포도 한 송이를 들고 방문했다. 마이클(67)씨와 발바라(63)씨 부부는 9년 전 1976년식인 34피트 요트를 구입하여 현재 9년째 요트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캐나다 밴쿠버가 고향인 이들 부부는 지난 2000년 캐나다를 출발, 멕시코-남태평양-오스트레일리아-마이크로네시아-말레이시아-보르네오-필리핀-일본 쓰시마-부산을 거쳐 이곳 나가사키에 왔다고 했다. 9년 간에 걸쳐 남태평양과 동남아시아를 돌고 있는 것이었다. 왜 요트여행을 선택했냐고 묻자 "freedom(자유)"이라고 대답했다. 이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대만과 홍콩 쪽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하였다.

2일간 나가사키에 머문 뒤 14일 오후 오키나와를 향해 출항했다. 북서풍의 영향으로 저녁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두꺼운 겨울점퍼를 꺼내 입었다. 오키나와까지 가려고 항로를 잡았지만 아무래도 징검다리 크루징을 하는 쪽이 안전할 것 같았다. 이즈음 시즌은 태풍이 발생하면 진행속도가 아주 빠르기 때문에 기상을 유심히 관찰하며 섬과 섬 사이를 숨어서 내려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나가사키를 나와 큐슈 본토를 따라 내려갔다. 야간에는 상선과 어선이 거의 없어 항해가 순탄했다. 레이더를 켜놓고 선실 내부에서 책도 읽었다.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① 부산에서 오키나와까지

요트 세계일주에 도전하는 윤태근 선장이 지난달 11일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을 출발하기 직전 본보 깃발이 나부끼는 인트레피드호 앞에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가고시마 입구에서 해가 떠올랐다. 야쿠섬에 들렀다 가겠다고 허가를 받았지만 그냥 통과하기로 했다. 태풍 시즌이니 만큼 날씨가 좋을 때 많이 가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쿠로섬 동편으로 약 5노트의 속도로 남하해 내려갔다. 2m쯤 돼 보이는 돌고래 떼가 인트레피드호와 나란히 달려주었다.

가고시마에서 남쪽으로 대만까지는 섬들로 연결돼 있다. 그 오른쪽으로 쿠로시오 해류가 북상한다. 가고시마 앞에서는 야쿠섬 앞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는 해류가 있다. 이즈음에는 약 4노트 정도로 흐른다고 했다. 하지만 쿠루시오의 역류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순류를 타고 속도를 조금 더 낼 수 있었다. 가고시마 남단에서 대만까지 쭉 이어져 있는 섬들을 따라 순조롭게 항해했다.

18일 동이 틀 무렵 인트레피드호는 오키나와 본섬에 접근해 있었다. 오키나와는 40마일 길이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섬이다. 태풍에 발목을 잡히는 바람에 오키나와 기노완 마리나의 크레인 시설 밑에서 5일간 정박했다.

22일에는 홍콩 국적의 캐터머랜(쌍동선) 요트를 찾아갔다. 영국인 아니씨는 2005년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출항, 파나마운하를 통과해 남태평양을 거쳐 한국을 방문했다고 했다. 그는 부산을 거쳐 고성 당항포에 들렀다가 소리도와 청산도를 방문했다. 마지막으로 제주 김녕항에 얼마간 머무르다 이곳 오키나와로 왔다며 반겼다. 그가 다녀온 곳은 5년 전 섬일주를 하면서 다 다녀왔던 곳이라 이야기는 술술 잘 풀려나갔다.

아니 씨 부부는 4년 동안 바다를 여행했다고 했다. 나도 지구를 한 바퀴 돌려고 나섰다고 하니 기간을 얼마나 잡느냐고 물었다. 1년 정도 생각한다고 대답했더니 "너무 촉박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씨는 홍콩에 자신이 정박하고 있는 마리나에 가면 외국인은 정박료가 무료고 편의시설도 아주 좋다고소개해줬다. 애초 홍콩을 경유지에 넣었다가 너무 둘러가는 것 같아 코스에서 뺐는데 갑자기 홍콩이 가보고 싶어졌다. 아니 씨의 제이드호와 함께 항적을 그리며 내려가면 훨씬 즐거운 항해가 될 것 같아서이다.

글·사진=윤태근(CAFE.DAUM.NET/YOONTAEG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