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원들의 이상향 Fiddler's Green
누구에게나 제 나름의 이상향은 존재합니다. 중세의 농민들은 풍족한 음식이 무한히 솟아나는 낙원을 꿈꿨고 북유럽의 전사들은 낮에는 하루 종일 전투를 벌이고 밤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한 잔치가 이어지는 다음 세상, 발할라(Valhalla)에 가고 싶어 했죠. 마찬가지로 뱃사람들에게도 이런 이상향이 존재했으니, 그것이 바로 < Fiddler's Green>입니다. < Fiddler's Green>은 좋은 선원이 죽었을 때 간다고 여겨지는 저 세상의 섬입니다. 이 섬에서는 항상 춤과 음악이 끊이지 않고(fiddler라는 단어 자체가 바이올린 연주자를 의미한다고 함) 술(주로 럼이겠지요?)과 담배가 무한히 제공되며, 아름다운 아가씨가 언제나 옆에서 미소를 짓는 그런 곳이라는 것이죠.
본래 < Fiddler's Green>은 아일랜드의 전설로써, 바다 생활에 지친 늙은 선원이 어깨에 노를 걸치고 해안으로 걸어 들어감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다가 아름다운 작은 마을을 만나고, 그 마을 사람들이 이 늙은 선원에게 무엇을 들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 선원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어느 샌가 < Fiddler's Green>에 도착해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죠. 그 후 사람들은 이 늙은 선원을 태양이 내리쬐는 마을 한가운데의 테이블과 의자로 안내하는데, 여기서 선원은 마지막 한 방울을 마셔버리면 저절로 채워지는 럼주 잔과 영원히 타오르는 담배 파이프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런 노동에 시달릴 필요 없이 음악과 춤, 그리고 럼과 담배를 만끽하면서 영원히 즐거운 휴양 생활을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 전설의 또 다른 버전에서는 < Fiddler's Green>을 남대서양 어느 곳에 위치한 섬으로 묘사합니다. 이 섬은 오래된 배들과 선원들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eternal anchorage)을 취하는 곳으로써, 바다는 잔잔하고 인어의 눈처럼 짙은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며 해가 지면 바이올린 연주자(fiddler)의 음악이 깔리고 선원들이 즐겁게 춤을 춘다고 여겨지곤 했죠.
[선원들의 이상향 Fiddler's Green]
< Fiddler's Green>을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대략 위와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야말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모든 좋은 뱃사람들과 오래된 배들이 모이는 따뜻한 남태평양 섬 같은 분위기랄까요? 17세기의 범선과 20세기의 유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배가 모여 있고 한쪽에서는 바이킹과 20세기의 제독이 한 테이블에서 술을 기울이며, 모두들 끊임없이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나 아가씨와 키스를 나누는, 즐겁고 떠들썩한 그런 분위기 말이죠.
2. Fiddler's Green 속에 담긴 선원들의 일상과 열망
이런 류의 이상향 이미지는 결국 현재 자신이 간절히 바라거나 즐기는 것, 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그것이 만족할 만큼 충족되진 않는 것들과 관련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중세 유럽의 농민들이 동경했던 코케인(Cockaigne)라는 이상향은 음식이 원하는 만큼 무한히 나타나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하면 구운 고기나 생선, 속을 채워 넣은 거위 요리, 과일 파이 등등이 옆에 생겨나기에 배불리 먹을 수 있고 강에는 와인이 흐르며, 아무리 마셔도 컵에는 늘 맥주가 가득 차있다는 것이죠.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저절로 음식이 생겨나는 이상향(좌)에 대한 갈망은 사실 배고픔과 조악한 음식이 일상화된 현실(우)에서 나온 것이었죠]
이처럼 <음식이 넘치는 낙원>에 대한 동경은 실제로 현실에서는 농민들이 늘상 굶주림과 기아에 시달리고 보잘 것 없는 음식으로 연명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친 흑빵과 귀리죽을 삼키며, 때로는 그것조차 없어서 쓰려오는 배를 움켜쥐면서 ‘세상 어딘가에는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좋은 곳이 있겠지.’ 라고 막연한 희망을 가졌던 것이 저런 이상향으로 구체화된 것일 테죠.
이와 마찬가지로 < Fiddler's Green>의 핵심 요소―음악, 춤, 술, 여자―또한 범선 시대 당시 선원들의 일상 및 여가 패턴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17세기 선원들의 세계를 다룬 책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에서 발췌한 관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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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 이처럼 선원들이 바다 사나이들의 형제단에 가입하면 해양문화와 해양 공동체는 다양한 활동들―노래, 춤, 이야기, 음주―에 의해서 확장되고 유지되었다. 사교적인 의식들은 고립된 선상세계에서 극히 중요했다. 선원들 사이의 유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문화 형태는 노래였을 것이다. 선원들은 음악을 잘 만들었고 노래도 잘 불렀으며 서정적 노래들과 발라드 등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퍼스는 17세기 후반이 “선원들의 삶과 모험, 사랑과 결혼, 만남과 이별 따위를 묘사하는 발라드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한 시기였다”고 쓰고 있다. 블루스의 초기 형태인 “뱃사람의 비가(悲歌)”는 아내, 자식, 부모, 친구, 그리고 고향과 이별하는 애달픈 노래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뱃사람들은 해전, 폭풍우, 강제징병, 난파 등의 위험과 모험, 비극과 투쟁 등을 노래한 발라드들도 불렀다.
(중략) ... 춤 또한 선상의 문화 생활의 한 중요한 부분이었다. 존 밸서프는 이렇게 읊었다. :
“슬픔과 근심을 뱉어내려고 이따금 앞갑판에서 우리는 시골 춤을 추지.
때로는 무슨 춤을 추는지도 모르고 그저 껑충껑충 뒤죽박죽 오합지졸 같은 춤.
하지만 내 말 들어보게, 우리 선원들의 춤은 그 어떤 재봉사의 옷보다도 산뜻하다네.”
존 코블에 따르면 때로 선원들은 “메이폴(maypole: 5월제를 축하하기 위해 꽃이나 리본으로 장식한 기둥) 대신에 주돛대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고, 앞갑판 노래들 중에는 꽤 우스운 것이 많았다.
[선원들의 저녁 술자리 정경]
(중략) ... 음주는 항해문화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사실 너무도 중심적인 위치여서 바너비 슬러시는 “술은 뱃사람의 육체와 정신이 함께 붙어 있게 해주는 접착제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음주행위 자체뿐 아니라 인사불성이 되도록 폭음하는 것 또한 일상적이었다.
(중략) ... 음주는 매일의 인간관계의 한 부분으로써 관례적으로 이용되었다. 선원들은 술 마실 때 귀족들처럼 늘 건배를 하곤 했는데, “마누라와 정부, 친구, 동료, 항해, 행운, 안전한 귀향 등을 위해서 건배를 했다. (중략) 음주는 선원이라는 운명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일시적이나마 덜어주었고 동시에 사회적 유대를 창출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유익이 훨씬 더 복합적이기 때문에 술은 옷보다 ”더 좋은“ 것이었다. 술은 노래, 춤,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선상세계에 사는 거주자들에게는 단조로움으로부터의 일탈이었고 여흥이었으며 일체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출처: 마커스 레디커, 박연 옮김,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 (까치, 2001), pp. 17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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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즐거움들은 배에서도 즐길 수 있었지만, 보다 일반적이고 그야말로 ‘여가다운’ 즐거움은 선상이 아닌 육지, 바로 항구의 선술집에서 행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근래에 나온 해적 영화들에는 비록 어느 정도 희화화된 면이 있긴 하지만, 이런 항구의 선술집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선원들이 음악과 술․담배, 그리고 여자 등등을 마음껏 누리며 시끌벅쩍 하고 자유분방하게 날뛰는 그런 분위기말입니다.
[술과 음악과 여자가 가득한 뱃사람들의 여흥: 해적과 선술집]
< Fiddler's Green>에 투영돼 있었던 것은 이런 즐겁고 떠들썩한 선술집의 이미지였습니다. 술과 노래, 춤 등이 선상생활의 단조로움으로부터의 일탈이자 여흥이고 일체감의 원천이었다면, 파도와의 싸움과 고된 노동에 지친 선원들이 그런 여흥들이 넘쳐나는 이상향을 꿈꿨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 테죠.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게임 「대항해시대 2」의 주점의 테마곡의 이름 또한 ‘Fiddler's Green'입니다.
[(좌) 또다른 Fiddler's Green 이미지.
(우) 현실의 Fiddler's Green: 영국 해군의 수병들 중 일부는 퇴역 후 해군 병원에 수용되어 연금생활자로써 남은 생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현실의 Fiddler's Green 그 두 번째: 타히티에 도착한 바운티 호의 수병들에게도 그곳은 낙원이었을지도 모릅니다.(사진은 영화 「바운티 호의 반란(1962)」에서)]
p.s. < Fiddler's Green>이 ‘죽은 뒤에 저런 곳에 갔으면....’ 하는 막연한 희망에 가까웠다면 보다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사후 세계는 <데이비 존스의 함(Davy Jones's Locker)>이었습니다. 데이비 존스란 17~18세기 선원들 사이에서 믿어지던 바다 밑에 사는 유령이었는데, 그는 바다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고 있는 상자 위에 살면서 수면으로부터 가라앉아 내려오는 물건들(침몰한 배나 가라앉은 상자 등)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은 뒤 그의 상자 속에 영원히 보관한다고 여겨졌죠.
[데이비 존스는 바다 밑에 위치한 자신의 함 위에 앉아 가라앉아오는 모든 것들을 긁어모으는 악마 내지는 유령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죽어서 바다에 던져져 결국 해저에 가라앉는 시신들 또한 결국 데이비 존스에게 가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죠.]
따라서 바다에 빠져 익사하거나 혹은 배 위에서 죽은 뒤 해먹에 싸여 수장된 시신들 또한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아서 결국 데이비 존스의 함에 갇히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선원들은 죽어서 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데이비 존스의 함으로 간다(gone to Davy Jones's Locker)’고 표현했고, 데이비 존스의 함은 곧 죽음과 동일시되었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2편에도 이 데이비 존스가 나오는데 영화에 나오는 다른 해양 전설들과 마찬가지로 이 요소도 영화 내에서는 다소 변형되어서, 함은 존스의 심장을 보관하는 용도로 바뀌었고 본래 전설에서의 ‘영원히 갇힌다’는 요소는 존스의 배에서 영원히 복무하게 된다는 것으로 변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데이비 존스의 “Locker(...;;)"]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J.F.C. 해리슨, 이영석 옮김, 『영국민중사』 (소나무, 1989).
- 마커스 레디커, 박연 옮김, 『악마와 검푸른 바다 사이에서』 (까치, 2001).
- Peter D. Jeans, Seafaring Lore & Legend (International Marine Publishing, 2004).
- http://www.phrases.org.uk/bulletin_board/13/messages/1229.html
- http://www.worldwidewords.org/qa/qa-fid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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