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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포가 전래되고 6년후인 1549년 스페인 사람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카고시마(鹿兒島)에 상륙. 큐슈지역을 중심으로 키리시탄 다이묘가 등작했고, 불교세력과 대립중이던 노부나가의 보호하에서 보급됨. 신자수는 큐슈에 12만명, 키나이(畿內)에 2만5천명. 각지에 교회와 학교, 병원이 세워졌다.
※ 당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아시아 진출은 무역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전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이루어졌다. 포루투갈의 아시아 진출은 야소카이(耶蘇會, 1540년 교황의 정식인가)가 중심이 되어 활발한 활동을 했다. 자비에르는 야소카이의 창립멤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