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해군이야기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방법

구름위 2012. 12. 24. 09:14
728x90



 

1. 비상이함의 절차 및 방법

해전을 겪다 보면 항상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타고 있는 배가 폭탄이나 어뢰에 피격될 수도 있고 자신 역시 안전하란 법은 없지요. 그렇게 배가 당했을 때는 우선 급한대로 응급수리나 데미지 컨트롤을 통해 함의 보전을 도모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배를 포기하고 탈출해야 하며 이를 "비상이함"이라 합니다. 그러나 탈출도 아무렇게나 무턱대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배를 포기한다는 것은 안전한 집을 버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것과 같아서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배에서 탈출할 때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절차를 준수하게 되어있지요.

1) 이함명령의 발령
군함의 승조원 역시 군인인 이상 배가 심각한 피해를 입어 위태롭게 됐다 하더라도 정식 퇴함 명령이 있기 전에는 절대 정해진 위치를 벗어나 마음대로 배를 이탈해서는 안됩니다. (설령 부득이한 경우라도 군법회의감이지요) 함정의 피해가 극심하여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함장은 함내 경보마이크나 육성을 통해 일단 "총원 상갑판으로"라는 명령을 내려 함내 전 승조원들을 갑판으로 모은 후 정식 이함명령을 내려 승조원들의 탈출을 허가합니다. 이때 이함명령에는 아래와 같은 요소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죠.

① 함의 현재 위치 및 가장 가까운 육지까지의 거리 & 방향
② 풍향 및 조류의 방향과 속도
③ 인근 아군 및 적군의 현황
④ 함의 침몰 예상시간 및 경사방향
⑤ 이함 후 집결시간 및 위치, 표준시간 등


[*이함명령 예문]
나는 함장이다.
본함의 N17 해역 작전 임무중 적 잠수함과 교전하여 적함은 침몰시켰으나 본함 기관실에 어뢰가 명중하여 애석하게도 이함하게 되었다. 본함의 위치는 북위 35도 26분, 동경 18도 36분이며, 가까운 육지인 ○○섬으로부터 약 78도 39km에 위치하고 있다. 아군은 OO섬에 1개 연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적군은 △△섬에 보병 2개 사단 및 수개 항공대가 주둔하고 있다. 본함은 1107시 경에 침몰 예정이다.

조류는 북서에서 남동으로 5노트로 흐르고 있으며, 풍향은 서에서 동으로 5노트로 불고 있다. 구축함 ◇◇가 1800시 경에 구조차 도착할 것이며 생존자는 명일 1300시까지 ○○항 제 3부두에 집결하도록 하라. 경사 현측은 우현이며 이함현측은 우현이다.
총원의 건투를 빈다.


2) 이함명령의 발령 후의 제반 조치
일단 이함명령이 떨어지면 각 보직별로 이함하기 전에 각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복장이라던가 비상물품 등을 챙겨야 하겠고 그 다음 각종 기밀서류 및 장비를 파기·반출하거나 함의 기관/장비를 정지시키며 전체 승조원들의 탈출 준비를 한다던가 하는 것 말이죠.

우선 복장은 동절기나 저온의 해상인 경우 기본 전투복장 외에 내의, 방한모, 외투 등을 챙겨야 하며 각 개인의 소지품-신분증, 금품, 비상식량, 호각 등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끝난 후에는 행정사 및 무전사·항해사는 비밀서류, 통신용 음어, 항해일지 및 해도 등을 챙기고 기관사는 함의 추진기를 반드시 정지시켜야 하죠. (스크류가 돌고 있으면 승조원들이 물에 뛰어든 뒤에 스크류에 말려들 위험이 있음) 마지막으로 갑판사는 각 구명기구를 바다에 투하하고 이함용 사다리 및 계류용 로프 등을 내려 승조원들이 배에서 내리기 쉽게 하며 가장 끝으로 함내의 모든 햇치를 폐쇄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여유가 있다면 한번 더 구조신호를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군함의 경우 매일 정기연락을 취하기 때문에 그나마 위치를 추적하기 쉽지만 일반 상선의 경우 아예 침몰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그나마 알아차려도 침몰위치를 추정할 방법이 희박하기 때문에 구조가 지연될 수도 있지요.(실제로 이런 문제 때문에 83일이나 바다를 떠돈 경우가 있습니다)

3) 이함 요령
이상과 같은 준비들이 모두 끝나면 이제 배에서 내리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정을 통한 강하, 로프나 이함용 사다리를 이용한 방법 등이 있으며 부득이한 경우 그냥 뛰어내릴 수도 있습니다.


[렉싱턴에서 탈출하는 승조원들]


[로프를 사용하여 해면으로 내려가고 있음]


[해군의 이함훈련 : 배에서 그냥 뛰어내릴 경우를 상정한]

뛰어내릴 경우, 우선 입수할 곳에 장애물이 없는지 살핀 후, 입수는 수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다칠 수도 있습니다. 다리는 곧게 뻗고 발목을 꼬아 풀어지지 않도록 해야하며, 만약 다리가 풀어지면 떨어지는 순간에 발바닥이 순간적으로 스키와 같이 작용되어 다리가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입수시 한 손으로 입을 막고 검지와 엄지 손가락으로 코를 잡아 막은 다음, 또 다른 한 팔은 첫 번째 팔을 감싸안고 어깨의 셔츠나 팔의 소매를 잡아 첫 번째 팔을 지지해 주도록 합니다. 이런 자세는 잡동사니가 턱에 닿지 않도록 하고 입수 순간에 머리와 목을 지지해 주죠.

배에서 벗어난 후에는 즉시 물 밖으로 나오는 것보다는 가능한 한 배로부터 멀리 이탈할 수 있도록 잠영으로 100∼180m 가량 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배에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배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해면에서 인화될 수도 있으니까요. 또한 배가 폭발할 위험이 있을 때는 가슴, 배, 두부를 수면상으로 유지하고 반드시 배영자세로 헤엄을 쳐서 빠져 나오도록 합니다.

배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지게 되면, 이제 헤엄치는 것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구조수단이 나타날 때까지 버티기 위해 몸을 의지하고 쉴 수 있는 부유물을 찾아야 합니다. 특히 수온이 낮을 경우에는 1∼2시간동안 물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죽을 수도 있으므로 지체없이 부유물을 찾아 물에서 벗어나야 하죠. 이런 부유물에는 배의 단정이나 구명뗏목(구명벌) 등이 있으며, 수온이 그다지 낮지 않을 때는 나무조각이나 부력이 있는 상자 등도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배의 단정을 사용한 이함]


[현측에 매달려 있는 구명뗏목]

참고로 요즘의 구명뗏목은 물에 던지기만 하면 알아서 팽창하고 내부에 생존을 위한 여러 장비들도 완전히 갖춰져 있습니다만, 저 당시의 구명뗏목은 가벼운 발사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장비도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정도의 물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숨 돌리게 되면 이제부터는 「생존술」의 영역에 들어가게 됩니다. 구조가 얼마나 빨리 올지, 몇 시간이 될지 몇 달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살아남는 것은 약간의 운과 자신의 생존 지식에 달려있겠죠.

4) 성공적인 탈출을 위한 팁
이상과 같이 비상이함법에 대해 간략히 알아봤습니다만, 실전에서는 반드시 저런 정석적인 방법을 따른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는 함이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달해서 기밀서류는 고사하고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테니까요. 그러므로 배에서 탈출해야 할때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해당된다면 보다 수월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① 가능한한 갑판에 가까운 위치에 머무릅니다.
: 재수없게 자신의 전투배치부서가 함저의 기관실 같은 곳이라면 살아날 확률은 10% 미만이죠. 함내 곳곳의 수밀문과 방수 격실은 평소에는 든든한 방수 대책이지만 일단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최대의 장애물이 됩니다. 물이 너무 빨리 밀려들 땐 위에 있는 동료가 나를 남겨두고 햇치를 닫아버리는 경우도 없다고 할 수 없고 말이죠.

② 일단 배에서 뛰어내리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 배가 극도로 위험한 상태에 빠졌다면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최대한 빨리 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단정이나 사다리 차례를 기다리다가 화재나 폭발에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요.

③ 구명조끼는 반드시 챙기십시오.
: 이함 초기단계에서 체력보존은 생존여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입니다. 수영을 할 수 있건 없건간에 구명조끼를 입고 있으면 일단 근육을 쉬게 하고 조금이나마 쉴 수 있지요.



2. 여러 해전에서의 비상이함 사례

1) 전함 야마토의 경우 (『태평양 전쟁사, 제 5권』, 대은출판사, 1980 에서 부분 발췌)
(부함장 노무라 중령의 수기에서...)
(전략...) 조타장치가 고장을 일으키자 이때부터 야마토는 크게 둥그러미를 그리면서 좌우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이동안에도 미 해군 뇌격대의 맹공격은 숨쉴 틈도 주지 않고 있었다. 함체의 경사가 더해 간다. 이젠 그 경사를 저지할 아무런 방법도 없어졌다. 이런 상태가 계속 되면 총원이 함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함장은 아직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고 있다. 침몰하는 함에서 가능한대로 승조원을 구조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나에게 쥐어져 있다.

문득 함수 쪽을 바라보니 평상시엔 7∼8m 가량 해면 위에 올라와 있던 상갑판 전반부가 물속에 들어가 있고 함수는 마치 반도처럼 물 위에 떠 있다. 제 2포탑도, 제 8 기총좌도 이미 물 속에 들어가 있다. 잔존 속도는 6노트 가량. 이런 판국에서도 그 언저리에선 유유히 담배를 피우는 자, 응급식료의 비스켓을 씹는 자, 털썩 주저앉아 얘기를 하고 있는 자들이 있다. 담이 큰 탓일까, 이미 넋을 잃어버린 것일까?


[침수로 인해 좌현으로 기울어진 야마토]

그러나 포탑에서도 탄약고 쪽에서도 통신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기울어진 갑판 바닥을 부여잡고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표정이었다. 나는 곧 함장이 있는 방공지휘소로 달려갔다. "이미 경사 복구의 수단은 없어졌습니다. 최후가 가까워오고 있으니 총원을 상갑판으로 퇴피시켜 주십시오."

잠시후 마이크에서 함장의 구령이 전해졌다. "총원 최상갑판으로!" 이것은 함의 포기를 뜻하는 명령이다. 최후의 명령인 것이다. 이제부턴 각자 자유행동을 취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드디어 야마토에게도 최후가 다가온 것이다.

(중략....)

14시 15분, 야마토의 함체는 35도에서 갑자기 40도, 45도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다시 옆으로 뒹굴 듯 하며 큰 고래와도 같은 함복을 수면에 드러내더니 다시 회전을 계속한다. 침몰해가는 함체 위에 노도가 굉장한 음향을 일으키면서 밀어닥친다. 전복하는 순간 전등이 꺼졌다. 깜깜한 함내에서 거꾸로 떨어지는 기계 등에 끼어 죽은 사람도 있고, 최상갑판에서 경사 때문에 높아진 우현으로 기어올랐다가 일제히 바다 속으로 내동댕이쳐져 급류에 빨려 들어가 죽은 사람도 있으리라.

나는 이때 제 2함교의 벽을 붙잡은 채 물속으로 들어갔다. 침몰과 함께 발에서 배로, 가슴으로, 차츰차츰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거품을 일으키면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온 몸이 물 속에 빠졌을 때 조용히 눈을 떠보았다. 물이 맑은 탓으로 몇 미터 앞까지 잘 보였다. 이미 힘을 잃은 반 시체들이 큰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물 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아래는 밑창 없는 짙은 남색. 수면에서의 광선이 희미해짐에 따라 사방이 차츰 어두워졌다. 생사의 경계선에 서있지만 아직 지각은 말짱하다. 조금씩 내뱉으며 숨을 아껴오던 것도 한계점에 도달, 이젠 내뱉을 숨이 없다. 더 견뎌낼 수가 없다. 지각 착란의 일보 직전. 바로 이 순간, 느닷없이 천지가 압착하는듯한 중압과 함께 새빨간 섬광이 일었다.


[야마토의 폭발]

함체가 전복한 탓으로 탄약고에 있던 1발 1.5톤의 주포탄 수백발이 벽과 충돌 발화, 이와 동시에 함내의 전 탄약에 유폭을 일으킨 것이리라. 생사 갈림길의 몇 초. 나는 갑자기 바다 위로 밀려 나왔다. 폭발 때문에 밀려 나온 것이다. 주위는 폭연으로 뒤덮여 있는데 허공에서 파편이 떨어져 내린다. 해면에는 중유가 널려 있고 그 중유로 검게 뒤덮인 머리가 여기저기 2∼3개씩 떠있는게 눈에 띈다. 앞을 향해 몸을 움직이자 옷에 끼어든 공기의 부력 때문인지 몸이 떠오른다.

중유 때문에 해면은 도리어 잔 물결도 일지 않고 평온하다. 폭발할 때의 압력으로 고막이 찢어진 모양이다. 순간 극도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대해의 한가운데 떠있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소르르 졸음이 밀려오더니, 차츰 정신이 멀어져 갔다. (후략......)


노무라 중령은 이후 의식을 잃고 떠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는데 그 후 몇 년동안 내장 장애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고 합니다. 야마토 침몰 당시 함저에 있던 승조원들 약 1,000여 명이 탈출하지 못했는데 노무라 역시 함내에 갖혀있다 탄약 유폭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은 역시 운이었을까요?

2)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의 경우 (생존자 우디 유진 제임스의 체험담에서 발췌)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는 1945년 7월, 티니안 섬에 원폭 부품을 수송하고 필리핀으로 회항하던중 일본 잠수함 I-58의 어뢰에 피격되었습니다. 승조원 1197명중 약 900명이 침몰하는 함에서 탈출했으나 5일 여의 표류 끝에 불과 317명만이 살아남았죠. 우디 유진 제임스는 그 비극의 와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중 한명으로써 당시 갑판과 일등 수병이었습니다.


[5일간의 표류 끝에 구조된 인디애나폴리스의 승조원들]

7월 29일(1945년)은 조용한 날이었다. 파도는 2∼3m 정도로 잔잔했고 날씨도 제법 쾌청했다. 나는 늘 하던대로 책을 조금 들여다보았으나 20시부터 24시까지 견시근무를 나가야했기 때문에 곧 책을 덮었다. 주방으로 내려가서 커피 1잔을 마신후 내 침상에 가서 담요를 들고 갑판 위로 돌아온 다음 1번 포탑의 돌출부 아래에서 잠을 청했다. 내 전투배치 구역이 포탑 내부였기 때문에 나는 보통 거주구가 붐빌 때는 여기에 와서 자곤 했다. 구두를 베개삼아 막 기분좋게 잠이 들 무렵, 첫번째 어뢰가 함에 명중했고 엄청난 충격과 진동 때문에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몇 분 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포탑 밑에서 기어나올 때쯤 2번째 어뢰가 명중했다. 또다시 이리저리 굴러다닌 후에 나는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고 함수가 전방부터 20m 가량 없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1분 반 이내에 함수 대부분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으며 절단된 함수부분 아래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어 계속해서 바닷물이 밀려들고 있었는데도 나와 다른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채 멍청히 서있기만 했었다. 함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고 아무도 믿지 않았던 일들이 주변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분후 "배를 포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사실 그때쯤엔 우린 정말로 배를 버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물에 잠겨 있었다.

나는 동료인 짐 뉴홀과 함께 함벽에 걸린 구명라인을 풀고 현측에 늘어뜨린 다음 타고내려와 바다로 뛰어들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곧 함을 벗어나기 위해 수영을 시작하여 아마도 50∼90m 정도를 헤엄쳤다. 그리고나서 조금 숨을 돌린후 뒤를 돌아봤는데 우리 함은 이미 우측으로 기울어진채 ⅔정도가 잠겨있었으며 이젠 쓸모없게 된 스크류만이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침몰해가는 함쪽에서 한 젊은 장교가 구명조끼도 없이 뛰어내린 후 허우적거리며 패닉상태에 빠져있는 것이 보여서 나는 구명조끼를 벗어 그쪽으로 던져주었다.

어쨌거나 덕분에 나는 구명조끼도 없이 버틸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선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나는 배영을 하듯이 하늘을 바라보며 둥둥 떠있다가 근처에 감자박스가 하나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 당시에는 감자를 나무박스에 넣어서 보관했는데 때마침 그 박스는 텅 비어있어서 아주 훌륭한 구명대가 되어주었다. 감자박스를 붙들고 있은지 얼마 후 사람 목소리 같은 것이 들려서 나도 큰 소리로 외쳤더니 누군가가 또 응답을 해왔다. 그는 아까 배위에서 헤어진 짐 뉴홀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쪽으로 헤엄쳐 갔는데 거기엔 짐 외에도 몇 명 정도가 더 모여있었다. 상황은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화상을 입은 상태였으며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후략...)


유진 제임스와 다른 승조원들은 그로부터 5일가량을 더 바다에서 머물며 표류하다가 우연히 부근 해상을 초계하던 PV-1 벤츄라 기에 발견되어 구조되었으며 표류간에 입은 화상으로 인해 양쪽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생존 부분은 일단 제쳐두고 그가 쉽게 탈출할 수 있었던 원인을 짚어 보자면, 역시 어뢰 피격시에 우연히 상갑판에 나와 있었던 점을 지적할 수 있겠죠.

3) 「구명보트에서의 83일」 (생존자 바실 D. 이지의 체험담에서 발췌)
바실 D. 이지는 미 해군 소속 이등수병으로써 네덜란드 상선 「잔담」호에 무장 경비병 자격으로 타고 있었습니다. 그 배는 브라질 연안 부근에서 독일 잠수함 U-174에게 피격되어 침몰되었으며, 이지는 뗏목에 타고 83일 (1942년 11월 2일부터 1943년 1월 24일까지)동안 표류하다가 구조되었죠.


[이 사람이 바실 D. 이지 입니다]

(전략...) 우리 배는 11월 2일 화요일 16시 전후에 피격 당했는데, 그 날은 날씨가 무척 맑았고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16시 15분쯤에 나는 동료 4명과 함께 내 침실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무선사가 들어와서 우리가 해야할 일과 위치를 말해주었다. 그는 말을 마친 후 곧장 밖으로 나갔으며 그 직후 바로 첫 번째 어뢰(독일 잠수함 U-174에서 발사된)가 우리 배를 강타했다. 우리는 즉시 일어나서 문밖으로 튀어 나갔고 함내에 배치되어 있던 포좌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어뢰에 피격된 충격 때문에 윗층의 일부가 무너져버렸고 포좌로 가는 통로는 완전히 막혀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배 안으로 되돌아갔고 포좌로 가는 다른 길(갑판 한 층을 올라가서 빙 돌아가는)을 찾아야만 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승무원들이 구명보트를 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쨌거나 첫 번째 어뢰를 맞은 뒤에 우리 배는 약간 비틀거리는 상태에 빠졌고, 피격 후에 몇 백 미터를 더 가기는 했지만 상당히 위태로워질지도 모르는 상태였던 것이다. 우리는 보트를 내리는걸 보고나서 다시 포좌로 돌아갔다. 포대장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다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라고 명령했으며, 우리는 "Yes"라고 대답했다. 모두들 자신에게 지정된 위치에 있었고 탄약도 다 장전된 상태였으며 만약 잠수함이 보인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한방먹일 기세였지만, 아무도 잠수함을 보지는 못했다. 이 시점에서는 아직 아무도 배를 떠나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배의 우현에는 잘 정비된 구명보트가 3척 있었지만 아직 함장이 그것들을 아래로 내려보내라는 명령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몇 분 후, 우리 배는 두 번째 어뢰를 맞았고 그녀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모두들 배 밖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고 사방이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로 가득 찼으며 다들 극도의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당시 좌현에 몇 척의 구명보트가 있었지만 두 차례의 피격 때문에 모두 파손된 상태였으며, 우현의 구명보트들중 2척은 무사히 해면에 내려왔지만 나머지 1척은 내려오는 도중에 손상을 입어서 구멍이 났다.

이때, 우리 배에 어뢰를 쐈던 독일 잠수함이 수면으로 부상했고, 곧 독일인 4명이 갑판에 나타나서 우리 배에서 일어나는 아수라장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들이 기관총좌 쪽에서 뭔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들이 우리 생존자들에게 기관총을 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고 잠수함은 다시 물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때까지 우리들 수병은 1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배를 떠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우리들도 서둘러서 현측과 후방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후방 쪽을 선택했고, 그 높이가 꽤 됐던 것을 기억한다. 바다로 뛰어내린 후에 나는 배가 가라앉아 가는걸 보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헤엄을 쳤다.

한참을 헤엄쳐간 후에 근처에서 부유물을 하나 찾아낼 수 있었고, 나는 그날 오후와 밤, 그리고 다음날까지 그 부유물에 매달려 있었다. 다음날 아침, 내가 83일간을 보내게 된 뗏목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4명이 타고 있었는데, 당시 내가 있던 위치나 거리에서는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열심히 헤엄을 쳐서 그 뗏목에 도달했고 그들은 내게 약간의 초콜렛과 우유, 그리고 물을 주었다. 우리는 그날동안 서로 어떻게 배에서 탈출했고 어떤 표류물에 의지해왔는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후략...)



[(좌) 구조될 당시의 뗏목과 생존자들 / (우) 생존자들의 비쩍 마른 다리와 피골이 상접한 모습]

바실 D. 이지는 그로부터 83일동안 물고기와 바다새 등을 잡아먹으며 연명했습니다. 그간 뗏목에 타고있던 5명중 2명이 죽었으며 이지가 구출되었을 때는 너무나 쇠약해져서 스스로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함정 기본 운용 참고서 : 갑판』, 해군본부, 2002
- 『해육상 생존법』, 해군본부, 1997
- 『태평양 전쟁사, 제 5권』, 대은출판사, 1980
- http://www.ussindianapolis.org/
- http://www.armed-guard.com/iz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