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데요시는 1536년 지금의 아이지현 나까무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세에 집을 떠난 후 하찌스까 고로꾸를 만나, 그의 부하가 되었다.
그후 고로꾸의 밑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1554년 18세에 당시 두각을 나타내던 오다 노부나가의 짚신을 담당하는
아시가루 가 되었는데 항상 오다의 짚신을 품속에 품고 체온으로 따뜻하게 하였기 때문에 노부나가의 신임을 받아
그후 한 부대의 부장이 되었다.
모리 데루모도의 부장 시미즈 무네하루가 수비하는 다까마스 성을 공격할때, 오다가의 중신인 아케치 미쓰히데가 혼노사에서
주군인 노부나가를 살해하고, 이를 알리는 밀사를 데루모도에게 보냈으나, 그 사자가 길을 잘못들어 히데요시의 진영으로 들어갔다.
이를 알게된 히데요시는 모리와 화친한 후 즉시 되돌아와 야마사끼에서 미쓰히데를 격파하였다.
이후 오다가의 후계자 결정과정에서 시바타 가쓰이에와의 불화가 있었으며, 그를 빌미로, 후일 시즈까다께에서 가쓰이에를 격파.
그의 거성인 기타노쇼성을 함락시켰다.
전국통일의 가장큰 걸림돌 이었던 가쓰이에를 제거한 후 각 국의 영주들을 차례로 항복케하여 100여년간 지속되어온 전국을 통일하였다.
그는 효자이며, 인정이 많았다고 전해지는데, 그런 그가 전국을 통일했으면서도, 이에야스를 경계하여,
이미 혼인해 있던 동생 아사히 히메를 이혼시킨 후 이에야스의 정실로 보내고, 또 어머니를 인질로 보내기 까지 하였다.
이는 이에야스의 세력과 야심이 남달랐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후실인 요도기미(차차히메) 가 낳은 쓰루마쓰마루 가 죽은후 자식이 없던 히데요시는 1591년 12월에 조카 히데쓰구에게
관백의 직위를 물려주었다.
그런데, 1593년 8월3일 둘째아들 히데요리가 탄생하면서 히데쓰구를 할복시키게 된다.
그후 병세가 악화되자, 그는 5대신에게 자신의 사후 히데요리에게 충성할 것을 혈서로서 맹세케 하였다.
그러나 히데요시의 사후 그 맹세는 깨어지고 이에야스는 히데요리의 거성인 오사카성을 2번에 걸쳐 공격하여,
끝내 도요토미 가문을 멸문시키게 된다.
특이한 점은 히데요시는 자신의 배경지식이 고루해 진다하여 죽을때 까지 책 한권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글 한자도 못썼으며, 천하인이 되어서야 떠듬떠듬 쓸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얼마나 탁월한 독심능력과, 지모를 타고 났기에 난세의 풍운아로 불리는 노부나가의 생각을 정확히 간파하여,
오다 가문에 손꼽히는 중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천하를 통일했느냐 하는 것이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우리나라로선 임진. 정유재란을 일으킨 역적이겠지만,
일본에서는 청소년 존경 ranking 2위인 대단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