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일본이야기

무장의 최후4-히라테 마사히데

구름위 2013. 1. 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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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들의 최후

 

 

전국시대, 뜻하지 않는 때에 많은 무장들이 사라져갔다.
비명횡사, 무념의 죽음, 너무 빠른 죽음. 여러 종류의 명장들의 최후…

 

 

 

 

平手政秀[평수정수](히라테 마사히데)

 

 

장렬한 諫死 향년 62세

 

 

 

 

 

 

 

노부나가의 아버지 織田信秀(오다 노부히데)의 가신

히라테 마사히데는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그 성격에 의해 노부나가가 태어나자 후견인으로 임명이 된다.
그러나, 청년시절 노부나가는 포악하고 성정이 거칠어
마사히데가 아무리 나무라도 들어주지 않았다.

 

 

노부나가는 노부히데의 장례의 자리에서도 행패에 부려
후견인으로서 책임이 추궁 당한 마사히데는
2년 후인 天文 22년 1월 13일, 영지인 志賀(시가)로 돌아와 자결해 버린다.
죽음으로서 주군에게 충고했던 것이다.

 

 

이 때 노부나가는 스무살.
가문에서 고립 무원이었던 노부나가의 유일한 아군이며
최대의 이해자인 마사히데를 잃은 것은, 노부나가에게 충격을 주었다.
聖德寺(쇼토쿠지)의 회견에서 사이토 도산의 앞에 얼간이의 모습이 아닌
정장으로 노부나가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이후 불과 3개월 후였다.

 

후에 노부나가는 政秀寺을 건립해 마사히데의 보리를 조상하였다.

 

 

諫死:죽음으로 간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