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이 낳은 파멸
히데요시는 기본적으로 주군 노부나가의 유업을 계승하여 완성하고자 한 인물이었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정치적인 수완을 바휘하여 노부나가 가신단을 통솔하고 지방의 군웅들을 굴복시켜 수년만에 일본의 통일을 달성하였다. 노부나가와 달리 미천한 출신이라는 자신의 한계도 조정의 권위를 이용하는 수완을 발휘하여 해결하였다. 노부나가의 직위가 우다이진에 머물렀떤 것에 비하여, 히데요시는 칸파쿠 그리고 타이코라는 신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위에 올라 그 권위로써 각 무장들을 통치하였으며, 상상을 뛰어넘는 화려함과 퍼포먼스 등을 민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최고 권력자임을 과시하였다.
불세출의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히데요시였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의 쓰임새와 한계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최하급 병사의 자식에서 한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로, 더 나아가 일본의 통일을 완성한 패자로 숨돌릴 틈 없이 비약적인 출세 가도를 달려온 그는 멈출 수 없는 자기 과신에 빠졌던 것이다. 그의 망상은 일본 국내를 벗어나 국외로 뻗어나가기 시작하였지만, 그의 형편없는 한자 실력이 보여주듯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못하였던 히데요시는 외국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였다. 외국에서도 일본처럼 전투에서 승리하면 그곳의 농민이 복속하여 쉽게 지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고, 그의 이러한 대외인식은 각국에 보낸 국서에서 보이듯 자신을 태양의 아들로 비유하며 군사를 보내기 전에 미리 복속할 것을 요구하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취하게 하였다.
이렇게 독단과 자기 과신의 늪에 빠져 있던 히데요시에게 천주교는 노부나가처럼 매력적일 수 없었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주변국을 평정하여 일본 풍습을 이식시키려는 정복욕에 가득 찬 야망만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조선 국왕이 자기에게 굴복하지 않은 것에 분노한 그는 센코쿠 시대의 분열된 일본이 하나로 통일되면서 나온 에너지를 조선을 향해 쏟아 붓는다. 소위 일본 최초의 해외 침략전쟁인 임진왜란이 바로 절대 권력자 히데요시의 독단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히데요시는 일본군이 초반에 한양을 점령하자 명나라를 정복한 뒤 자신은 명나라에 가서 말년을 보내며 인도까지 취하겠다는 등의 망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것이 무력으로 동양을 제패하고 천황의 정신을 전세계에 퍼뜨리려는 일본의 선구적인 영웅으로서 훗날 일본의 군국주의자나 국수주의자들이 히데요시를 숭배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제 일본군은 한반도에서 한치의 땅도 빼앗지 못하고 고전을 거듭하다 히데요시가 죽자 바로 철수해버렸다. 이민족의 수많은 침략을 막아내며 민족성을 유지해온 한민족의 역사적 힘은 자발적인 의병의 봉기를 이끌어냈으며, 이러한 의병의 존재르 당시 일본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민족생존의 문제는 어느 한 때의 힘의 강약으로 결정될 수 없는 것이며, 설사 일시적으로 정복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오래갈 수 없는 것임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결국 히데요시의 무모한 야망한 평화를 희구하던 일본민중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그 스스로는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병사하였고, 그가세운 정권은 후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도요토미 가문은 파국을 맞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