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⑧ 몰디브에서 오만 살랄라까지

구름위 2013. 4. 1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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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떼가 배의 선수에 가까이 붙어 달리고 있다.




1월 27일. 몰디브에서 18마일 떨어진 북섬 군도의 소재지가 있는 섬으로 갔다. 그곳에서 식료품을 구입했다. 점심을 사먹고 인터넷을 시도했는데 정말 어려웠다. 3시간 가량 지루한 싸움 끝에 항해기를 올렸다.

1월 31일 아침 7시에 몰디브 울리간을 출발하여 오만의 살라라로 향했다. 총 항해거리는 1천256마일. 모두 8척의 요트가 오늘 살라라를 향해 출발한다고 한다. 약간 약한 듯한 앞바람을 돛에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각도를 잡아 나아갔다. 주돛과 제노아, 그리고 인너 짚세일(앞쪽에 두 개있는 보조 돛 중에 마스트에 가까운 작은 돛)까지 펼치고 바람을 받아 가는데도 속도가 5노트를 넘지 못했다. 바람이 약간 약한 듯해서 가끔 속도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으나 하루 동안 122마일을 왔다.

항해 중 돌고래와 조우
궂은 날씨 선실에 물 차
틈새 메우며 사투 벌여



2월 2일. 해거름에 돌고래 떼가 나타나서 1시간 가량 같이 달렸다. 녀석들은 배 앞에서 선두를 바꾸어가며 배의 선수에 아주 가까이 붙어서 달렸다. 바우스프리트(배 앞쪽에 튀어나온 부분)에 앉아 한참동안 유영하는 모습을 보았다. 숨을 쉬기 위해서 등을 내밀 때 뒤 꼭지에 붙은 숨구멍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숨구멍은 500원짜리 동전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2월 5일. 바람이 좋아서 139마일을 줄일 수 있었다. 남은 거리 626마일. 드디어 절반을 넘어섰다. '기념으로 맥주라도 한 캔 하면 안 될까?' '항해 중에는 절대 안 되는 거 알지?' '딱 한 캔인데 어때서!' '한 캔 한 캔 하다가 나중에 취할 때 까지 마시면 어떻하려구 그래!' '허긴! 나두 그게 걱정이야!' '그래! 그러니 쥬스나 한잔하라구!' 허나 목을 타고 내려가는 짜릿함은 없었다. '술은 술이요! 쥬스는 쥬스롤세!'

2월 7일. 130마일을 또 줄였다. 365마일 남았다. 간밤에는 선실에서 잠깐 눈을 붙일 때에도 담요를 덮어야 했다. 북위 14도까지 올라왔다. 지난 밤부터 물탱크에 저장되어있던 물이 바닥이 났다. 하지만 식수로 사용되는 물은 페트병에 여러 병 남아 있다. LP가스도 떨어져 비상용 버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몰디브에서 구입한 과일도 모두 동이 났다. 몰디브에서 살라라 구간은 예상 밖으로 바람이 거의 없다. 벌써 2일째 거의 무풍이다. 엔진 사용시간이 늘어났다. 계속 바람이 불어주지 않는다면 연료가 걱정이다.

2월 8일. 이제 남은 거리는 250마일. 푸켓에서 몰디브까지 1천550마일 항해보다 훨씬 더 길게 느껴진다. 이제 긴 항해는 2구간이 남았다. 대서양을 건너가는 것이 그 첫 번째인데 거리는 약 2천300마일이다. 다음은 이번 항해에서 제일 긴 구간인 갈라파고스에서 마르케사스까지 약 3천마일이다.

정오가 막 지나자 하늘이 온통 먹구름이다. 일단 주돛은 2단계로 축범시켰다. 1시간쯤 지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굵어졌다. 비구름들로 인해 사방이 어두워지고 시야가 급격히 제한되었다. 거친 북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바다는 순식간에 백파로 뒤덮였다. 거친 풍랑에 배는 사정없이 뒤흔들렸다.

방향을 조금 왼쪽으로 돌리면 항해가 편안하지만 그곳은 소말리아 쪽이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해적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트도 항해하기 힘든 판에 조그만 모터보트가 나타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선실에서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빌지(선실 바닥 아래에 고인 물)를 확인해보니 곧 선실 바닥 위로 넘칠것 같았다. 빌지 펌프를 작동시켰다. 그런데 하필 이럴 때 고장이 났다. 선실 앞쪽에 두었던 예비펌프를 찾으러 앞으로 갔다. 파도가 배를 들었다가 놓을 때는 몸이 잠시 들렸다 떨어졌다. 예비펌프를 찾아 전선을 연결하고 겨우 호스를 끼웠다. 1t이 넘는 빌지를 퍼내고는 몸도 마음도 녹다운이 되었다. 배를 바람에 흘러가게 놓아둔 뒤 콕핏 아래 선실에 몸을 눕혔다.

2월 9일. 강풍은 잦아들지 않고 계속됐다. 이상하게 물이 자주 차올랐다. 급기야 새벽녘에는 빌지 펌프를 작동시키는 데도 좀체로 줄어들지 않았다. 미친 듯이 선실 바닥을 들어내고 물이 들어오는 곳을 확인했다. 바닷물은 앵커체인을 보관하는 체인로커에서 넘쳐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파도가 선수를 계속 덮쳐오고 데크 위쪽에 있는 체인로커 도어 쪽으로 물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체인로커에서 물이 선실로 들어오지 못하게 밀실 격벽으로 막혀있어야 하는데 출발 전에 배선작업을 할때 전선이 들어가는 구멍만 뚫어야 하는데 작업하는 사람이 그 칸막이를 뜯어내어 버린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했다. 몸과 배를 안전고리로 연결해놓고 몸을 바닥에 밀착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일단 키친 타올로 그 틈을 막아보자! 완전하게 막지는 못해도 물이 들어오는 양은 줄일 수 있을거야!'

두 발은 양쪽으로 배의 난간을 지지하고 몸을 바짝 바닥으로 엎드려야 했다. 바닷물이 차갑지는 않았지만 뒤이어 부는 강풍에 체온이 금방 내려갔다. 1시간 가까이 키친 타올을 잘게 뜯어 틈새를 메웠다. 물이 흘러들어오는 양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이 이상 어떻게 해볼 재간이 없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뒤쪽 침상으로 들어가 누웠다. 몸을 좀 쉬게 해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110마일을 항해하여 왔다. 내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파도와 강풍은 밤이 깊어갈 무렵에서야 많이 누그러졌다. 바다는 나에게 더 열심히, 더 꼼꼼하게 준비하고 다닐 것을 충고했다. 그리고 파도와 바람을 뒤로 물렸다.



2월 10일. 꼭두새벽에 오만 연안에 접근했다. 육지 불빛들이 보였다. 연안과는 불과 10여마일 거리이다. 해안선을 따라 35마일 쯤 가면 목적지인 살라라가 있다. 긴 항해가 끝나가고 있다. 글·사진=윤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