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10 아덴항에서 에리트레아 마사와까지

구름위 2013. 4. 1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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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항 묘박지 앞의 풍경. 호수같이 잔잔해 보이지만, 풍랑이 꽤 거세게 일어 고무보트로 이동하다가 옷이 흠뻑 젖기가 예사였다.



아덴항 묘박지 앞의 풍경. 호수같이 잔잔해 보이지만, 풍랑이 꽤 거세게 일어 고무보트로 이동하다가 옷이 흠뻑 젖기가 예사였다.






아프리카 신생국 에리트레아 마사와 항의 시장.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밟은 느낌이 새롭다. 시장은 활기찼고 열대 과일은 싱싱했다.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10 아덴항에서 에리트레아 마사와까지




2월 25일. 2박3일 동안 에어메일(해상에서 햄라디오을 이용해 메일을 주고 받는 시스템)을 설치하고 세팅하느라 온 힘을 쏟아 부었지만 결국 세팅에 성공하지 못했다. 수에즈 운하 입구에 있는 이집트의 아부틱마리나에서 세팅을 다시 하기로 하였다.

강풍으로 묘박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고무보트를 타고 이동할 때면 파도로 옷을 버리는 것이 예사였다. 날카로운 바람이 요트 돛대의 지지대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틀 후부터는 홍해 입구 쪽이 강한 역풍으로 바뀐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다소 강하기는 하지만 지금 불고 있는 순풍을 반드시 이용해야만 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덴 항에서 일 주일 이상 머물러야 할지도 몰랐다.

스페인 지브롤터에 4월 20일께 도착해야 부담없이 대서양으로 출발할 수 있다. 남은 기간은 55일이다. 홍해를 열흘 정도에 통과한다고 생각했는데 더 많이 지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어쨌던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없다. 강풍 역풍을 따질 때가 아니다.

오후 4시께 닻을 끌어올리고 아덴 항을 빠져나왔다. 거친 날씨와 야간 항해는 오히려 소말리아 해적 위험지역인 이곳을 통과하는 기회인지도 몰랐다. 제 아무리 해적이라도 작은 배로는 높은 파도에 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정 늦을까 급하게 운항 시작
말 걸어오는 낚싯배 애써 외면
항해레이더 작동 안돼 밤 새워
파도 저항 극심 정상속도 못 내

항만 부근에서 낚싯배가 따라와서 말을 걸었다. 루어낚시를 달라고 하였다. 하나 밖에 없어서 안 된다고 했더니 자기 것과 바꾸자고 하였다. 100원짜리 낚시 바늘을 1만원이 넘는 루어바늘과 바꾸자고 하다니 참 순진한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배는 계속 요트 옆에 붙어 달리며 말했다. "고기 사시오!" "필요 없어요!"

이번에는 물을 달라고 하였다. 생수 한 통을 던져 주었는데 따라오면서 또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말을 받아주면 언제 끝날지도 모를 것 같았다. 얼굴은 앞을 보는 체 그들을 외면하면서 눈만 도다리처럼 그들의 행동을 감시했다. 그랬더니 잠시 후 배를 돌려 돌아갔다. 또 다른 배 한 척이 다가와 고기를 사라고 하길래 5분 정도 도다리 눈을 하고서 달렸더니 돌아갔다. 아주 효과가 있었다.

오토파일럿이 부자연스럽게 삐걱거렸다. 중심이 뒤틀린 모양이었다. 윈드베인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에어메일 시스템에 목을 메다 보니 항해 장비를 충실히 점검하지 못했다. 1시간 쯤 갔을까 갑자기 레이더가 작동하지 않았다. 예전에 해수가 들어가 고장난 적이 있어 수신부를 뜯어 뚜껑을 열고 확인했지만 별 이상이 없었다. 일단 가다가 역풍이 불면 적당한 곳에 닻을 내리고 수리하기로 하고 항해를 계속했다. 제대로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선실 입구에 앉아 졸면서 밤을 보냈다.

2월 26일. 낮게 깔린 구름 아래로 홍해 입구의 섬들이 보였다. 하늘은 흐리고 사방은 백파로 가득했다. 낮 동안 레이더 송수신부를 뜯어놓고 온갖 노력과 머리를 짜내었지만 허사였다. 홍해 중간의 항로를 가로질러 한참을 달렸다. 오후 3시경 에리트레아 해안이 보였다.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를 오게 되다니. 그것도 요트를 타고 말이다. 묘한 감정이 잠시 휩싸였다. 한편으로는 머리가 텅 빈 것 같아 내가 현재 뭘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도 하였다.

어느 순간 레이더가 저절로 작동되었다. '이 야호!'많이 기뻤다. 혼자서 하는 항해에 있어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자동조타기와 레이더 덕분이기 때문이다.

밤이 되자 잠시 주춤하던 바람이 서서히 일어나더니 삽시간에 백파로 뒤덮혔다. 파도 저항 때문에 배가 속력을 내지 못했다. 앞쪽에서 하얀 포말이 뱃전을 넘어 날아 왔다. 주변에 피항할 수 있는 곳이 있는 지 해도를 점검했다. 8마일 아래 쪽에 묘박할 만한 장소가 한 곳 보여서 일단 방향을 그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밤중에 낯선 곳을 찾아가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무엇보다 입항 절차가 까다로워 사람을 지치게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생각 끝에 배를 다시 돌려 최대한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이 시기 홍해는 북서풍이 잦아 어차피 감내해야 할 시련이었다. 지중해 쪽도 역시 북서풍이 자주 분다고 한다. 홍해와 지중해를 통과하는 것이 이번 항해에 있어 제일 힘든 항해가 될 것 같았다.

2월 27일. 새벽이 가까워지면서 바람이 좀 누그러졌다. 그러나 북서풍과 함께 앞에서 달려오는 너울이 속도를 내지 못하게 배를 저지했다. 3~4노트의 속력이나마 감사하게 생각하며 올라갔다. 바람이 더 강해지면 이마저도 어렵기 때문이다.

에리트레아 연안을 붙어서 거슬러 올라가는데도 어선이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바다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하루 동안 상선만 2척 보였을 뿐 그 어떤 배도 보지 못했다.

2월 28일. 항로를 밝혀주던 만삭인 달이 새벽에 구름에 가렸다. 에리트레아 마사와 항까지는 70마일을 남겨두고 있다. 파고는 1m 정도에 바람은 초속 7m 정도로 달리기에 적당했다. 2월 홍해의 해류는 주로 북쪽으로 0.5노트로 흐른다고 하였다. 그러나 연안은 반대로 역류가 되어서 남으로 흘렀다. 연안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트레피드호는 역류와 역파와 역풍을 뚫고 올라가야 하였다.

육지에 가까이 접근하면서 옅은 안개가 끼었고 바람은 잔잔해졌다. 오후 5시께 아프리카 에리트레아 마사와 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고무보트를 내려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