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무장의 최후2-모리 다카모토

구름위 2013. 1. 4.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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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들의 최후

 

 

전국시대, 뜻하지 않는 때에 많은 무장들이 사라져갔다.
비명횡사, 무념의 죽음, 너무 빠른 죽음. 여러 종류의 명장들의 최후…

 

 

 

 

毛利隆元[모리륭원](모리 다카모토)

 

 

위대한 아버지에 가려진  향년 41세

 

 

 


 
 

中國(주코쿠)의 영웅 毛利元就(모리 모토나리)의 장자이다.
尼子(아마코)가와 적대해, 大內(오우치)가의 비호를 받을 것을 결정한
모토나리에 의해서, 15살 때 山口(야마구치)에 보내져
大內義隆(오우치 요시타카) 아래서 인질 생활을 보낸다.
요시타카는 이 표리가 없는 소년을 귀여워 해,
원복시 [隆]자를 주어 隆元(다카모토)로 칭하게 된다.
오우치가 최전성기 무렵이었다.

 

 

그러나, 天文 十一年(1542),

오우치 요시타카에 의한 아마코 정벌이 실패로 끝나자
오우치가의 운명에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그런 중인, 天文 十五年(1546), 모토나리로 부터 상속자를 양보받지만,
그것은 명목의 것이고 실권은 모토나리가 아직 잡고 있었다.

 

 

天文 二十年(1551), 오우치 요시타카가

陶隆房(스에 다카후사)의 모반에 의해 토벌되고
그 4년 후, 嚴島(이쓰쿠시마) 전투에서

그 陶晴賢(스에 하루카타)를 격파한 것을 기회로
모리가는 점차 주코구 지방에서 세력을 신장시키기 시작한다.
이후, 다카모토는 두 명의 동생 元春(모토하루), 隆景(다카카게)와 함께
모토나리를 도와 영토 확대에 뛰어 들게 된다.

 

 

다카모토는 모리兩川으로 불리는

두 명의 동생들에 비교해서 특출난 활약은 없었다.
그러나 오우치, 아마코 틈에서 모리를 유지하고 발전 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가신이나 백성들을 사랑하는 다카모토의 성실한 성격에 의지한 부분이 크다.
아버지나 동생들에 의해 차지한 영지를

그 발군의 내정력으로 기초를 단단히 굳혀 간 것이 다카모토인 것이다.
아버지 모토나리의 모략으로 소원해진 부분을

다카모토의 성실함이 메꾸었던 것이다.

 

 

永錄 六年(1563), 각지를 전전하던 다카모토는
出雲(이즈모)의 아마코 공략을 향하는 도중에 돌연 사망한다.
和智성주 和智誠春의 식사 환대 직후였다. 일설에는 독살이라고도 한다.

 

 

3개의 화살중 한개는 꺽어졌고
새로운 한개가 되어야 할 다카모토의 적남인
輝元(데루모토)가 원복하기에는 아직 2년이나 남은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