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이야기/요트 세계일주

윤태근 선상의 요트 세계일주기] 12 이집트 수에즈에서 이스라엘 애슈켈론까지

구름위 2013. 4. 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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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운하 통과하니 잔잔한 지중해가 반기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 마침내 지중해를 항해한다.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바람을 안은 돛은 유럽을 항해할 희망에 한껏 부풀었다.




수에즈 운하 중간 기착지 이스마이리아 마리나에 도착하여 스웨덴 요트에 나들이를 가서 한참을 놀았다. 오른쪽 부부는 노르웨이에서 왔다.

2010년 3월 12일. 수에즈운하 입구 요트클럽에 도착하였다. 한국에서 2009년 10월 11일에 출발하여 5개월 만에 수에즈운하에 도착한 것이다.

이 곳에서 20일 간 머물면서 미뤄왔던 배의 잔 고장을 수리했고 기상 시스템도 재점검하였다. 배도 지치고 사람도 지쳐 잠시 항해를 쉴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무척이나 나를 힘들게 했다. 특히 자금 문제에 있어서는 대책이 없었다. 결국 항해를 쉬고 한국에서 자금을 모아 오기로 결심하고 짐을 꾸렸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요트 문을 걸고 나오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 발길을 돌릴 수는 없다!' 물론 항해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쉬었다가 다시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그 동안 혹시 마음은 변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상념에 갇힌 나는 배 위에서 그렇게 고민에 잠겼다.

이 때 아무런 조건 없이 항해 자금을 조금씩 도와주던 부산 협성종합건설㈜의 정철원 사장 얼굴이 떠올랐다. 단지 젊었을 때 태평양을 건너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로 나를 밀어주고 있는 분이었다.

'그래 어쨌거나 이분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해 보자! 그래도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 아이가? 집으로 가는 기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정 사장은 내 이야기를 듣고 두말 않고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늘 가슴을 짓누르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이 없어지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유 없이 웃음이 나왔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요트클럽의 이집트 사람들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수에즈운하를 앞에 두고 오래 있더니 저 사람 기어이 미쳤구나!' 나는 새로운 항해 계획을 짜느라 살짝 미쳐 있었다. 즐겁게 미쳐있었다.

2010년 3월 30일. 수에즈 해군에서 요트 항해를 잠시 제지하여 하루 동안 더 기다려야 했다.

3월 31일. 아침부터 부산하게 출발을 준비했다. 수에즈에 머무른 지도 20일이 되었다. 수에즈운하의 첫 구간을 항해할 파일럿이 도착하였다. 이름은 샤반이었다. 얼핏 형님처럼 보였는데 나보다 10살이나 아래였다.

수에즈운하는 그 총 길이가 90마일인데 운하 가운데 큰 호수(그레이트 비틀)와 작은 호수(티마샤)가 있다. 작은 호수 북쪽 해안에 이스마이리아 요트클럽이 있는데 그 곳이 중간지점으로 오늘 우리가 항해해야 할 첫 구간이다.

운하의 폭은 200m였지만 실제로 항해할 수 있는 폭은 100m 정도가 전부였다. 거대한 배와 불과 몇 십 m 간격을 두고 통과하였다. 선저 모양이 좋지 않은 배와 교행할 때는 인트레피드의 선수가 거의 45도쯤 하늘로 향했다가 아래로 처박혔다. 샤반과 나는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고 둘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배는 순류에 힘입어 8.5노트를 기록했다. 샤반이 기분이 좋아 입이 귀에 걸렸다. 빨리 집으로 돌아 갈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5시께 이스마이리아 마리나에 도착했다. 스웨덴 요트에 방문했는데 이미 노르웨이 부부가 먼저 와 있었다. 그룹 '아바'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노래를 들려주었다. 진토닉 4잔을 얻어 마시고 2시간을 기분좋게 놀았다.

이곳에서 바로 떠나는 요트는 독일 요트와 인트레피드 뿐이고 다들 며칠 머물면서 피라미드를 구경하러 간다고 하였다. 출발하는 독일 요트가 이스라엘에서 최고로 저렴하고 편리한 마리나를 안다고 하니 안 따라 갈 수가 없다.

4월 1일. 옆에 정박한 스웨덴 요트 블루문의 프로펠라에 로프가 감겨 괜히 몇 마디 거들다가 물에 들어가 해결해주었다. 고맙다고 드라이진 한 병과 섞어서 마시는 음료를 주었다.

밤 8시께 유람선에서 켜놓은 조명과 도시 불빛이 어우러져 한껏 들떠 있는 포트사이드에 당도했다. 이스라엘까지 같이 가기로 한 독일 요트를 기다리기 위해 속도를 3노트 정도로 낮추었다.

독일 요트의 커플 중 남자는 문신을 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여자는 헤어 디자이너라고 했다. 사업을 친구에게 맡기고 7년 째 항해 중이란다. 2011년에 독일에 돌아갈 예정이라길래 왜냐고 물었더니 그때 쯤 모아둔 돈이 바닥날 거라고 한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느라 긴장한 탓인지 몹시 피곤했다. 눈을 좀 붙여야겠는데 어선들이 너무 많아 레이더 항해가 되지 않았다.

지중해에 들어왔는데 너무 밋밋하다. 야간에 들어와서인지 꼭 몰래 잠입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지만 이곳은 지중해다. 달이 참 밝았다. 계란 노른자 같은 달이었다. 바람이 약해서 엔진을 같이 사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꼬박 꼬박 졸면서 밤을 새웠다.

4월 2일. 옅은 안개 속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배는 간밤에 내린 이슬로 갑판이 흠뻑 젖었다. 밤에는 옷을 겹겹이 껴입었는데도 추웠다. 빨리 싸늘한 날씨에 몸을 적응시켜야 한다. 이 지역은 북위 31도로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낮 12시께 이스라엘 수역으로 들어왔다. 이스라엘 해군은 지금까지 어느 나라 보다 더 정확하게 배의 정보를 요구해왔다. 진땀을 흘리면서 적절한 단어를 짜내어서 대화하였다. 이집트에서 해안선을 따라 가다보면 가자지구가 나오는데 그 가자지구를 멀리서 돌아가야 하고 또 경계선 쪽에 유전이 하나 있어 요트를 돌아가게 유도했다. 독일 요트는 총을 소유하고 있어 입항이 거절되었다. 그들은 터키로 갈 것이라고 했다.

최대한 속력을 내었지만 목적지인 애슈켈론 마리나를 10마일쯤 남겨두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야간 입항이 안된다고 했다가 오후 8시까지 입항하는 조건으로 받아주었다. 애슈켈론 마리나에 도착했다. 30분 정도 보안검색을 마치고 출입국 수속을 마쳤다. 이스라엘에 온 목적을 묻는 질문에 '투어'라고 대답했더니 여직원이 여권을 건네주며 예쁘게 웃었다.

글·사진=윤태근(cafe.daum.net/yoontaegeun)
2010년 3월 12일. 수에즈운하 입구 요트클럽에 도착하였다. 한국에서 2009년 10월 11일에 출발하여 5개월 만에 수에즈운하에 도착한 것이다.

이 곳에서 20일 간 머물면서 미뤄왔던 배의 잔 고장을 수리했고 기상 시스템도 재점검하였다. 배도 지치고 사람도 지쳐 잠시 항해를 쉴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무척이나 나를 힘들게 했다. 특히 자금 문제에 있어서는 대책이 없었다. 결국 항해를 쉬고 한국에서 자금을 모아 오기로 결심하고 짐을 꾸렸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요트 문을 걸고 나오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 발길을 돌릴 수는 없다!' 물론 항해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쉬었다가 다시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그 동안 혹시 마음은 변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상념에 갇힌 나는 배 위에서 그렇게 고민에 잠겼다.

이 때 아무런 조건 없이 항해 자금을 조금씩 도와주던 부산 협성종합건설㈜의 정철원 사장 얼굴이 떠올랐다. 단지 젊었을 때 태평양을 건너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로 나를 밀어주고 있는 분이었다.

'그래 어쨌거나 이분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해 보자! 그래도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 아이가? 집으로 가는 기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정 사장은 내 이야기를 듣고 두말 않고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늘 가슴을 짓누르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이 없어지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유 없이 웃음이 나왔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요트클럽의 이집트 사람들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수에즈운하를 앞에 두고 오래 있더니 저 사람 기어이 미쳤구나!' 나는 새로운 항해 계획을 짜느라 살짝 미쳐 있었다. 즐겁게 미쳐있었다.

2010년 3월 30일. 수에즈 해군에서 요트 항해를 잠시 제지하여 하루 동안 더 기다려야 했다.

3월 31일. 아침부터 부산하게 출발을 준비했다. 수에즈에 머무른 지도 20일이 되었다. 수에즈운하의 첫 구간을 항해할 파일럿이 도착하였다. 이름은 샤반이었다. 얼핏 형님처럼 보였는데 나보다 10살이나 아래였다.

수에즈운하는 그 총 길이가 90마일인데 운하 가운데 큰 호수(그레이트 비틀)와 작은 호수(티마샤)가 있다. 작은 호수 북쪽 해안에 이스마이리아 요트클럽이 있는데 그 곳이 중간지점으로 오늘 우리가 항해해야 할 첫 구간이다.

운하의 폭은 200m였지만 실제로 항해할 수 있는 폭은 100m 정도가 전부였다. 거대한 배와 불과 몇 십 m 간격을 두고 통과하였다. 선저 모양이 좋지 않은 배와 교행할 때는 인트레피드의 선수가 거의 45도쯤 하늘로 향했다가 아래로 처박혔다. 샤반과 나는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고 둘은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배는 순류에 힘입어 8.5노트를 기록했다. 샤반이 기분이 좋아 입이 귀에 걸렸다. 빨리 집으로 돌아 갈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5시께 이스마이리아 마리나에 도착했다. 스웨덴 요트에 방문했는데 이미 노르웨이 부부가 먼저 와 있었다. 그룹 '아바'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노래를 들려주었다. 진토닉 4잔을 얻어 마시고 2시간을 기분좋게 놀았다.

이곳에서 바로 떠나는 요트는 독일 요트와 인트레피드 뿐이고 다들 며칠 머물면서 피라미드를 구경하러 간다고 하였다. 출발하는 독일 요트가 이스라엘에서 최고로 저렴하고 편리한 마리나를 안다고 하니 안 따라 갈 수가 없다.

4월 1일. 옆에 정박한 스웨덴 요트 블루문의 프로펠라에 로프가 감겨 괜히 몇 마디 거들다가 물에 들어가 해결해주었다. 고맙다고 드라이진 한 병과 섞어서 마시는 음료를 주었다.

밤 8시께 유람선에서 켜놓은 조명과 도시 불빛이 어우러져 한껏 들떠 있는 포트사이드에 당도했다. 이스라엘까지 같이 가기로 한 독일 요트를 기다리기 위해 속도를 3노트 정도로 낮추었다.

독일 요트의 커플 중 남자는 문신을 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여자는 헤어 디자이너라고 했다. 사업을 친구에게 맡기고 7년 째 항해 중이란다. 2011년에 독일에 돌아갈 예정이라길래 왜냐고 물었더니 그때 쯤 모아둔 돈이 바닥날 거라고 한다.

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느라 긴장한 탓인지 몹시 피곤했다. 눈을 좀 붙여야겠는데 어선들이 너무 많아 레이더 항해가 되지 않았다.

지중해에 들어왔는데 너무 밋밋하다. 야간에 들어와서인지 꼭 몰래 잠입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지만 이곳은 지중해다. 달이 참 밝았다. 계란 노른자 같은 달이었다. 바람이 약해서 엔진을 같이 사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꼬박 꼬박 졸면서 밤을 새웠다.

4월 2일. 옅은 안개 속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배는 간밤에 내린 이슬로 갑판이 흠뻑 젖었다. 밤에는 옷을 겹겹이 껴입었는데도 추웠다. 빨리 싸늘한 날씨에 몸을 적응시켜야 한다. 이 지역은 북위 31도로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낮 12시께 이스라엘 수역으로 들어왔다. 이스라엘 해군은 지금까지 어느 나라 보다 더 정확하게 배의 정보를 요구해왔다. 진땀을 흘리면서 적절한 단어를 짜내어서 대화하였다. 이집트에서 해안선을 따라 가다보면 가자지구가 나오는데 그 가자지구를 멀리서 돌아가야 하고 또 경계선 쪽에 유전이 하나 있어 요트를 돌아가게 유도했다. 독일 요트는 총을 소유하고 있어 입항이 거절되었다. 그들은 터키로 갈 것이라고 했다.

최대한 속력을 내었지만 목적지인 애슈켈론 마리나를 10마일쯤 남겨두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야간 입항이 안된다고 했다가 오후 8시까지 입항하는 조건으로 받아주었다. 애슈켈론 마리나에 도착했다. 30분 정도 보안검색을 마치고 출입국 수속을 마쳤다. 이스라엘에 온 목적을 묻는 질문에 '투어'라고 대답했더니 여직원이 여권을 건네주며 예쁘게 웃었다.



글·사진=윤태근(cafe.daum.net/yoontaeg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