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해군이야기

야마토의 부함장 노무라 중령의 수기

구름위 2012. 12. 2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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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이 글은 집에서 굴러다니던 『태평양 전쟁사, 제 5권』(대은출판사, 1980)의 야마토 최후의 출격 편에서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부함장 노무라 중령의 수기는 위 책에 부분별로 수록되어 있던 것을 재인용한 것으로써 군데군데 누락되거나 연결이 미흡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야마토의 지휘부]

(야마토가 오키나와로 출동하는 날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945년) 4월 7일의 아침이 왔다. 어두운 구름이 하늘을 덮고 동쪽 수평선에 떠오른 태양도 곧 구름에 가리우고 말았다. 해상엔 약간의 파도가 있었지만 바람은 심하지 않다. 심상찮은 공기를 알아챈 탓인지 오늘은 갈매기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비행기와 잠수함을 경계하면서 전진을 계속했다. 구름이 낮아 적기가 우리 함대를 발견하는데 곤란을 느낄테지만, 한편 우리측에게도 적기가 바로 눈앞에 이를 때까지 사격이나 회피운동을 할 수 없는 애로가 있다.

이런 상황 아래선 사정 3만미터에 1발로 몇 대를 격추할 수 있는 주포 대공탄(3식탄?)도 활용할 여지가 없다. 이렇게 되면 부포와 고각포로 뇌격기에 대비하고, 1분간 몇 만 발을 발사하는 110문의 기총으로 급강하기를 노리면서 극력 회피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다.

오전 7시, 좌현 가까이에 아군 수송선 1척이 북상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 야마토의 속도는 18노트. 지그재그 운동을 되풀이하면서 서쪽으로 전진했다. 구름의 높이는 1,000미터. 이따금씩 스콜이 내린다.

오전 8시 15분, 돌연 구름 사이에서 함재기 3대가 야마토의 전방 1,000미터, 높이 500미터 부근에 나타나는가싶더니 함대의 오른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미처 놀라고 있을 틈도 없었다. 동체에는 분명히 별마크가 있었다. 미군은 이미 우리 함대를 확실히 포착하고 있다. 온 함대가 긴장 일색으로 변했다. 이 3대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쳐 버렸지만 그로부터 30분 후, 미군 비행정 2대가 함대의 전방 저공을 S자형으로 날면서 우리측의 침로와 속도, 대형을 잇따라 보고하기 시작했다. 주포탄을 발사하여 위협해 보았지만 발포 순간 휙 뒤집혀지더니 교묘하게 포탄을 회피, 좀처럼 함대 부근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미 적기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된 이상, 우회항로를 취해 도착시간을 조절함으로써 8일 새벽에 오키나와에 돌입하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야마토는 곧바로 항진을 계속했다. 이쯤되면 오키나와 도착보다도 어떻게 눈앞의 미군기와 맞서 싸워야 하는가가 문제였다. 전투 준비를 끝내고 온 신경을 공중에 집중. 9시반, 10시... 시간이 흐른다. 의외의 고요가 계속된다. 이야말로 폭풍 전야의 정적이다. 아침부터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차츰 걷히더니, 어느새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대방은 지금쯤 함재기를 모함에서 발진시키고 있으리라.

공습은 언제 시작될까? 이제부터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지만 아무튼 위장을 채워둬야겠다고 생각하여 식사 준비를 재촉했다. 3천여 명에게 식사를 배급하는 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주먹밥에 단무지로 된 최후의 식사가 시작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12시 15분, 갑자기 긴급 경보가 울렸다. 전 승무원은 먹고 있던 주먹밥을 동댕이치고 전투배치로 들어갔다. 전파탐지기(레이더)로 적기의 대편대가 접근중임을 알아낸 것이다. 미군기는 150도 방향 (북쪽이 0도이므로 좌현쪽), 거리는 아직 멀지만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각 함은 야마토를 중심으로 거리를 산개, 이와 동시에 속도를 25노트로 높였다. 미군기는 우리 함대를 포위하듯 하면서 좌우로 나뉘어 접근중인 모양이다.

(*주 : 이 미군기들은 미쳐 중장 휘하의 제 58 기동부대에서 발진한 260여 대의 1차 공격대였습니다.)

12시 27분, 수많은 검은 점을 좌우 방향에서 발견! 그러나 그 검은 점들은 곧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이어 적기의 모습이 시계로 들어왔다. 목측거리 25,000미터, 맑은 날씨라면 으레 주포와 부포가 포문을 열었을테지만 함대 상공엔 여전히 높이 1,000미터의 구름이 끼어 있다. 이어 적기들은 잠깐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보였다가 다시 들어갔다. 함대를 멀리 포위하면서 차츰 거리를 줄이는 것 같다.

12시 35분, 좌현 전방 구름 속으로부터 3대의 비행기가 쏜살같이 야마토로 내리꽂혔다. 이어 2대, 그리고 3대가 급강하, 함측을 스쳐 지나가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회피기동을 하고 있는 야마토]

"좌 선회 개시!!" 함장의 호령과 기총사격의 개시와 해면에 떨어진 폭탄의 작렬음이 동시에 일어났다. 함체는 우현으로 기울었다가 좌현으로 선회. 이어 좌우로부터 급강하기가 쇄도했다. 어느새 우현 쪽에서 어뢰 3발이 접근, 급회전으로 가까스로 이것을 회피했지만 문득 얼굴을 들고 보니 200대 가량의 급강하기와 뇌격기가 엇갈리고 있었다. 그것들이 퍼붓는 뇌격과 폭격, 이쪽이 응사하는 전 포화와 회피운동! 봄바다는 삽시간에 폭음과 포연의 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12시 37분. 최초의 명중탄을 맞았다. 250kg 폭탄 2발이 후부 전탐실(레이더실)에 떨어져 그곳 담당원 전원이 전사. 이어 좌현 후부에 어뢰 1발이 명중. 다시 3발 명중. 이 때문에 함은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요컨대 야마토는 이미 이 제 1파로 인해 좌현에 중상을 입고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제 2파에선 이 좌현의 상처 자국을 더 확대하기 위해 여기만을 노릴터였다.

전투의 틈을 이용하여 부상자의 운반, 시체의 수용, 고장 부분의 긴급수리가 진행되었다. 중갑판의 치료실은 이미 중상자로 가득찼다. 손이 없는 자, 발을 잃은 자, 두 다리를 잃고도 아직 멀거니 눈을 뜨고 있는 자. 치료실은 피바다로 화했고 욕실에도 시체가 가득 메워져 있다. 갑판에 흩어진 근육 조각은 누구의 것인지, 신체의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어서 그대로 바다 위에 던져버렸다.

13시 20분, 미군의 제 2파 약 120대가 야마토의 상공에 도달했고 14시 5분에 이르자 야마토는 제 1파와 제 2파의 공격으로 도합 20발의 어뢰와 수없는 폭탄을 맞고 이미 좌현으로 35도나 기울었다. 함내의 연락전화는 두절, 조타실에도 침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침수 많아 조타할 수 없음" 조타장도 이렇게 보고한 채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조타장 그곳 10명도 익사한 것이다.

조타장치가 고장을 일으키자 이때부터 야마토는 크게 둥그러미를 그리면서 좌우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이 동안에도 미 해군 뇌격대의 맹공격은 숨쉴 틈도 주지 않고 있었다. 함체의 경사가 더해 간다. 이젠 그 경사를 저지할 아무런 방법도 없어졌다. 이런 상태가 계속 되면 총원이 함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함장은 아직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고 있다. 침몰하는 함에서 가능한대로 승조원을 구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나에게 쥐어져 있다.

문득 함수 쪽을 바라보니 평상시엔 7∼8m 가량 해면 위에 올라와 있던 상갑판 전반부가 물속에 들어가 있고 함수는 마치 반도처럼 물 위에 떠 있다. 제 2포탑도, 제 8 기총좌도 이미 물 속에 들어가 있다. 잔존 속도는 6노트 가량. 이런 판국에서도 그 언저리에선 유유히 담배를 피우는 자, 응급식료의 비스켓을 씹는 자, 털썩 주저앉아 얘기를 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담이 큰 탓일까, 이미 넋을 잃어버린 것일까?


[침수로 인해 좌현으로 기울어진 야마토]

그러나 포탑에서도 탄약고 쪽에서도 통신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진 갑판 바닥을 부여잡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표정이었다. 나는 곧 함장이 있는 방공지휘소로 달려갔다. "이미 경사 복구의 수단은 없어졌습니다. 최후가 가까워오고 있으니 총원을 상갑판으로 퇴피시켜 주십시오."

잠시후 마이크에서 함장의 구령이 전해졌다. "총원 최상갑판으로!" 이것은 함의 포기를 뜻하는 명령이다. 최후의 명령인 것이다. 이제부턴 각자 자유행동을 취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드디어 야마토에게도 최후가 다가온 것이다.

최후를 앞두고 야마토의 함교에서는 살아남은 참모들이 이토 세이이치 사령관 옆으로 기어가서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제 2함대 사령관 이토 중장은 함장 아리가 대령을 비롯한 전 참모와 차례로 악수를 나눈 후 아무 말 없이 함교 바로 아래쪽에 있는 사령관실로 사라졌다. 이어 함장과 항해장이 나침반에 자기 몸을 묶어 야마토와 운명을 함께 할 준비를 끝냈다. 부하 한 명이 다가가서 비스켓 4개를 내밀자 함장은 씁쓸히 웃으면서 그중 2개째를 입에 넣었을 때 야마토가 갑자기 크게 미동하기 시작했다.

14시 15분, 야마토의 함체는 35도에서 갑자기 40도, 45도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다시 옆으로 뒹굴 듯 하며 큰 고래와도 같은 함복을 수면에 드러내더니 다시 회전을 계속한다. 침몰해가는 함체 위에 노도가 굉장한 음향을 일으키면서 밀어닥친다. 전복하는 순간 전등이 꺼졌다. 깜깜한 함내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기계 등에 끼어 죽은 사람도 있고, 최상갑판에서 경사 때문에 높아진 우현으로 기어올랐다가 일제히 바다 속으로 내동댕이쳐져 급류에 빨려 들어가 죽은 사람도 있으리라.

나는 이때 제 2함교의 벽을 붙잡은 채 물속으로 들어갔다. 침몰과 함께 발에서 배로, 가슴으로, 차츰차츰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거품을 일으키면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온 몸이 물 속에 빠졌을 때 조용히 눈을 떠보았다. 물이 맑은 탓으로 몇 미터 앞까지 잘 보였다. 이미 힘을 잃은 반 시체들이 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물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아래는 밑창 없는 짙은 남색. 수면에서의 광선이 희미해짐에 따라 사방이 차츰 어두워졌다. 생사의 경계선에 서있지만 아직 지각은 말짱하다. 조금씩 내뱉으며 숨을 아껴오던 것도 한계점에 도달, 이젠 내뱉을 숨이 없다. 더 견뎌낼 수가 없다. 지각 착란의 일보 직전. 바로 이 순간, 느닷없이 천지가 압착하는듯한 중압과 함께 새빨간 섬광이 일었다.




[야마토의 폭발]

함체가 전복한 탓으로 탄약고에 있던 1발 1.5톤의 주포탄 수백발이 벽과 충돌 발화, 이와 동시에 함내의 전 탄약에 유폭을 일으킨 것이리라. 생사 갈림길의 몇 초. 나는 갑자기 바다 위로 밀려 나왔다. 폭발 때문에 밀려 나온 것이다. 주위는 폭연으로 뒤덮여 있는데 허공에서 파편이 떨어져 내린다. 해면에는 중유가 널려 있고 그 중유로 검게 뒤덮인 머리가 여기저기 2∼3개씩 떠있는게 눈에 띈다. 앞을 향해 몸을 움직이자 옷에 끼어든 공기의 부력 때문인지 몸이 떠오른다.

중유 때문에 해면은 도리어 잔 물결도 일지 않고 평온하다. 폭발할 때의 압력으로 고막이 찢어진 모양이다. 순간 극도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대해의 한가운데 떠있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소르르 졸음이 밀려오더니, 차츰 정신이 멀어져 갔다.

(*주 : 이하의 부분은 원본 서적에 수록된 가와세(川瀨寅雄)라는 수병의 수기입니다. 정신을 잃은 노무라 부함장이 그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죠.)

새까만 것이 떠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니 그것은 죽은 병사였다. 살짝 옆으로 밀어 버리고 다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방탄용으로 사용하던 다다미 한 장이 어디선가 밀려왔다. 이것에 매달려 그런대로 2시간 가량 헤엄치기를 계속한 끝에 드디어 아군 구축함이 달려와 줄사다리를 내려드리워 주었다.

헤엄치는 동안은 기력이 있었지만 이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망연자실, 그대로 죽어버리는 병사가 많았다. 그래서 물 속에서 건져내는대로 구축함의 수병이 힘껏 뺨을 후려갈겨 기합을 넣고 있었다. 나도 얻어 맞았다. 맞으며서 문득 옆을 둘러보니 젊은 수병이 어떤 늙은 병사 한 명을 연거푸 후려갈기고 있었다. 얻어맞는 그 늙은 병사를 자세히 보니 그는 의식을 잃은 노무라 부함장이었다.

"이봐, 그만해둬! 그건 노무라 부함장이란 말얏!"
때리고 있던 수병은 깜짝 놀라면서 손을 멈췄다. 부함장의 계급장은 중유로 흠뻑 젖어있어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이렇게 해서 야마토를 필두로 한 특공함대는 구축함 4척만을 남기고 전부 침몰했으며 야마토의 승조원들은 탈출에 성공한 생존자 269명뿐이었습니다. 노무라 부함장은 탈출시 발생한 유폭의 충격으로 인해 몇 년동안 내장장애로 고생했으며, 1950년대에 이 「천 1호 작전」을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을 때 지도역을 맡기도 했다고 합니다.

원본 책이 워낙에 오래된 물건이라 사실 여기저기 엉망인 부분이 많지만 (니미츠 사진을 갖다 놓고 스플루언스라고 설명을 하는 식입니다-_-;;) 옛날 책답게 일본측 서적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 많아 자료 참고 면에서는 오히려 더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른 부분들도 올려보기로 하지요.

한편 이와 비슷한 글로 디펜스코리아 전쟁사 게시판에 천마님께서 쓰신 「전함 야마토의 최후」가 있는데, 글 자체도 탄탄하기도 하지만 노무라 부함장의 진술과 일부 엇갈리는 장면도 있으니 (노무라의 탈출방법 등)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http://user.defence.co.kr/databank/personal/board/listall.php?id=CJSAK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태평양 전쟁사, 제 5권』, 윤상근 편, 대은출판사,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