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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국 남북전쟁- 불패의 군 (Invincible Army) 7. 안티탐 전투 = 미 연방이 가장 위험했던 순간

구름위 2012. 10. 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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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2년 9월 5일, 2차 불런 전투 이후 가진 작전회의

                 중앙에 리 장군, 앉아 있는 사람이 롱스트리트, 지도를 가리키는 사람이 잭슨, 칼을 찬 사람이 스튜어트 
 

 

  2차 불런전투는 많이 알려진 전투는 아니지만, 리가 거둔 승리 중에서 가장 '완벽‘한 승리였다. 전략적으로 북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북군을 강력한 진지에서 이탈하여 남군의 준비된 진지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전술적으로는 소수의 남군으로 다수의 북군을 견제하는 동안, 나머지 남군이 북군의 측면을 공격하여 썰물처럼 쓸려가게 만들었다. 리가 거둔 어떤 승리도 북군이 이렇게 완벽하게 전장을 내주고 이탈한 경우가 없었다.

  이 전투의 승리는 7일전투 당시의 복잡한 지휘계통을 간단하게 통합하고, 군단을 편성하여 군단장에게 적절한 재량을 부여함으로써 가능했다. 또한 이 전투를 시작으로 잭슨과 롱스트리트는 리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양쪽 팔이 되어주었다.


  2차불런전투 이후, 리는 지휘관들을 소집하였다. 북군이 패퇴하여 워싱턴 요새로 들어간 시점에서의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전략회의는 9월 5일, 리스버그의 해리슨홀에서 열렸다. 잭슨과 롱스트리트가 도착하고, 스튜어트와 포병사령관 팬들톤 장군이 참석하였다.


  먼저 리 장군이 잭슨장군의 놀라운 전공을 치하하며, 현재의 전황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잭슨 : 북군이 패퇴했을 때 우리는 워싱턴까지 밀어붙였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비를 내리셔서 우리의 진격을 저지하였으니 이는 더 좋은 지형에서 다시 싸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롱스트리트 : 내가 보기에는 여기보다 더욱 전투하기 좋은 지형은 없네. 북군이 후퇴할 때 그 어떤 전장에서보다 신속히, 그리고 완벽하게 철수했어.

 

   (이 부분에서 남군을 지탱하는 두 장군의 특성이 두드러진다. 잭슨은 독실한 종교적 열정으로 적의 후퇴조차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롱스트리트는 그저 냉정하게 ‘북군이 운이 좋았다.’라고 생각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분석하였다. 잭슨이 ‘열정’에 의해 다소 무리한 상황에도 움직이는 타입이라면 롱스트리트는 ‘이성’에 따라 분석하고 승산이 있을 때 움직이는 타입이었다.)


  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뒤, 현재의 남군의 상황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다. 당시 남군은 군복이라 해도 헝겊조각을 모은 누더기에 불과했고, 신발도 다 떨어진 상태거나 아예 신지 않았다. 지난 2달간의 격전과 행군으로 피로가 누적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식량이 부족했다. 남부의 병참은 턱없이 열악하여 승리를 거듭한 군대에게 제대로 보급할 식량이 없었으며, 원활하게 전달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지에서 조달하기에는 버지니아 북부는 너무 피폐해 있었다.


  이런 상황을 설명한 뒤, 리는 잭슨과 롱스트리트에게 말했다.

 리 :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메릴랜드로 진격할 생각입니다. 그 지역은 전쟁의 영향이 없었기 때문에 농작물이 풍부할 테고, 곧 수확철입니다. 메릴랜드에서 식량을 보급받은 뒤에 팬실배니아로 진격할 생각입니다.

 롱스트리트 : 메릴랜드로 진격한다는 것은 곧 북부 영역으로의 진입인 데 우리를 침략군으로 보지 않을 까요? 남부연맹의 의의는 적의 침입을 격퇴한다는 대의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만

 리 : 본래 메릴랜드는 남부에 동조적이었지만, 워싱턴과 붙어있다는 이유로 강제로 북부에 편성이 됬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격하는 것을 보고 침략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주민들의 호응을 얻어 물자보급과 증원군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포프처럼 행동하지 않을 것이며, 메릴랜드 주민들은 남군이 침략을 위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작전의 복안을 설명한 뒤, 리는 잭슨에게 하퍼스페리의 점령을 명령했다. 당시 하페스페리와 그 인근의 요새에는 북군이 1만 2천이 배치되어 있으며 리가 북부로 진격할 경우, 남부로 가는 통로를 차단할 염려가 있었다. 잭슨이 신속하게 하퍼스페리를 점령하면, 북군의 병기창을 통해 부족한 무기와 의복을 보급받은 뒤, 팬실베니아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잭슨이 하퍼스페리를 처리하는 동안, 롱스트리트의 군은 동쪽 산맥의 고지들을 점령하여, 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로 하였다. 당시 북군 사령관은 재임명된 맥클레란으로, 리는 북군이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7일전투 때의 맥클레란을 생각하면 일리있는 생각이었다. 리는 북군이 움직이지 않는 다는 전제에서 남군을 둘로 나누는 위험부담을 감수했다.

   작전회의가 종료되고, 리의 장군들은 행동을 시작했다. 롱스트리트의 군은 메릴랜드 주의 프레데릭에 9월 7일 집결하고, 잭슨과 합류하기 전에 대기 장소인 본스보로로 이동했다. 잭슨은 하퍼스페리 주변의 고지를 접수하기 위해 이동하였고, 스튜어트와 D.H 힐은 최외각에서 북군을 경계하면서 블루 리지 산맥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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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탐 전역 남북군 행군로

 

 

  만약 남북전쟁 기간 중에, 남부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바로 이 때였다. 북부는 남부 수도를 함락시키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 두 번이나 실패하였다. 그리고 남군이 북부로 진격하여 팬실배니아주로 향하고 있으며, 필라델피아나 뉴욕, 볼티모어 등의 핵심 공업지역을 위협할 수 있었다.

   또한 유럽의 열강들이 남부에 동조적이었으며, 영국 수상은 남부연맹을 승인하고 북부와 남부를 중재하고자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리의 군대가 북부에서 북군을 패배시킨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며, 북부의 여론은 이미 절망적으로 링컨행정부에게 불리했다.


  다시말하자면 이 안티탐 전투 직전의 상황은 남부연맹이 독립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순간이며, 미국 연방이 분열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때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이를 막아야 하는 북군의 맥클레란은 아직도 자신의 군대보다 남군이 1.5배 많다고 생각하는 장군으로, 신속한 용병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떤 극적인 사건을 계기로, 리의 야심찬 북부 침공은 막을 내리고 신속하게 이동한 맥클레란의 군을 상대로 ‘오직 살기 위해’ 싸우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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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오른팔' 스톤웰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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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의 '늙은 군마'  제임스 롱스트리트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jag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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