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해군이야기

괴혈병과 그 치료법에 얽힌 이야기들

구름위 2012. 12. 2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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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처럼 게임 대항해시대 얘기입니다만, 「대항해시대2」에는 연속 항해일수가 2달이 넘어가면 랜덤으로 선원들에게 괴혈병이 발생하는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괴혈병이란 잇몸이 부어오르면서 피가 나고 점차 이빨과 머리카락을 잃게 되며 종국에는 빈혈과 고열 끝에 결국 심부전증으로 죽게 되는 병입니다. 주 발병 원인은 비타민C의 결핍 또는 부족이며, 대개 비타민C가 많이 들어있는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 등을 많이 먹으면 증세가 호전되죠.


[(좌) 괴혈병 발병 시의 증상 / (우) HMS 빅토리의 주방. 녹색이라고는 보이지 않는군요.--;]

 허나 이제까지 이 홈페이지의 글을 봐오셔서 아시겠지만, 범선 시대 당시 선원들의 식사는 저런 식료품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소금에 절인 고기와 딱딱한 쉽비스킷, 거기에 맥주 정도가 기본적인 식단이었죠. 야채라고 해봐야 당근이나 말린 콩 정도가 대부분이었고, 특히나 영국인의 경우 평소에도 푸른 야채 종류를 그렇게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오랜 항해 기간 동안 비타민 부족으로 인해 선원들이 괴혈병에 걸리거나, 부어오른 잇몸을 부여잡고 딱딱한 비스킷을 씹었을 때 눈물이 날 만큼 고통을 느끼곤 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문제는 그냥 아픈 정도에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종국에는 선원들이 하나 둘씩 픽픽 죽어나간다는데 있었습니다.


1. 유럽 선박에서의 괴혈병과 제임스 린드의 괴혈병 치료 실험

 유럽의 항해사에 있어서 괴혈병에 대해 언급된 가장 최초의 기록은 1497년에 있었던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해 당시의 것입니다. 이 항해에서 그는 160명의 선원 중 100여 명을 잃었는데 이 대부분이 괴혈병 때문이라고 추정되었죠. 한편 영국 해군의 경우 1740년에 있었던 조지 앤슨(George Anson) 경의 세계일주 항해 당시 있었던 사건이 괴혈병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740년에 영국을 출발했을 당시에 1,854명이었던 총 인원 중 1,400명 가량이 항해 도중 사망했는데, 이중 상당수가 괴혈병 증세의 악화 때문에 목숨을 잃었던 것이죠. 1600년대 이후로 감귤류가 괴혈병 증세를 완화하는데 효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바 있었지만, 앤슨의 항해에서는 감귤류뿐만 아니라 괴혈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다른 식료품들도 전혀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저런 처참한 사망자로 나타났던 것이죠.


[조지 앤슨 경의 모습과 탐험 항해 과정을 묘사한 그림. 하지만 현실은 저런 유쾌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합니다.]

 이때 앤슨의 항해 결과에 자극받아 본격적인 괴혈병 치료법의 규명에 착수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James Lind)였습니다. 물론 린드는 처음으로 체계적인 실험에 의해 괴혈병 치료법을 찾아내려고 한 사람이었지, 식품을 통해 괴혈병을 치료해보려고 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 괴혈병에 대해서는 대략 세 가지 정도의 학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죠.

 첫 번째는 일부 증상의 유사성에 착안하여(신체 곳곳에 나타나는 궤양 등) 괴혈병을 성병(!)의 일종으로 본 것이었습니다. 선원들이란 대체로 성적으로 문란한 편이니까 생기는 병이겠거니 했던 것이죠. 그렇다면 당연히 그 성병이 왜 유독 오랜 항해 끝에만 생기는 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법도 했지만, 이 학설은 꽤 오랫동안 지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두 번째 학설은 고대 이래의 4체액설(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한 것으로써, 인간은 담즙질, 신경질, 다혈질, 점액질 등 4종류의 체액으로 구성돼 있고 이것의 균형이 깨질 때 병이 나타난다고 본 이론)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괴혈병 또한 체액의 균형이 깨져서 발생한 것이며, 뜨겁고 습한 증상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다면 차갑고 건조한 음식이나 약을 먹음으로써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세 번째 학설은 통칭 ‘부패(putrefaction)’ 이론으로써 체내의 알칼리 성분의 부족으로 인해서 피가 부패하기 때문에 괴혈병이 일어난다고 보았던 학설이었습니다. 또한 데이빗 맥브라이드(David MacBride)라는 학자는 발효 시에 생기는 일산화탄소가 부패를 막는다고 주장하여 발효성이 있는 신선한 야채나 맥아(malt)를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린드 또한 이 부패 이론을 지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위와 같은 요소들뿐만 아니라 산(酸, acid)의 결핍 또한 중요한 원인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산의 보충을 위해 오렌지나 레몬을 먹을 것을 권장했습니다.


[체계적인 괴혈병 치료법 규명을 시도했던 군의관 제임스 린드와 그의 실험 모습. 중간에 레몬 쥬스의 신맛 때문에 인상을 찌푸린 사람이 있네요.^^;]

 더 나아가 린드는 이러한 학설을 체계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1747년에 괴혈병 치료 실험을 진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괴혈병에 걸린 12명의 수병들은 2명씩 6개의 그룹으로 나눈 뒤, 각각 다른 치료법을 제공해서 그 결과를 비교하고자 하는 것이었죠. 실험 방식은 환자들의 주식으로는 신선한 양고기 스프, 푸딩, 끓인 비스킷과 설탕, 보리, 쌀, 건포도, 와인 등 모두 동일한 것을 주되, 거기에 각 그룹 별로 한 가지씩 다른 치료법을 제공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매일 2파인트(=1.14리터)의 사과주(cider)를 제공받았고, 두 번째 그룹은 황산염 물약 25방울, 세 번째 그룹은 식초 6스푼, 네 번째 그룹은 바닷물 반 파인트(=0.26리터), 다섯 번째 그룹은 오렌지 2개와 레몬 1개,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그룹은 마늘과 겨자씨, 호스래디쉬 등 매운 향료와 보리 미음, 몰약, 향유 등을 섞어서 만든 연고를 받았습니다.

 이중 다섯 번째 그룹은 도중에 과일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6일째까지만 실험이 진행되었지만, 그 6일 동안에 피실험자 중 1명은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고 나머지 1명도 다른 환자들을 간호하는걸 도울 수 있을 정도로 경과가 좋아지기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다른 그룹들의 경우 첫 번째 그룹만 2주 후에 약간의 회복을 보였을 뿐, 나머지는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죠.


[환자에게 레몬즙을 짜 먹이는 린드. 과일이 부족해서 투여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효과를 보였습니다.]

 이 실험 직후 린드는 박사 논문에 집중하기 위해 잠시 해군을 떠났다가 1753년에 <괴혈병론>이라는 논문을 작성했지만, 이는 다른 학설들에 묻혀서 사실상 무시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앞서 말한 맥브라이드 같은 학자는 발효성 이론을 내세워서 괴혈병의 치료법으로 맥아즙(맥주의 원료로써 맥주 농축액 같은 것)을 주장하고 있었죠.


2. 영국 해군의 탐험 항해에서 행해진 괴혈병 예방 시도와 그 결과들

 1760년대에 행해진 영국 해군의 탐험 항해에서는 이러한 이론들을 참고하여, 앤슨과 달리 출항 전부터 괴혈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식료품이나 치료법 등에 대해 착실하게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1766년에 있었던 새뮤얼 월리스(Samuel Wallis) 함장의 항해 시에는 출항 전에 맥아(malt),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양배추), 식초와 겨자, 그리고 15톤의 휴대용 수프(portable soup, 고기와 야채로 만든 수프를 진하게 졸여서 젤리 형태로 굳힌 것) 등을 배에 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4년 뒤인 1770년에 있었던 제임스 쿡(James Cook)의 첫 번째 항해에서도 월리스와 마찬가지로 맥아즙(wort), 휴대용 수프, 식초, 겨자, 사우어크라우트, 오렌지와 레몬 등을 대량으로 적재한 바 있었죠. 이중 사우어크라우트는 배에서도 생 양배추나 절인 양배추를 자주 먹는 네덜란드나 독일 지역 선원들이 괴혈병에 잘 걸리지 않았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었죠.


[1770년에 시작된 쿡의 첫 번째 항해는 괴혈병의 극복에 있어서 널리 알려진 일화 중 하나입니다만, 쿡이 그런 수단들을 실행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식료품들의 종류가 잡다했던 것은 그만큼 괴혈병 치료에 대해 다양한 이론들이 난무하고 있었던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맥아즙의 경우 맥브라이드의 발효성 있는 공기가 괴혈병에 좋다는 이론에 따른 것이었고, 휴대용 수프는 고기와 야채를 보존하는 수단의 일종으로써 신선한 식품이 괴혈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이론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식초, 겨자, 사우어크라우트, 오렌지와 레몬 등은 산이 괴혈병에 좋다는 학설을 따른 것이었죠.


[쿡의 항해에 투입된 여러 괴혈병 치료 수단들. (1)맥아즙, (2)사우어크라우트, (3)휴대용 수프(마치 양갱같죠?),
 (4)쿡의 시대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휴대용 수프. 그 시대 해군의 음식은 역시 보존성이 엄청나네요.]


 그래서 결과는 어땠는가 하면, 맥아즙의 경우는 쿡 자신이 ‘우리는 오랫동안 그것, 혹은 그것이 부족하다는 느낌 없이 지냈다’고 언급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맥아즙이 괴혈병 치료에 별 효과가 없었음을 밝혔습니다. 마찬가지로 휴대용 수프 또한 큰 효과는 없었는데, 잘 아시다시피 신선한 식품 자체보다는 그 안에 들어있는 비타민C가 중요하며 휴대용 수프에는 비타민C가 거의 함유돼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한편 사우어크라우트의 경우는 괴혈병 증세를 완화시키긴 했지만 효과는 다소 제한적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양배추를 사우어크라우트로 가공하는 과정과 오랜 보존 기간 때문에 비타민C가 많이 파괴되기 때문이었죠. 본래 생 양배추는 100g당 비타민C 함량이 49mg 정도로써, 요리를 해도 20mg 정도를 함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의 가공품인 사우어크라우트는 100g당 비타민C 함량이 15mg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죠.


[감귤류 삼형제: 다른 수단들보다도 감귤류가 제일 효험이 좋았으나 정작 이 사실은 그리 널리 퍼지지는 않았습니다.]

 정작 쿡의 항해에서 괴혈병을 막아주었던 것은 오렌지와 레몬즙, 그리고 쿡이 가능한 한 자주 육지에 상륙해서 신선한 식품들을 보급했던 행동 등이었습니다. 또한 냄비 밑에 눌어붙은 지방 등을 긁어먹는 것을 금지시킨 조치도 괴혈병을 막는데 일조했는데, 이는 지방 때문에 비타민의 흡수가 저해되곤 했기 때문이었죠(물론 쿡 자신은 그런 사실을 알고 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리하자면 이 당시의 괴혈병 대책들은 경험적인 분석을 통해서 어느 정도 효과적인 치료법들을 찾아내긴 했지만, 정확한 이론과 원인을 알고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핀트가 어긋난 부분도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신선하긴 하지만 정작 비타민C는 들어있지 않은 식품이라든가, 신맛이 나고 산도 충분히 들어있지만 마찬가지로 비타민C가 거의 없는 식품에 몰두했던 것이 그런 사례일 테죠.


3. 라임 쥬스가 제식화 되기까지의 과정

 때문에 쿡의 항해 이후에도 괴혈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논쟁은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고 크게는 <신선 식품 옹호파>와 <산(酸, acid) 옹호파>로 나뉜 바 있었습니다.

 이중 <신선 식품 옹호파>는 괴혈병의 원인이 과도한 소금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당시 해군에서 보급하던 소금에 절인 고기 대신 신선한 고기나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보았죠. 넬슨 제독도 이런 견해를 지지하던 사람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양파를 대단히 선호해서 그의 함대가 기항할 때마다 양파를 대량으로 사들이는데 몰두하곤 했다고 합니다. 한편 감귤류를 옹호했던 린드 또한 신선 식품 옹호자였는데, 그는 담요 위에 흙을 얇게 깔고 그 위에 겨자나 냉이 씨앗 같은걸 심어서 배 위에서 직접 채소를 길러먹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죠. 어쨌거나 린드 등의 신선 식품 옹호자들은 신선한 감귤류 또한 괴혈병에 효험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감귤류의 효과를 다른 측면에서 보는 사람들, 즉 괴혈병의 치료 효과가 감귤류에 들어있는 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산 옹호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치료 효과가 산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굳이 감귤류 말고도 산이 들어있는 다른 수단을 채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죠. 확실히 레몬이나 라임 쥬스 등은 마실 만하게 만들려면 설탕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값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고(레몬즙을 생으로 그냥 들이키는 상상을 해보시길--;), 황산염이나 식초처럼 저렴하면서도 산이 풍부한 대안들 또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프랑스 해군의 괴혈병 대책도 이런 <산 옹호론>에 기반한 것이었죠.

 이렇듯 정체되어 있던 감귤류의 채택에 진전을 가져온 것은 당시 로드니 제독의 주치의이면서 해군성 산하 <환자&부상자 위원회>의 일원이기도 했던 길버트 블레인(Gilbert Blane)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블레인은 감귤류의 채택을 옹호하는 사람이었지만, 당시까지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것처럼 졸인 시럽 형태가 아니라 그냥 생과즙을 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보기에는 시럽을 만들기 위해 라임이나 레몬즙을 졸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이 이들 즙의 효능을 떨어뜨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죠(실제로 비타민C는 열에 약하며, 조리 과정 중에 많이 파괴된다고 합니다).

 이런 발상은 점차 블레인 외에도 많은 지지자를 얻게 되었고, 1794년에는 74문 전열함 서포크의 인도 항해 기간(약 6개월) 동안 신선한 레몬 쥬스를 배급하는 실험이 행해졌습니다. 이 항해 동안 매일 레몬 쥬스 2/3온스(=약 20ml)와 설탕 2온스(=56g)가 럼주에 혼합되어 배급되었는데, 단지 15명만이 괴혈병의 징후를 보였고 그나마도 레몬 쥬스의 양을 늘리자 곧 회복되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사실 2/3온스는 현대의 일일 비타민C 섭취 기준에는 조금 못 미친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실험의 성공적인 결과와 위원회 내에서의 블레인의 영향력에 힘입어서 영국 해군성은 다음해인 1795년부터 레몬 쥬스를 정식으로 배급하기에 이르렀죠.


4.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던 괴혈병

 이렇게만 보면 1795년 이후 해군에서 괴혈병이 완전히 사라져서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는 해피엔딩이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망자는 현저히 줄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괴혈병의 발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는 1795년의 레몬 쥬스 배급 규정이 첫 번째로는 영국 해군 함대 전체가 아니라 프랑스의 대서양 연안 항구를 봉쇄하고 있던 해협 함대(Channel Fleet)에만 적용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레몬 쥬스의 배급이 ‘군의관의 판단에 따라 이뤄진다’는 조항 때문이었죠. 당시 해협 함대의 수석 군의관은 매일 매일 레몬 쥬스를 배급하면 수병들의 체질이 약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예방약이 아니라 치료약으로만 사용했고, 그 때문에 여전히 괴혈병의 발병은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물론 빨리 낫기는 했지만). 해협 함대의 이런 사태는 레몬 쥬스의 예방적 효능을 잘 알고 있던 저비스 제독이 사령관으로 취임하여 수석 군의관이 교체된 이후에야 해결될 수 있었죠.

 마찬가지로 1803년이 되면 레몬 쥬스의 배급이 대부분의 해외 주둔 함대에게도 확산되긴 했지만, 여기서도 배급 자체는 군의관의 판단에 따라 이뤄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레몬 쥬스 자체가 정규 식단(standard ration)에 수록되거나 신선한 식품의 대체품으로 포함되지도 않은 상태였죠. 즉, 레몬 쥬스는 여전히 식품이 아니라 의약품으로 분류되고 있었으며 레몬 쥬스의 예방적 효능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함장이나 군의관들도 아직까지 적지 않은 수가 남아 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국지적으로 레몬 쥬스 배급이 중단되거나 신선한 식료품의 공급이 곤란했던 경우에는 때때로 함대 단위의 괴혈병 발발 사태가 재발하기도 했죠.


[영국 해군은 비용과 레몬의 조달 문제 때문에 도중에 레몬에서 라임 쥬스로 갈아타게 되었고, 그 이후 'limey'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죠.]

 그래도 어쨌거나 레몬 쥬스의 배급 이후, 특히 병이 난 뒤에 치료약으로써 주는 것이 아니라 예방적으로 배급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괴혈병이 급격히 감소했던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포츠머스의 해군 병원에 입원한 괴혈병 환자의 통계를 보면, 1779년 당시에는 한 해에 15,141명의 환자가 있었지만 1801년에는 이것이 한 해에 1,667명 수준으로 현저히 줄어들었던 것이죠.

 그리고 괴혈병이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은 1820년대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희망봉, 아센션 섬, 세인트 헬레나 섬 등 주요 항로의 중간 기항지에 본격적으로 채소 재배가 시작되면서 신선한 식료품의 보급이 훨씬 수월해졌고, 마찬가지로 이 시기부터 가속화되기 시작된 통조림 등 식료품 보존 기술의 발달도 이에 기여했던 것이죠. 물론 레몬 쥬스나 그 대체품인 라임 쥬스의 보급도 일반화되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1850년에 이르면 이제 여객선의 승객이나 상선의 선원에게도 항해 도중에 레몬이나 라임 쥬스의 공급을 의무화하는 법이 의회에서 통과되기에 이르렀죠.

 하지만 괴혈병의 원인과 발병 기제 및 치료법 자체가 완전히 규명되었던 것은 폴란드의 카시미르 훈크(Casimir Funk)가 1912년에 비타민의 존재를 밝혀낸 이후였습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괴혈병이 비타민C의 결핍 때문에 생긴다는 점, 비타민C는 녹황색 채소나 과일 종류에 많다는 점, 하지만 비타민C는 파괴가 빠르고 특히 열에 약하다는 점 등이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죠.


5. 마치며...

 괴혈병은 오랫동안 대양을 넘나드는 항해자들과 주요 해군들, 특히 영국 해군의 고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감귤류의 효용을 체계적으로 밝힌 린드의 실험과 제임스 쿡의 항해 당시의 경험 등을 통해 괴혈병을 극복하는 수단―레몬 또는 라임 쥬스―이 정착되었다는 관념이 일반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입증 이후에도 레몬 쥬스가 받아들여지기까지는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연 자체도 해군 당국의 보수성이나 의지 부족에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당대의 복잡한 이론적 논쟁―괴혈병의 치료 효과가 감귤류의 산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신선한 식품이라는 측면에서 나오는가 하는―이 배경에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었죠.

 또한 한편으로 괴혈병에 얽힌 극복 노력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병 원인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면서도 경험을 통해 치료법을 찾아나가려는 과정, 하지만 또한 원인이나 메커니즘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때때로 후대의 우리들이 보기에는 완전히 엉뚱해 보이는 헛다리를 짚거나 시행착오를 겪어나가기도 했던 그런 과정들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가 우스워 보일 수 있다 하더라도 제한된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던 과거 사람들의 노력만큼은 높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덧 1) 본래 영국 해군은 레몬 쥬스를 배급했습니다만, 레몬보다 라임이 훨씬 더 값이 싸고 해외 식민지 등에서도 구하기 쉽다는 이유로 도중에 라임으로 갈아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라임은 레몬보다 비타민C 함유량이 적기 때문에 이 조치는 결과적으로는 개악이 되었죠.

덧 2) 범선 시대 당시나 19세기까지도 모름지기 선원이란 남자답게 독한 술을 마시고 육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상선과 군함을 통틀어 해양세계의 일반적 인식이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레몬이나 라임 쥬스가 처음 배급됐을 때에도 이를 거부하는 바람에 자업자득 격으로 괴혈병에 걸린 선원들도 많았다고 하죠(예전의 해군 카레 이야기에서 빵을 안 먹고 버린 수병들의 경우와 비슷하달까요?).
 또한 영국 선원을 지칭하는 말 중 하나로 ‘limey'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19세기 초반의 미국인들이 붙인 별명인데, 아마도 ‘라임쥬스나 마시는 새퀴들ㅋㅋ’ 정도의 뉘앙스가 담긴 표현이었을 테죠.

덧 3) 사우어크라우트는 영국에서는 제임스 쿡이나 일부 함장들에 의해서만 반짝 활용되는 수준이었지만, 본고장인 네덜란드나 독일 지역 선박에서는 자주 식탁에 올랐습니다. 아마 이것이 19세기 이전에 배에서 먹었던 피클 종류라고 할 수 있을 테죠.

덧 4) 비타민C는 과일이나 채소뿐만 아니라 고기에도 들어있습니다. 단, 비타민C 자체의 특성상 도축한 뒤 오래 되거나 하면 급격히 파괴되긴 했지만 말이죠. 그래서 염장 고기를 먹었을 때는 차도가 없던 수병이 배에서 돌아다니는 쥐를 잡아먹었을 때는 가끔 괴혈병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Janet MacDonald, Feeding Nelson's Navy: The True Story of Food at Sea in the Georgian Era (Naval Institute Press, 2006).
- John Masefield, Sea Life In Nelson's Time (Kessinger Publishing, 2007).
- http://www.pbenyon.plus.com/Cond_of_Serv/Food.html
- http://www.bbc.co.uk/history/british/empire_seapower/captaincook_scurvy_02.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