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한국전

미그의 출현

구름위 2012. 12. 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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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 미그 앨리

◇ Act 1. 미그의 출현

(MiG Salute)

 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2. 6.30

* 압록강 상공의 미그

1950년 11월 1일 갑자기 닥친 북한 지역의 살인적인 한파와 함께 압록강 이남의 서부전선에서 드디어 중국군의 기습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중국군의 공격을 받은 미군은 중국군이 북한군과는 완전히 다른 전술을 구사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고 대규모의 기습에 크게 당황했다. 중국군은 야음을 틈타 이동하면서 공격해왔고 엄청난 병력으로 미군과 한국군을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뿔피리를 불면서 공격해왔다. 이들은 자신들이 불리할 때는 은신하고 외곽에서 교란을 하다가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대규모 병력을 총동원하여 물밀 듯이 밀어붙이는 전술을 구사했으니 이것이 이른바 중국군의 인해전술이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소련의 비밀 무기 미그-15 제트 전투기가 드디어 그 존재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 중국군의 침투 지역을 보여주는 지도, 중국군의 주요 병력은 압록강 이남에서 집결한후 UN군을 포위 공격했다. 결국 이때부터 전선은 급속히 무너져 1951년 1월 25일에는 수원까지도 빼았기게 된다. ]

이날 오전 압록강을 건너고 있던 중국군의 머리위로 미군 전폭기들이 날아왔다. 이들은 초계 비행중이었던 F-80과 F-51 편대로서 압록강 상공에 도달하자 많은 수의 군대가 압록강을 건너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러자 곧 중국공군의 붉은 별이 그려진 야크-9 전투기 3기가 압록강 이북에서 출동하여 이들을 공격해왔다. 이것은 최초의 중국공군기들과의 교전이었으며 이날의 공중전에서 F-80과 F-51의 활약으로 모든 야크 전투기들이 격추되었으나 F-80 1기가 압록강 근처의 중국군이 발사한 대공포화에 명중되어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전쟁이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하고 여유롭게 초계비행을 실시하던 미군 조종사들은 지상에서 대규모 병력이 남진하고 있는 것과 중국공군기들이 자신들을 공격했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이날의 전투는 UN군의 공세가 시작된 9월말 이후에 최초로 벌어진 공중전이었다. 이들은 귀환 후에 그들이 목격한 군대가 바로 중국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북쪽의 미군 부대로부터 지상에서도 중국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 옆의 지도는 미그-15가 주로 출현하는 지역을 노란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위의 지도와 비교해 보면 미그-15는 중국군의 병력과 보급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압록강 이남의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훗날 이 지역은 미공군 조종사들로부터 미그앨리 (MiG Alley)라고 불리게 된다. ]

이날 오후 압록강 지역의 중국군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서 T-6 전선통제기 1기와 F-51D 머스탱 4기의 편대가 다시 압록강 상공으로 출동했다. 그런데 이들이 압록강 상공에 다다르자 미군 조종사들은 상공에 6 개의 검은 점이 북쪽으로부터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다시 중국군의 전투기들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 F-51 조종사들은 산개하면서 이들을 감시했다. 그러나 이 전투기들이 가까이 접근했을 때 미군 조종사들은 모두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 전투기들은 미군 조종사들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후퇴익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고 더구나 프로펠러가 없는 제트기들이 었다. 미그-15 편대가 고공에서 공격적으로 급강하해오면서 위험을 감지한 T-6기는 즉시 현장을 이탈해서 후퇴했으며 F-51 전투기들도 현장에서 급선회하면서 미그의 위협에 대응했다. 미그의 조종사들은 아직 기체에 익숙하지 못한 듯 한 대씩 고속으로 떨어져오면서 한차례씩 기관포 사격을 가하고는 다시 공중전에 복귀하지 않고 이탈하여 북쪽으로 사라져갔다. 다행히 F-51 조종사들은 급선회하면서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었으나 돌진해 들어오는 미그-15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F-51들이 선회를 마치고 기수를 미그쪽으로 돌릴 때쯤에는 이미 작은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그기들이 멀어져가자 이들도 방향을 돌려 귀로에 올랐다.

[ 중국으로 후퇴한 북한공군의 야크-9도 이무렵 출몰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공중전에서 격추되었다. ]

조종사들이 기지로 돌아와 급박한 상황을 보고하자 미군은 큰 충격에 휩쌓였다. 중국군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불길한 소식에 더해서 이제 하늘에서도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는 것이 분명했고 더구나 F-51 조종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이 새로운 적기는 현재 미공군이 운용하는 어떤 전투기보다도 빠른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전쟁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도 하늘에서도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것은 미공군이 한국 상공을 일방적으로 주름잡던 시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 제트기 VS 제트기

11월 2일, 중국정부는 공식적으로 중국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 발표했다. 그리고 서부전선에서는 중국군의 공세가 더욱 강력해졌다. 북한군을 추격해서 북쪽으로 깊숙하게 진격했던 지상의 UN군 선발대들은 적은 병력과 부족한 탄약으로 인해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중국군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큰 타격을 받았으며 전선이 빠른 속도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UN군은 중국군의 공세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제대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병력에서 너무나 열세였다. 게다가 미군병사들이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한국의 엄청난 추위가 중국군과 함께 밀려들어왔다. 압록강변까지 전진해 들어갔던 선두의 부대들은 순식간에 포위되어 고립되었으며 거의 대부분이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전멸했다. 중국군의 공세에 놀란 맥아더는 즉시 모든 부대에게 즉시 청천강 이남으로 철수하여 다시 전열을 정비하라는 명령을 급히 하달했다. 

[ 중국내의 기지에서 미그-15의 도색을 변경하고 있는 소련 정비병들의 모습, 이처럼 소련 공군은 철저하게 소련 조종사들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려 했다. ]

한편, 지상에서 중국군의 공세가 계속된 몇일간 하늘에서는 중국공군의 야크-9 전투기가 계속 도전적으로 압록강을 건너 미공군기들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이에 더해서 미그-15의 출몰이 계속되고 있었다. 고립된 우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미군기들이 출동하면 마치 이를 기다기라도 했다는 듯이 미그-15 제트전투기들이 나타나 작전을 방해했던 것이다. 11월 6일과 7일에 지상 병력을 지원중이던 F-51 머스탱 편대가 고공에서 습격해오는 미그-15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나 다행히 피격을 모면하고 간신히 벗어났다. 이때까지 미그-15기들은 미군기들을 상공에서 몰아내면 더 이상 추격해 오지 않았으며 대부분 단시간의 교전후에 북쪽으로 이탈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직 미그기의 조종사들이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점차로 미그기들의 출몰이 잦아지면서 이제 미공군의 제트기들과 미그기들이 하늘에서 충돌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가피해졌다. 미공군의 입장에서는 미그-15기들을 빨리 제압하지 못하면 지상에서 고전하고 있는 우군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해 매우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미그-15와 교전 기회를 잡기를 원했는데, 결국 11월 8일 드디어 사상 최초의 제트 전투기간의 공중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 중국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서 압록강의 교량을 공격하는 미해군의 F4U 콜세어, 그러나 곧 압록강이 얼어붙음에 따라서 교량 파괴작전은 별 소득을 거두지 못하게 된다. ]

이날 미공군은 신의주 지역의 중국군을 공격하기 위해서 B-29 폭격기들을 발진시켰으며 미그의 출몰이 예견되었으므로 F-80 슈팅스타 전투기들을 호위기로 딸려보냈다. 이에 더해서 F-51과 F-80으로 이루어진 혼성편대가 공습지역의 대공포화를 제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동반 출격했다. 이들이 B-29를 호위하여 공습지역에 이르렀을 때 드디어 미그-15 편대가 나타났다. 총 8기의 미그-15가 상공에서 이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이날의 공중전에서 최초로 제트 전투기가 제트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기록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공중전에 참가했던 러셀 브라운 대위는 이때의 교전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가 B-29 편대를 목표지역으로 호위한 후 B-29들이 폭격을 시작하자, 우리는 고도를 확보하기 위해서 기수를 남동쪽으로 돌리면서 얕은 각도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때 잡음이 섞인 라디오 교신이 들려왔는데 이것은 몇 기의 미확인 적기들이 압록강을 건너 우리쪽으로 날아온다는 경고였다. 우리는 즉시 왼쪽으로 선회하기 시작했으며 잠시 후 시야에 몇 개의 점이 들어왔다. 적기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것들이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미그-15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총 8기의 미그-15가 우리 4기 편대쪽으로 날아왔다. 적의 선두기는 우리를 놀리듯이 배럴롤과 루프를 시도하면서 우리의 바로앞에서 곡예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상공에서부터 차례로 기관포 사격을 시작하면서 한 대씩 급강하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제히 산개하면서 적기들의 공격을 피했으며 미그기들은 단 한차례의 공격패스후에는 강하하면서 북쪽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때 내 근처를 통과하는 미그-15를 목격하고 적기를 따라서 강하하기 시작했다. 적의 조종사는 뒤를 신경도 쓰지않고 그냥 강하하면서 이탈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중량이 무거운 F-80은 강하시의 가속도가 뛰어나서 아직 충분한 속도가 붙지 않은 미그-15를 충분히 따라잡기 시작했다. 적은 실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곧 조준경안에 미그-15가 뚜렷하게 잡혔으며 즉시 발사버튼을 당겼다. 캘리버 50 기관총탄들이 적기의 테일파이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하더니 적기는 곧 연기를 뿜기시작하다가 불덩어리가 되어 빙글 빙글 돌면서 지상으로 떨어져버렸다. 나머지 적기들은 모두 전투지역을 이탈했으며 우리 편대는 모두들 무사했다. 그리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K-14 기지를 향해서 기수를 돌렸다." 

[ 최초의 미그-15 격추를 기록 했으나 F-80은 이미 공중전에서는 물러나야 할 때가 된 것을 인정해야 했다. ]

이날의 공중전은 공식적으로 항공전사에 첫 번째로 제트전투기간의 공중전에서 승리한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날의 승리는 조종사의 기량이 뛰어났기 때문이지 F-80의 성능이 우수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미공군의 분석에 따르면 미그-15는 F-80보다는 시속 150km 이상 고속의 성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F-51 보다는 무려 시속 300km 이상의 격차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였다. 더구나 미군 정보부는 이 신형 제트기가 비록 북한공군이나 중국공군의 마킹을 하고는 있으나 소련 조종사들이 탑승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을 제기했다. 만일 그렇다면 적 조종사들의 수준도 상당할 것이기 때문에 미그-15기들이 대량을 출현하는 경우 미공군이 큰 난관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해 졌다. 이제 미공군에게는 뭔가 해결책이 필요했다.

! 여기서 잠깐 !

한국전쟁이 끝난후 1990년까지는 위의 상황이 공식적인 제트전투기간의 첫 승리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소련의 붕괴후 한국전쟁 당시 소련 공군의 참전 기록이 담긴 문서들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되고있다. 소련측의 주장에 따르면 미공군이 첫 번째 격추를 주장한 날보다 일주일이 빠른 11월 1일에 크토미치 대위가 조종하는 미그-15가 압록강 상공에서 F-80을 공격해서 격추했다고 한다. 게다가 소련 공군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브라운 대위가 미그를 잡았다고 주장한 11월 8일에는 미그-15의 손실이 없었다고 한다. 물론 어느 전투에서나 아군의 전과는 부풀리고 손실은 최소화시켜 발표하게 마련이며 소련측의 기록도 신뢰성이 떨어지지만 전쟁이 끝난후 40년이 넘는 동안 한국전쟁의 공중전 상황이 미공군의 진술대로만 기술되었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어느 쪽의 주장이 진실인지는 앞으로도 밝혀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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