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경험이 있는 분이시라면 내무실 한 구석이나 관물대 어딘가에 붙여놓은 연예인 사진이라던가 애인의 사진 등에 대한 기억이 있으실겁니다. 혹은 2차대전기의 공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시라면 대전 당시의 미군 폭격기 옆에 미녀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걸 보신 적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잡지 등에 수록된 여성의 일러스트를 ‘핀업 걸’ 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보신 기억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핀업(Pin-up)‘ 이란 섹시한 미녀들의 육체가 가급적 많이 노출된 전신사진 혹은 일러스트를 통칭하는 말이며, 이런 사진이나 일러스트들을 핀으로 벽에 꽂고 감상했기 때문에 핀업이란 명칭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핀업에 등장하는 모델들이나 여성들을 일컬어 ’핀업 걸‘ 이라 부르게 된 것이죠. 어쨌거나.. ’사물함에 핀업을 붙여놓은 병사‘나 ’섹시한 미녀를 그려놓은 폭격기‘ 등은 2차대전기의 미군병사를 상징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고, 이후 널리 확산되어 ’베트남전과 플레이보이 잡지‘ 라던가 ’내무반의 연예인 브로마이드‘ 처럼 오늘날 군대문화의 일부분을 형성하는 한 요소로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 ‘핀업(Pin-up)' 의 기원과 전성기
1890년대 즈음, 유럽에서는 빅토리아식 도덕주의가 서서히 저물어가면서 이전까지 금기시되었던 ‘매력적인 젊은 여성’의 이미지를 공공 전시물에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일러스트의 대표적인 화가가 쥘 셰르(Jules Cherét)로써, 그는 달력이나 엽서, 광고 등에 3색의 컬러로 표현한 여성들을 과감히 도입시킴으로써 당시 유럽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었다고 합니다. 한편 미국에서의 핀업은 1880년대에 찰스 깁슨이라는 화가가 그린 여성상, 통칭 ‘깁슨 걸(Gibson girl)’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깁슨이 그린 모델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의 미국 여성들의 미의 표준을 제시하는 것이었고 보수적이었던 당시 미국사회에서 깁슨 걸의 수영복이나 앞이 트인 옷 등은 매우 도발적이고 혁신적인 것으로 여겨졌죠.(요즘의 눈으로 보면 별 것 아니긴 하지만^^;) 하지만 이들 초기 일러스트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통의 핀업이라고 분류하기는 어렵습니다.
보다 직접적으로 핀업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은 193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 하류층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판매된 싸구려 잡지들에 실린 삽화입니다. 「The Police Gazette」 같은 잡지는 젊은 여자의 치정에 얽힌 살인극이나 납치 등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주로 싣곤 했는데 그 한 귀퉁이에 짧은 스커트나 속옷 차림의 여성들을 그려넣음으로써 잡지가 불티나게 팔리게 된 것이죠. 그후 다른 잡지들도 이런 방식을 차용하여 잡지 표지나 내부의 삽화 등에 핀업 일러스트들을 활용함으로써 1930년대부터 50년대까지 핀업 일러스트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습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로는 조지 페티(George Petty), 알베르토 바가스(Alberto Vargas), 얼 모란(Earl Moran), 질 엘그렌(Gil Elvgren)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조지 페티는 1933년부터 10년간 「에스콰이어 (The Esquire)」 등의 남성 잡지에 핀업 걸들을 그려온 사람으로써, 초기에는 중년 신사의 무릎에 앉아 있거나 옆에서 에스코트를 하는 아름다운 여성을 그렸는데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신사와 함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옷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물론 핀업 일러스트가 외설스러운 남성 잡지들만의 전유물만은 아니었습니다. 「라이프」, 「타임」, 「코스모폴리탄」 등 점잖은 잡지들도 핀업 일러스트를 싣곤 했는데, 이는 컬러 사진이 아직 보편화 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는 저런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그린 핀업만이 컬러로 된 유명 연예인들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었죠.
핀업은 사진의 형태로도 나타났습니다. 헐리우드는 무성영화 시대부터 매력적인 여배우들에게 수영복을 입힌 뒤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뛰어 노는 장면을 찍어 영화선전에 썼는데, 이 여자들이 소위 ‘수영복 미녀’ 들로써 유명 여배우치고 핀업의 대상이 되지 않은 배우가 없을 정도였죠. 섹시함을 모토로 내세우지 않은 정통 연기파 여배우들조차도 수영복 차림의 사진을 찍어야만 했으며 스튜디오들은 이 사진들을 대량 생산하여 신문과 잡지 등에 팔아 짭짤한 수입을 올렸습니다. 당시의 연기파 여배우중 하나인 베티 데이비스는 헐리우드의 이런 풍토에 대해 “금발과 다리가 재능보다 더 중요한 곳인 헐리우드에 온 내가 정말 바보로구나”하고 개탄하기도 했다고 하니, 1940년대의 미국 사회와 연예계에서 ‘핀업’ 산업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병영으로 옮겨간 핀업 : 2차대전기
1940년대 초반까지 ‘핀업물’들이 미국 사회 일반에 널리 퍼지긴 했지만 군대와 병영 내부에까지 핀업이 침투하게 된 것은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여 미국의 젊은이들이 유럽, 북아프리카, 호주, 태평양의 도서 지역 등으로 파견되고 난 이후였습니다.
최대 몇 십에서 몇 백만 정도가 유럽 땅을 밟아봤을 뿐인 지난 세계대전과는 달리 2차대전에서는 총 1,500만 명에 육박하는 병력이 해외에 파병되었습니다. 게다가 징병제까지 시행되었으므로 미국의 청년들은 군대와 그다지 인연이 없었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상당수가 민간사회를 떠나 군대에 들어가야만 했죠. 익숙치 않은 ‘군대’ 라는 환경과 본국을 벗어난 ‘타향’ 이라는 2가지 낯설음 속에서 미군 병사들은 고향을 떠올리게 해주고 사회와의 끈을 이어주는 무엇인가를 필요로 했고, 그것을 해결해준 것이 바로 친숙히 봐왔던 ‘핀업 걸’ 들이었습니다. 수병들은 배의 격벽을 핀업 포스터들로 도배했고 보병들은 배낭 속에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유명 여배우들의 사진을 넣어두고 다녔으며, 항공기 조종사들은 자신들의 기체에 여성의 이름을 붙이거나 앞머리 부분에 큼지막하게 섹시한 미녀들을 그려넣곤 했죠.
(*주 : 물론 영 연방 국가 등이나 추축국, 심지어 일본군조차도 핀업 사진을 지니고 다니긴 했지만 여기서는 가장 사례가 많고 자료가 풍부한 미군 위주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사진 속의 미녀들 : 핀업 사진
미군 병사들의 사진에 있는 여성은 이름도 모르는 ‘옆집 소녀’ 이미지의 여성이기도 했고 유명한 영화배우일 때도 있었습니다. 많은 여배우들이 잡지의 핀업을 통해 명성을 날렸지만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바로 베티 그레이블과 리타 헤이워즈, 그리고 제인 러셀 등 3명이었죠. 그 중에서도 코미디와 뮤지컬 스타였던 그레이블은 섹시하면서도 옆집 처녀처럼 순진하고 귀엽게 생겨 특히 병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수영복을 입은 그레이블의 사진은 전쟁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핀업 사진으로써, 그 사진은 그녀에게 ‘100만불 짜리 다리’ 라는 별명을 가져다주었으며, 노즈아트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그 외에도 전시의 핀업 호황을 틈타 연예계를 지망하는 여성들이나 인기를 얻고자 하는 무명 여배우들이 우후죽순처럼 핀업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허나 연예계 지망생들의 세계가 언제나 그렇듯이 이들 가운데 일부는 그 길로 스타 덤에 오르기도 했지만 (전후의 마릴린 먼로처럼), 대부분 핀업을 찍은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지는 쪽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2) 보다 은밀한 욕구를 달래기 위한 방편 : 핀업 일러스트
핀업은 고향과 민간 사회와의 끈을 지탱해주는 정신 안정제 역할을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군대란 대부분 남자들끼리 모여서 생활하는 곳인데다가 외부와의 접촉도 잦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여러 욕구 중 성욕을 해소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모든 욕구란 해결하지 않고 억누르거나 쌓아두기만 하면 언젠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사고를 치게 마련이므로, 직접적인 성욕 해결이 제한되는 군대 내에서는 운동 등 다른 형태로 해소하거나 아니면 가급적 적절한 방법으로 욕구를 달랠 수밖에 없죠. 그 점에서 핀업 일러스트는 핀업 사진 등이 제공하지 못하는 미묘한 성적 판타지들을 채워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미 본토로부터 매주 혹은 1달 단위로 공급되는 여러 종류의 잡지에는 위에서도 언급했던 알베르토 바가스나 질 엘그렌 같은 화가들이 그린 일러스트가 대량으로 실리곤 했는데, 이들 일러스트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체로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가진 ‘쭉쭉빵빵’ 미인이었으며 미묘하게 허벅지를 노출하거나 짝 달라붙는 옷을 입는다던가 하곤 했죠. (거의 헐벗고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지만)
군 당국은 병사들이 이런 일러스트들을 보는 것까지는 묵인했지만 노출이 지나치게 심한 일러스트들을 사물함이나 배의 격벽 등에 붙이는 행위에는 제재를 가했습니다. 오직 규율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잠수함 승조원들만이 침대 곁에 일러스트를 붙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죠.
폭격기 등에 그려지는 노즈아트에 대한 규제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늘씬한 미녀들을 그려놓는 것까진 봐주지만 미관과 민간인에 대한 영향상 그녀들이 헐벗고 있는 모습은 금지한다’ 는 방침이었고 실제로 많은 누드 노즈아트들이 후에 옷을 걸친 형태로 재도색되기도 했죠.
3) 조금 특이한 경우 : 심리전용 선전물
전방에 나와 있는 병사에 대한 심리전에 있어서 ‘성(性)’은 가장 강력한 수단 중의 하나이고, 전쟁 중 연합국과 추축국을 가릴 것 없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성적인 모티브를 담고 있는 선전 삐라를 뿌려댔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당신이 전선에서 이렇게 열심히 싸우는 동안 당신 아내나 애인은 딴 남자랑 바람을 피우고 있다’ 는 식이어서 시큰둥한 반응이기 일쑤였지만, 특이하게도 사진 자체에는 별 메시지 없이 그저 섹시한 미녀만 덜렁 그려놓는 경우도 있었죠. 일본군이 바탄/코레히도르 지역에서 미군에게 살포한 투항 권고장이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위의 사진이 바로 그 투항 권고장입니다. 영문으로 사용방법이 적혀 있고 그 아래에 일본군 사령관의 이름으로 내용을 보증하고 있는 것인데, 당시 일본군은 미국인 병사들을 성에 굶주려서 아랫도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작자들로 보고 저런 사진을 실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신통치 않았고 농성중인 병사들은 그 사진을 좋아라 하며 그저 소중히 간직했을 뿐이었다고 하네요.
(*주 : 정작 효과를 발휘했던 것은 가족들이 둘러 앉아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진이나 마닐라 호텔의 정찬 메뉴 사진이 실려있는 투항 권고장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식량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던 연합군 병사들에게는 너무나 치명적이었겠죠. 성욕은 식욕을 이기지 못한달까요?)
3. 핀업이 일반화되기까지
1940년대 이래로 전성기를 구가해왔던 핀업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컬러 사진 등 경쟁관계에 있는 매체가 발달하면서 고전적인 핀업 일러스트는 더 이상 그려지지 않게 되었죠. 또한 이 시기부터 활발해진 여권운동의 영향도 핀업 을 쇠퇴시키는데 크게 작용했습니다. 핀업은 여성을 ‘이상화된 미의 기준’에 속박하는 한편 성을 상품화한다는 이유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플레이보이」 등의 잡지는 부도덕의 온상으로 폐간 압력에 시달려야만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형태의 핀업은 잡지를 통해 살아남아 오늘날 수위 높은 「펜트하우스」 등이나 그보다 낮은 「맥심」, 혹은 기타의 잡지 브로마이드나 보통의 연예인 사진 등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미군을 위시하여 그렇게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지 않는 군대의 막사 내에서도 벽이나 사물함에 핀업 사진이 붙어있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말이죠.
글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동안 핀업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있는 것을 봤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미국 연예계가 핀업과 영화의 이미지를 통해 전쟁수행을 지원해왔다’ 라던가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핀업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의 상품화’ 혹은 ‘핀업 산업’ 으로써 비판하고 있던 것이 주로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 의견들도 물론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군대와 병사 개인의 입장으로 한정한다면 ‘핀업을 붙이는 행위’는 간단히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를테면 우리 군의 경우, 내무반에 대놓고 연예인이나 애인 사진 등을 붙이는 행위가 나타난 것은 아무리 일러도 1990년대 즈음부터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풍습이 미군에 의한 영향이라고 말하기는 시기적으로도 어렵고 (베트남전 참전자와 미군의 접촉에 의한 영향이라고 해도 20년 이상의 갭이 있으며, 설사 그렇다 해도 병사들 사이의 풍습이 간부에 의해 전해진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다고 보임) 다분히 자생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또한 ‘핀업’ 이라는 매체가 보편화되기 이전인 1차대전 당시에도 연합군 병사들이 애인 사진을 갖고 있거나 아름다운 여성이 실린 잡지 광고 등을 소지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있고 말이죠.
즉, 민간 사회와 떨어져 군대에 들어온 병사에게는 기본적으로 사회와의 연이든, 성적인 필요에서든 간에 어떤 ‘이미지’ 형태로 된 매체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 욕구가 내재해 있고, 이런 배경 하에
① 군 당국의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
② 접하기 쉽고 이미지 형태로 된 매체의 등장
이 모두 갖춰질 때 사진이나 일러스트를 소지하고 벽에 걸어두는 행위가 겉으로 드러나는게 아닐까 합니다.
핀업이나 사진에 대한 바램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그걸 억지로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낳지 않을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억압된 욕구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튀어 나오게 마련이므로, 차라리 저렇게 적당한 기준을 정해놓고 숨통을 터주는게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군대가 여러모로 열린 집단이 돼가는게 현재 각국의 추세이긴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섹시한 미녀가 그려져 있는 핀업 브로마이드가 병사들과 함께 하지 않을까 합니다.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앨런 브링클리, 황혜성 외 譯,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 3권』, 휴머니스트, 2005
- http://en.wikipedia.org/wiki/Pin-up
- http://homepage.mac.com/brons/Art/Cheesecake.html
- http://www.lilithgallery.com/feminist/WarGoddess.html
- http://www.mutoworld.com/other.htm
- http://www.skylighters.org/photos/pinup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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