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을 대신해 일본을 다스리는 쇼군(將軍).
가마쿠라 막부 이후 천황은 더 이상 지배자가 아닌 상징물로 전락해 버렸고 무로마치 막부, 도쿠가와 막부를 거쳐 메이지유신과 그에 따른 내전 등으로 막부체제가 붕괴될때까지 1천년이상의 긴 세월동안 쇼군체제는 유지되었다. 동양의 다른 왕조들에 비해 묘하게도 일본의 천황은 계통에 변함없이 계속 유지되어 왔다.
긴키(畿內) 백제인의 후손인 천황은 수많은 전란과 세월의 풍파속에서도 전혀 교체가 없었다. 그것은 천황은 상징물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못 되었다. 그러나 사무라이들에게 있어서는 그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그래서 전국시대의 영주들은 천황에게 공물을 받쳤다.
능력도 힘도 없지만 가히 신으로서 일본인들에게 추앙을 받았던 것이다. 일본의 실질적 지배자인 쇼군. 그것은 단지 힘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일본통일 직전까지 갔던 노부나가, 그 뒤를 이어 應仁의 亂 이후 100년간 전란을 종식시킨 히데요시 등은 쇼군이 될 수 없었다. 단지 쇼군의 바로 밑인 간파꾸(關白)가 한계였다. 그 이유는 미나모토(源)씨의 후손만이 쇼군이 될 수 있다는 뿌리깊은 인식 탓이었다. 즉 그 이외의 가문의 후손은 결코 쇼군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 관습은 하극상이 사회상이었던 전국 시대에도 적용되었다.
히데요시를 이은 도쿠가와는 미나모토家의 후손이었다. 그래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쇼군이 될 수 있었다. 전국시대 당시 미나모토家의 후손으로는 쇼군이었던 아시카가家, 도쿠가와家, 다케다家, 우에스기家 정도였다. 노부나가는 출생을 미나모토가의 먼 후손인양 조작하려 했으나 인정받지 못해 끝까지 쇼군이 되지 못한채 인생을 마감했다.
관령은 쇼군의 보좌역으로서 쇼군을 대신해 지방을 다스렸다. 당연히 쇼군가의 일족중에서 임명되었다. 당시 3개의 관령이 있었다. 상삼家, 기파家, 부산家였다. 전국시대를 유발시킨 오닌의 난(1467-1477)은 이 부산가와 기파가의 가업계승싸움으로 장군가와 천황가의 권위가 실추되는 사건이었다.
상삼家는 가마쿠라 막부때부터 관동 8국을 다스리며 독립국가로 행세하였다. 그러나 전국시대로 넘어오면tj 호죠(北條)가에 의해 압박을 받으면서 결국 관동관령을 유력대명인 장미가에게 넘겨 주게 되었다.
이마가와家는 기파가로부터 분리된 가문으로 역시 장군가의 한 가문으로서 세력을 잃은 기파가를 대신해 후임 관령으로 유력했으나 오케하자마전투에서 요시모도가 전사하는 바람에 관령이 되지 못했다.
'역사 ,세계사 > 일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의 조총 전래 (0) | 2012.12.13 |
---|---|
전국시대 닌자에 대해서 (0) | 2012.12.13 |
공 경 (천황을 보좌하는 신하들) (0) | 2012.12.13 |
관 령 (0) | 2012.12.13 |
무 사 (0) | 2012.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