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증기기관의 도입과 ‘화부(stoker)'의 등장
영화 「타이타닉」을 보신 분 중에서 배가 출항 직후 속도를 높일 때쯤 기관실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피스톤과 빡세게 불을 지피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춰진 것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화부들이며, 개인적으로 그 장면을 보면서 ’호화여객선의 대서양 고속횡단이란게 저절로 이뤄지는게 아니구나‘ 하는걸 절절히 느꼈는데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 역시 그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하겠습니다.
[화부(stoker)]
19세기는 해군의 역사에 있어서 여러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기술 발달과 산업혁명에 힘입어 새로운 기술이 나타났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더 새로운 기술에 의해 퇴출당하던 때였죠. 장갑함, 작열탄, 시조포 등 여러 가지 신기술들이 등장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던 것은 아마도 풍력에서 증기력으로의 전환이 아니었나싶습니다. 허나 기술의 변화는 단지 그 자체로만 그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배에 정밀 기계류가 설치되면서 기관을 다룰 전문지식이 있는 승조원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관병과가 신설된다던가, 주먹구구식의 경험전수 위주였던 교육제도가 체계적인 사관학교제로 변경된다던가 하는 변화가 있었죠. 그리고 증기기관이 도입됨에 따라 수병계급에서도 이전에는 없던 보직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인 ‘화부(stoker)'입니다.
해군 내에서 증기기관의 시대가 본궤도에 오른 것은 영국해군이 1820~30년대부터 항구 내의 예인선이나 소형포함 등에 증기기관을 탑재한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항해장비든 그것을 관리하고 돌볼 승조원이 따라붙는 것이 당연하므로 1837년에는 ‘기관사관(Engineer Officer)' 보직이 정식으로 신설되었죠. 하지만 증기기관의 특이점은 범선과 달리 통상적인 관리요원 외에도 추가적인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증기기관은 물로 증기를 만들어내는 보일러와 이 증기를 이용하여 동력을 만들어내는 기관부(왕복동식 엔진 or 증기터빈)로 구성되는데, 기관사관이나 기관병은 오로지 기관부의 작동만을 책임질 뿐이고 정작 배를 움직일 증기를 발생시키려면 누군가가 보일러 화로 옆에 붙어서 끊임없이 연료(=석탄)를 집어넣어주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죠.
최초에는 보통의 수병 몇 명을 데려다 화부 일을 시키다가 점차 전문 관리자를 둘 필요성이 늘어나자 1842년에 하사관 계급에 ‘화부장(Leading Stoker)’ 보직이 생겨났고 이어서 1844년에 수병계급에도 정식으로 ‘화부(Stoker)’ 보직이 신설되었습니다. 1860년경에 이르면 기관실과도 분리되어 1명의 화부장(Chief Stoker : 하사관) 예하에 다수의 화부, 운반수(Coal Passer : 석탄창고에서 화로까지 석탄을 운반), 정리원(Coal Trimmer : 석탄은 고체이므로 석탄창고에서 석탄을 퍼낸 뒤 일일이 표면을 고르게 해줘야 배의 균형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음)이 딸린 부서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2. 화부의 작업환경 및 생활상
1) 일반적 작업여건
화부들의 작업장은 배의 가장 밑바닥인 보일러실이었지만, 그들은 물리적 위치뿐만이 아니라 작업환경이나 근무여건 면에서도 수병 계급 내에서 가장 밑바닥적인 존재였습니다. 한창 항해중일 때의 보일러실은 평균 43도에 달하는 열기와 석탄먼지 & 재, 그리고 사람의 땀냄새가 섞인 공간이었고 민간 기선이나 군함을 막론하고 ‘화부’ 라는 직업은 당시에도 가장 힘들고 지저분하며 위험한 일로 간주되었죠.
[장갑함 워리어의 보일러실 : 과거와 현재]
이를테면 1861년에 준공된 장갑함 ‘워리어’ 호에는 10기의 보일러가 탑재되어 있었고 각각의 보일러에는 4개의 화로가 딸려있었으며, 이들 40개의 화로를 66명의 화부와 운반수, 정리원이 4시간 단위로 교대 근무하며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운반수가 석탄창고에서 양동이나 마대자루에 석탄을 가득 담아 화로 앞에까지 운반하면 화부가 삽으로 석탄을 퍼서 화로에 집어넣은 후 불이 잘 붙도록 꼬챙이로 석탄을 잘 흐트러줘야 했죠. 한편 석탄은 화로에 넣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 타고나면 흰 재가 되어 화로 바닥의 재받이에 쌓이므로 몇 시간마다 화로의 불을 죽이고 재를 긁어내야 했습니다. 화부가 재받이를 들어내 흰 재를 보일러실 바닥에 쏟으면 운반수는 불씨가 되살아나지 않도록 재에 물을 뿌린 다음(이 과정에서 또 막대한 석탄증기가 발생함), 완전히 꺼진 재를 양동이에 담아 상갑판에 올려보내 바다에 버리도록 하였죠.
보일러실의 사람들 중 무거운 짐을 지고 석탄창고와 화로를 왕복하는 운반수의 일은 특히 고된 편에 속했습니다. 미서전쟁 당시 프레드릭 윌슨이라는 한 미해군 장교가 남긴 기록은 당시 운반수의 일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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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중일 때 운반수의 임무는 화부에게 석탄을 전달하는 것이다. 어떤 배에서는 섭씨 65~79도의 환경에서 20kg짜리 석탄 양동이를 40~45번이나 날라야 하는 경우도 있으며... 재받이에서 재를 끄집어내 양동이에 담고 갑판 위로 올려보내야만 한다. 그는 또한 빌지 여과기가 석탄 먼지와 재로 막혔을 때 그것을 청소해야 하며, 화부가 지쳐 쓰러지면 그대신 화로에 석탄을 퍼넣어야 한다. 석탄보급이 있을 때면 갑판으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석탄을 석탄창고에 집어넣어야 하며, 보일러에 낀 녹과 진흙을 벗겨내고 페인트칠도 해야 하며, 광내는 일도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끔찍하게 지저분한 일이며 결코 완수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그가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게 될 때면, 그는 다시 훈련에.... (후략)
(http://www.spanamwar.com/gaul.htm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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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국 군함의 보일러실. (1919년경)]
아니면 소설 속에 묘사된 화부의 모습을 통해서 그들의 작업환경이 어땠는가를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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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 살롱 갑판에서 몇 길 밑 쇠줄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곳에 기관실이 있다. 흰 식탁 위에 술이 있고 해가 비치고 뺑끼 냄새 새로운 선창에 푸른 바다가 보이고 간혹 달빛조차 비끼는 살롱이 선경이라면 초열과 암흑의 기관실은 완전히 지옥이다― 육지의 이 그릇된 대조를 바다위의 이 작은 집합 안에서도 역시 똑같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다. 어둡고 숨차고 보일러의 열로 찌는 듯한 이 지옥은 이브를 꼬이다가 아흐레 동안이나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 사탄의 귀양간 불비 오는 지옥에야 스스로 비길 바가 아니겠지만 그러나 또한 이 시인의 환영으로 짜 놓은 상상의 지옥이 이 세상의 간교로 짜 놓은 현실의 지옥에야 어찌 비길 바 되랴.
얼굴을 익혀 가며 아궁 앞에서 불 때는 화부들, 마치 지옥에서 불장난치는 악마들같이도 보이고 어둠 속에 웅크린 반나체의 그들은 마치 원시림 속에 웅크린 고릴라와도 흡사하다. 교체한 지 몇 분이 못 되어 살은 이그러지고 땀은 멋대로 쏟아진다. 폭이 두 간에 남지 않는 좁은 데서 두 간에 남는 긴 화저로 아궁을 쑤시면 화기와 석탄재가 보얗게 화실을 덮는다. 다 탄 끄르터기를 바께쓰에 그뜩그뜩 담아내고 그 뒤에 삽으로 석탄을 퍼 던지면 널름거리는 독사의 혀끝 같은 불꽃이 확확 붙어오른다. 둘째 아궁과 셋째 아궁마저 이렇게 조절하여 놓으면 기관실은 온전히 불붙는 지옥이다. 아궁 위의 여섯 개의 보일러는 백 파운드가 넘는 증기를 올리면서 용솟음친다. 불을 쑤시고 또 석탄을 넣고……
[한창 작업중인 화부들. (사진은 영화 「타이타닉」에서)]
땀은 쏟아지고 전신은 글자대로 빨갛게 익는다. 양동이에 떠 온 물이 세 사람이 화부 사이에서 볼 동안에 사라지고 만다. 사실 물이라도 안 마시면 잠시라도 견뎌나갈 수가 없다. 북국의 바다 오히려 이러하니 적도 직하의 인도양을 넘을 때에야 오죽하랴. ―이렇게 하여 배는 움직이는 것이다. 살롱은 취홍을 돋우리만치 경쾌하게 흔들리는 것이다.
교체한 지 반 시간만 넘으면 화부의 체력은 낙지다리같이 느른해진다. 부삽 하나 쳐들 기맥조차 없어진다. 보일러의 파운드가 내리기 시작한다. 브리지에서 항구의 계집을 몽상하던 선장은 전화통으로 소리친다.
「기관에 주의! 속력을 늘여라!」
역시 항구 계집의 젖가슴을 환상하던 기관장은 이 명령에 벌떡 일어나 화실로 쫓아온다.
「무엇들 하느냐!」
화부는 느릿느릿 아궁에 석탄을 집어 넣는다.
「무엇 해 일하지. 너희들같이 편한 줄 아니.」
그러나 이것이 입밖에 나오지는 않았다. 폭발은 마땅한 때를 얻어야 할 것이다.
「부지런히 해라, 이놈들아!」
기관장의 무서운 시선이 화부들의 등날을 재촉질한다.
(부삽으로 쳐서 아궁 속에 태워 버릴까. 삼 분이 못 되어 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 똑같은 생각이 세 사람의 머리속에 똑같이 솟아올랐다. ... (후략)
(작가 이효석님의 단편 「노령근해」에서 발췌함. 원문 출처 : http://www.bongpyong.co.kr/data/no.ht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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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댕과의 사투 : (좌) 석탄보급 작업 / (우) 보급 종료 후의 청소]
때때로 석탄보급이 있을 때는 화부들뿐만 아니라 배의 모든 사람들이 동원되어 이 일에 매달리곤 했습니다. 배 옆에 댄 석탄보급선이나 부두의 석탄창고로부터 상갑판에 석탄이 내려지면 너나 할 것 없이 삽을 들고 해치를 통해 최하부 갑판까지 석탄을 쓸어보냈고, 석탄창고에서 기다리고 있던 화부와 운반수 등등이 이를 석탄창고 안으로 긁어모았습니다. 이런 보급작업을 완료하는데는 꼬박 2~3일이 걸리곤 했고, 석탄보급이 끝난 후에 수병들은 다시 몇 주동안 배 안에 남아있는 석탄의 흔적들을 청소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죠.
2) 교전시의 보일러실
화부로 일한다는 것이 평시에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보일러실 사람들은 더욱 힘들고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우선 전투시에는 평시보다 빠른 속도를 내야하는 일이 잦습니다. 배의 속도는 증기압과 관련이 있고 증기압은 또한 석탄의 연소량에 직결되어 있었으므로, 군함이 고속성능을 발휘해야할 때는 화부들은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죠. 때문에 장시간의 추적이나 고속기동이 있은 후에 화부들이 녹초가 되어 쓰러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고 심지어 과로로 사망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도거뱅크 해전 후반부 당시의 독일측 화부들은 정말로 미친듯이 석탄을 퍼넣었을테죠. 화로 온도에 생사가 달려있었으니.^^;)
[(좌) 사고 직전의 보일러실 / (우) HMS 썬더러의 보일러 폭발 사고. 기관실 요원은 전멸.]
게다가 배가 피격됐을 때 기관실이나 보일러실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확인하는 보증수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일러실이나 기관실 사람들은 위치나 임무상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행동이 뒤처질 수밖에 없는데다, 설상가상으로 상대방의 어뢰 공격은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으레 목표선박의 중앙부(=기관실 부근)를 노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죠. 일단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면 배의 가장 밑바닥에서 몇 층의 갑판과 방수문, 사다리를 지나 상갑판까지 도달하기란 쉽지 않았으며, 또한 피격의 충격으로 인해 보일러가 폭발하거나 파이프가 어긋나 고온 고압의 증기가 새나오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통구이가 될 가능성도 높았습니다. 아래 표는 2차대전 당시 리버티쉽 승조원들의 부서별 사망자 비율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타 부서 승조원들의 사망율이 탑승비율과 거의 비슷하거나 낮았던 반면에 기관부 요원들의 사망율은 승조원 정원에서 차지하는 비율 이상으로 높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
이런 위험과 고된 근무여건을 감안하여 각국 해군은 화부 및 운반수 등에 대해 같은 계급의 일반수병보다 높은 보수를 지급함으로써 유인책을 강구했습니다. (*주 : 1898년 당시 미해군의 보통수병 월급이 월 16$였는데 비해 화부는 월 22$를 받았음. 영국해군의 경우 1885년 당시 1등 화부의 월급이 연간 25파운드 17실링이었던데 비해, 그보다 한 계급 높은 상급수병의 봉급은 연간 24파운드 6실링에 불과했음. 또한 함선이 열대 해역에서 작전중일 때는 추가수당이 지급됨.) 또한 근무를 마치고 교대한 화부는 매일 자유롭게 세수를 할 수 있었고 1주일에 적어도 1번씩 목욕이 보장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보일러실의 특성상 온수를 자유롭게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화부들에게는 보일러실 근처에 별도의 거주구와 식당구역이 할당되어 번거롭게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죠.
[(좌) 휴식중인 화부들. 꾀죄죄한 저 옷도 원래는 흰색-_-; / (우) ‘밑바닥 인간들’의 고립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은 봉급을 제외한 다른 ‘유인책’들이 과연 생활환경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이를테면 영국해군의 경우 1900년대 초에 복제개정이 있을 때까지 화부의 공식적인 작업복은 ‘흰색 목면’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근무를 마치고나면 옷이 시커멓게 됐으며, 당국은 이를 해결한답시고 1860년대부터 수동식 세탁기를 보급했지만 결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아서 화부들은 일요일을 빼곤 늘 꾀죄죄한 차림을 하고 다니곤 했죠. (애초부터 짙은색 작업복을 지급하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한편 별도의 거주구와 식당은 갑판 위쪽 승조원들과의 접촉을 줄임으로써, 안 그래도 ‘밑바닥 인간들’로써 고립적인 환경에 놓여있던 그들을 더욱 고립적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화부 보직이 받는 높은 보수는 해군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의 선호율을 크게 높였지만 그들이 보수를 받는 과정 자체를 감내할만한 것으로 여겼을지는 의문입니다.
3. 화부의 소멸 : 석탄에서 석유의 시대로
증기기관이 해군에 도입된 이래 연료는 항상 석탄이었습니다. 유럽 각국은 저마다 독자적인 석탄공급원을 보유하고 있었고 양적인 면에서 대체연료의 필요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석유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질적인 면-고속화를 위한-에서였습니다. 석유는 석탄에 비해 연소효율이 높으므로 동일한 중량/용적의 기관으로도 출력증가가 가능하며 같은 양의 연료로도 더 많은 거리를 항해할 수 있었던 것이죠. 때문에 19세기 말에는 영국해군의 일부 전함에 석탄 위에 중유를 뿌려서 화력을 높이는 장치가 설치되는가 하면, 1905년에는 트라이벌급 구축함의 기관이 중유 전소방식으로 결정되었으며 여타 중˙소형함에도 차근차근 석유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된 것은 ‘석유광’으로 이름이 높았던 피셔 제독이 1904년에 해군성 제 1본부장(오늘날의 참모총장격)으로 취임한 이후의 일이었으며, 예산이나 석유자원 획득의 곤란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대세는 차근차근 석유연료로 흐르게 되었죠.
기관출력 강화와 고속화가 석유연료 도입의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그 외에도 석유연료에는 보일러의 효율적인 사용과 노동력의 감소라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데는 이런저런 번거로움이 따랐습니다. 석탄을 보급하는 과정이 복잡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연료공급방식도 운반수가 직접 석탄창고에 들어가서 석탄을 지고 나온 다음 화부가 삽으로 퍼서 보일러에 넣지 않으면 안되었죠. 게다가 투입된 석탄이 잘 타도록 골고루 펴줘야 하는 한편, 3~4시간마다 보일러를 정지하고 화로에서 재를 빼내야 하는 등 승조원이나 지휘부 모두에게 번거로운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석유연료에는 그런 번거로운 절차나 과정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보급 시에는 부두나 보급함의 정유고에서 배의 연료탱크로 파이프만 연결하면 만사가 해결되는데다, 기껏해야 1~2명이 파이프와 밸브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원활한 연료 공급이 가능하므로 예전처럼 화부니 운반수니 해서 보일러실에 몇 십 명씩 되는 인원을 둘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재를 빼내기 위해 보일러를 정지시킬 필요도 없죠. 석유는 배의 운용이나 행정 측면에서도 환상의 에너지원이었던 것입니다.
[확 줄었습니다! : 석유도입 이전과 이후의 보일러실 인원 수]
그 결과, 1차대전 이후에는 대개의 군함들이 신조 혹은 개장을 통해 석유연료만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석탄이 없어진 배에는 더 이상 화부나 운반수, 조정원 보직이 존재할 여지는 없었고 2차대전 시기에는 기껏해야 여전히 왕복동엔진을 고수하던 몇 몇 상선에만 남아있었을 뿐이죠. 오늘날 ‘화부(stoker)' 라는 보직은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을 비롯한 영연방계 국가의 해군에만 남아있을 뿐이며 그나마도 기관실 요원을 일반적으로 일컫는 말일뿐,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에 불과합니다. 현대의 화부는 삽과 양동이를 필요로 하지도 않으며 재와 먼지와도 그다지 가깝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 현용군함이 고속으로 기동한다는 말을 들어도 이젠 ’화부의 땀과 눈물‘을 떠올릴 필요는 없겠죠.^^;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아오키 에이치, 최재수 譯,『시파워의 세계사 : 제 2권』, 한국해사문제연구소, 2000
- Erik J. Dahl, 「Naval Innovation : from oil to coal」, Joint Force Quarterly, 2000
(http://www.findarticles.com/p/articles/mi_m0KNN/is_2000_Winter/ai_80305799)
- http://www.usmm.net/position.html
- http://www.btinternet.com/~philipr/TBNch5.html
- http://www.hmswarrior.org/life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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