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성찰에서 새 시대의 창출로
이에야스는 긴 인질 기간과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통제를 받는 2인자로서 일생의 대부분을 자기 인내와 절제를 하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에야스가 불교적 심성을 지닌 인간으로 나아간 것은 이와 같이 그의 생존 환경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실제의 그의 주변에는 뛰어난 고승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에야스가 자기 생존을 위한 인내와 절제만으로 최후의 승자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끝없는 자기 성찰의 생활을 통하여 인간의 심성을 이해하게 되고, 이들이 모여 이루어진 세상을 바꾸는 길을 찾아 노력한 결과였다고 보여진다. 단순히 때를 기다려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때를 만들어온 것이었다.
자기 구제에서 세상 구제로의 의식 변화는 전란 후의 새로운 일본 건설로 이어지고, 이를 위한 살밍 자신의 인생임을 자각하지는 않았을까? 임제종의 스덴, 천태종의 텐카이 등 새 세계의 도래를 바라는 고승들의 자문을 받으며 이에야스는 새 시대를 열어갔던 것이다.
안정된 사회, 평화로운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이에야스가 고심 끝에 이루어낸 기본 틀은, 역대 무가 정권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바쿠후 제도를 보완하여 계승한 강력한 바쿠한 체제의 구축과 주자학의 층의 정신을 강조하여 하극상의 센코쿠 시대를 거치며 변질된 무사들의 정신윤리를 새로 세우는 것이었고, 대외적으로는 일본에서 유럽 세력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것을 막고, 임진왜란으로 인해 단절된 조선과의 국교 회복을 통하여 조선으로부터의 복수전을 미연에 차단하고 신생 바쿠후의 성립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 중에 바쿠후의 관학으로 주자학이 자리잡게 된 것은 조선 성리학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당시 선종 승려로 훗날 근세 일본유교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후지와라 세이카는 조선 사절단을 통하여 조선의 성리학을 접하고 깊은 감화를 받는다. 특히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온 젊은 유학자 강항과의 교류를 통하여 본격적으로 조선 유학을 배우게 된다. 조선 유학의 영향 속에서 유학자로 변신한 세이카의 학문은 제자인 하야시 라잔에게 전수되는데, 이에야스의 자문역이었던 세이카의 추천으로 등용된 하야시 라잔은 신생 에도 바쿠후의 정치이념과 법도를 주자학의 차원에서 제정하였고, 이는 바쿠후의 관학으로 나중에는 정학으로 정착된다. 바쿠후의 이러한 태도는 지방의 학문에도 영향을 미쳐 일본 각지에서는 임진왜란 때 끌려온 조선 유학자와 그의 후손들이 지방 유학의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였고, 전 에도 시대를 통틀어 조선의 성리학 특히 이퇴계의 학문에 대한 일본학자의 숭배열은 계속되었다.
이에야스는 조선과의 국교 회복을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였다. 츠시마의 도주 소씨를 파견하여 자신은 임진왜란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관계 개선을 꾀하였는데, 조선왕조는 북방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만주족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남쪽 일본과의 관계를 안정시켜둘 필요성에 따라, 임진왜란의 참담한 피해를 입은 국민 감정과는 상관없이 일본측의 요청을 받아들이게 된다. 일본에서 임란 당시 저지른 왕릉 도굴범을 잡아보내고, 국서를 먼저 보내라는 등의 형식을 요구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자 조선왕조는 임란 포로를 생환한다는 회답 겸 쇄환사라는 이름으로 사절단을 파견했다. 이리하여 임란이 끝난지 불과 9년 만에 국교가 재개되었고, 이에야스는 조선 사절단을 최고 국빈의 예우로 맞이한다. 4회 사절단부터는 통신사란 이름으로 4, 500여명의 인원이 파견되어 국빈의 대접을 받으며 에도까지 왕래하는 일대 이벤트가 되었다. 특히 에도 바쿠후가 선교사를 추방하고 쇄국정책을 펴나가는 와중에 유일한 국교수교국으로서 조선과의 대등 호혜의 외교 관계는 근세말까지 유지된다.
이에야스가 구축한 근세일본은 대외적인 평화 관계 그리고 철저한 준비와 계산하에 성립된 바쿠한 체제의 틀 속에서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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