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해군이야기

어뢰 방어망이란 무엇인가?

구름위 2012. 12. 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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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이나 그 이전의 함선들 사진을 보다 보면 가끔 저렇게 함체 현측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상한 구조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어뢰방어망이라는 물건입니다. 그 자세한 연원은 다음과 같죠.



 

1.어뢰 방어망의 탄생

1873년경에 어뢰가 발명된 이후, 어뢰의 고속화와 사정거리 연장이 이뤄지고 "어뢰정"이라는 새로운 함선이 등장하면서 어뢰로부터 주력함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이 강구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수선부 이하의 함체에 수밀격벽(수중방어구획)을 설치하는 방법이었는데, 이는 아래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어뢰에 대한 방어대책으로는 불충분한 것이었죠.

①선체용적의 한계 때문에 방어구획을 설치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되어 있음
②방어구획이 있다해도 이것은 함에 미치는 피해를 줄여주기만 할 뿐, 완전히 피해를 면하는 것은 불가능함


이후 나타난 대 어뢰 대책은 크게 2방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어뢰 발사 플랫폼 (어뢰정) 자체를 격퇴시킴으로써 어뢰를 무력화하고자 하는 방법입니다. 구축함이라는 함급이 등장한 것이나, 전함에 각종 서치라이트와 다수의 보조포들을 탑재하는 경향 등이 이 계열에 속하죠. 두번째는 보다 수동적인 형태로써, 어뢰를 회피하거나 함체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방어하려는 방법들입니다. 전함의 속도와 기동성을 높이려는 시도와 어뢰 방어망(Anti-Torpedo Net)이 여기에 속했습니다.


[1874년에 행해진 어뢰 방어망 실험중 한 장면]

「어뢰 방어망」이라는 개념은 어뢰가 등장한 직후부터 나타났고 1874년경에는 영국해군이 폐함을 이용하여 어뢰 방어망의 유용성에 대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사용된 어뢰 방어망은 함체 측면에 12m 정도의 지주를 설치하고 여기에 도금된 강철로 된 그물을 매달아서 함저로부터 수면위 1m부분까지 늘어뜨린 형태였죠. 실험 결과 발사된 어뢰는 방어망을 뚫지 못했고 함체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에, 어뢰 방어망이 대 어뢰대책으로써 유용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애초부터 어뢰 방어망을 항해중에 사용한다는 발상은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어뢰 방어망은 어디까지나 기항중일 때나 해안 포격을 위해 정박했을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고 (회피기동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 항해중의 대 어뢰 대책은 어디까지나 회피기동 또는 어뢰정 격퇴가 주된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뢰 방어망 자체가 고속항해 중에는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었죠. (함정의 속도가 6∼8노트를 넘어가면 방어망이 수면에 뜨거나 스크류에 걸릴 위험이 있었습니다) 후에 어뢰 방어망이 해상작전 중에 잠시 이용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함이 고속으로 기동할 때가 아니라 기관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함체에 피해를 입어서 효율적인 회피기동이 불가능할 때(기동성을 상실했을 때)에만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초창기의 어뢰 방어망. 왠지 어선같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실험이 성공한 이후 1877년에 영국 해군의 일부 함선들에 실험적인 어뢰 방어망이 탑재된 것을 기점으로 영국과 각국 해군에 어뢰방어망의 채용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어뢰 방어망은 12m 정도 길이의 지주를 상갑판이나 현측 수선부에 배치한 다음 마스트나 데릭(하역용 크레인)에 연결하여 방어망을 지탱하고, 방어망 자체는 수선부 이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함저까지 미치는 형태였습니다. 이 형태는 어뢰 방어망 설비가 함체와 완전히 일체화 및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바다가 거친 경우에는 전개용 지주와 방어망이 갑판 모서리나 선체에 부딪쳐서 파손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아예 방어망이 휩쓸려간다는 단점이 있었죠. 또한 방어망이 수면 위부터 시작되므로 쓸데없이 낭비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19세기말에 완성된 형태의 어뢰 방어망]

1880년대 후반에서 1890년대에 이르면 좀더 개량된 형태의 어뢰 방어망들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전개용 지주를 함체 현측에 영구화된 구조물로써 고정배치하고 방어망 자체도 수선부 이하만을 방어하도록 한 형태였죠. 그리고 어뢰 방어망의 가동에 필요한 시간도 단축되어서 10초 이내에 지주를 전개시키고 2-3분 안에 방어망을 완전히 풀어놓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어뢰 방어망은 구조적으로 완성되었고, 또한 실전에서도 많은 실적을 보여주죠. 조금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여순항에 정박해있던 러시아의 전함 세바스토폴의 경우가 한 예입니다. 세바스토폴은 당시 자함의 어뢰 방어망과 외부의 방어망을 합쳐 모두 2개의 어뢰 방어망을 치고 있었는데, 5일동안 무려 100여 개에 가까운 어뢰를 맞고도 어뢰 방어망 덕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어뢰 방어망이 설치되지 않은 함미 부분에 어뢰를 명중시키고 나서야 간신히 그녀를 격침시킬 수 있었죠. 이처럼 187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까지 약 30년 동안은 어뢰 방어망의 전성기였습니다.


[평시에는 이렇게 말아서 수납하고 있다가]


[정박중에는 다시 이렇게 전개시켜 놓습니다]


2.어뢰 방어망의 쇠퇴와 종말

방패가 나타나면 그걸 뚫을 수 있는 창도 항상 나타나게 마련이어서, 어뢰 방어망이 발달하면서 그에 대한 어뢰쪽의 대책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등장한 방법은 어뢰에 「어뢰 방어망 절단기」를 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어뢰의 앞에 절단기를 달아서 우선 어뢰 방어망을 뚫고 그 다음에 어뢰를 돌입시켜 보자는 발상이었죠. 이것에는 피스톨 타입의 이탈리아식과 가위 타입의 일본식이 존재했는데, 이탈리아식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일본식은 처음에는 나름대로 효과가 있었지만 각국이 그물코를 좀더 촘촘한 것으로 교체하면서 효용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이런 절단기는 저항을 늘려서 어뢰 자체의 속력과 성능을 떨어뜨린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있었죠.


[초창기 어뢰에 장착된 어뢰 방어망 절단기]

보다 근본적인 대항책은 어뢰 자체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어뢰의 엔진기술이 진보하면서 1907년경에는 어뢰는 이전보다 2배에 가까운 거리를 항주하게 되었으며, 최고속도도 40노트에 가까울 정도로 상승했습니다. 이로써 처음으로 어뢰가 방어망을 관통하기 충분한 속도가 나온 것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영국해군은 1911년에 킹죠지V급을 마지막으로 어뢰 방어망을 폐지했고 각국 역시 그 뒤를 따랐습니다. 다만 일본만은 러일전쟁의 전훈 때문에 어뢰 방어망의 폐지에 다소 소극적이었고, 그런 이유로 1910년에 공고 급을 발주할 때도 어뢰 방어망을 요구사양에 포함시켰지만, 1차대전 종전 후에는 어뢰 방어망을 폐지함으로써 함재 어뢰방어망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다다넬즈 해협에서 격침된 전노급전함 트라이엄프]

어뢰 방어망이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은 1차대전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1915년 터키의 갈리폴리 작전 당시에 해안포격 임무를 수행중이던 전노급전함 골리아스와 트라이엄프, 그리고 마제스틱이 어뢰정과 잠수함으로부터 뇌격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들 전함들은 모두 어뢰 방어망을 치고 있었는데도 어뢰는 간단히 방어망을 뚫어버리고 유유히 전함들을 격침시켜버렸죠. 더욱 나빴던 것은, 함이 피격되어 전복, 침몰할 때 어뢰 방어망이 탈출에 방해가 되어 대부분의 승무원이 사망했다는 점입니다. (생선대신 사람이 그물에 걸렸나요? -_-;;)


[유틀란트 해전에서 복귀한 데어플링거. 어뢰방어망이 파손되어 늘어져 있음]

또한 어뢰 방어망은 전투시에도 방해물이 됐습니다. 유틀란트 해전 당시 독일 순양전함 데어플링거가 몇 발의 포탄을 맞고 어뢰 방어망 구조물에 손상을 입은 일이 있었습니다. 방어망은 곧 통제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풀려버렸고, 덕분에 승무원들은 전투 내내 방어망이 스크류에 감기지나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어뢰 방어망은 방어에 도움이 되긴 커녕, 100톤에 가까운 무게 때문에 오히려 귀찮은 짐짝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버렸죠. 이 때문에 1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거의 모든 국가 함재 어뢰 방어망이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p.s.가장 최근에 어뢰 방어망이 사용된 예는 1978년의 칠레-아르헨티나 분쟁에서였다고 하는군요. 당시 아르헨티나 해군은 칠레의 엑조세 미사일로부터 항모를 방어하기 위해 구식 노급전함에서 떼어낸 어뢰 방어망을 항모의 현측에 걸어두었다고 합니다. 글쎄.. 효과가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요...-_-;;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http://www.bobhenneman.info/damagewwi1.htm
- http://www.ku.edu/~kansite/ww_one/naval/nets.htm
- http://www.gallipolidigger.com/gemiler.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