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1542 ~ 1616
이름변화:다케치요(竹千代) → 마쓰다이라 모도노부(松平元信) → 松平元康(모도야스) → 마쓰다이라 이에야스(松平家康) → 德川家康
전국 최후의 승리자. 전국 이후 일본에 260년 남짓의 평화를 가져온 인물.
3살 때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6살 때 이마가와가에 인질로 가게 되지만, 그 도중에 오다가에서 그를 납치해 데리고 간다. 거기서 노부나가와 재밌게 놀았다는 일화도 남는다. 그 후, 셋사이 도사의 계책에 의해 오다와의 인질 교환이 성립, 이에 아버지 · 마쓰다이라 히로타다(松平廣忠)가 가신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에 주인이 없었던 오카자키(岡岐)성과 주군이 돌아온 것에 기뻐하는 가신들을 뒷전으로 하고, 다시 이마가와가에 인질이 되어 버린다. 그 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전사하자 오카자키성에 귀환해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을 결성했고, 미카와 종교 반란이 일어나자 가신단도 양분되 서로 싸우는 시련도 겪었지만, 다케다와의 연합작전에 의해 미카와 · 도토우미 2나라를 거느리게 되었다. 그리고, 가네가사키(金ヶ崎)、아네가와(姉川)의 싸움에서 오다의 동맹군으로서 무명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케다 신겐의 상경을 위한 공격에서 이에야스 최대의 위기가 닥치는데, 농성을 주장하는 가신들을 뒤로 하고 출격을 선택해 처절한 패배를 당하지만 갑작스런 신겐의 사망에 위기를 모면했다. 그 후 나가시노 전투(長篠合戰)에서는 오다 총대의 원군이 있어 보기 좋게 다케다군을 물리쳤다.
다케다가를 오다와 연합해 멸한 공로로, 스루가 일국을 얻은 이에야스는 그 답례로서 상경했다. 사카이에서 체류중, 혼노지의 변을 알고, 「神君伊賀越え」라 불리는 노고의 끝에, 간신히 자신의 세력권에 도착한다. 일단 아케치 정벌의 군을 일으키지만 나루미(鳴海)에서 하시바 히데요시의 야마사키 전투(山崎合戰)의 전말을 듣고, 비어 있는 카이 · 시나노를 빼앗아 취했다. 다시 호조 우지나오(北條氏直)와 동맹한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카츠(織田信雄)의 요청에 히데요시와 싸운다. 나가쿠테(長久手)의 싸움으로 하시바의 기습 부대를 물리치지만, 노부카츠가 히데요시와 단독강화 했기 때문에 군사를 물렸다. 그 후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의 호조 정벌전에 참여했고, 오대로 중 한사람이 되었다.
그 후 히데요시는 어린 아들 히데요리(秀賴)를 오대로에게 부탁하고 죽자, 사실상 모든 실권은 이에야스게 넘어가고, 그것을 저지하려는 이시다 미쓰나리가 주축인 된 세키가하라의 전투(關ケ原の合戰)에서 승리하면서 사실상 도쿠가와 지배 체제를 확립 시킨다. 마침내 1603년에는 세이이 다이쇼군(征夷大將軍)에 취임. 2년 후에는 아들 · 히데타다에게 장군직을 양보해,「天下回り持ち(천하 교대)」사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오오사카 겨울 · 여름의 양 진 공격 끝에 도요토미가를 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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