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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종전 직후 최고 ‘걸작 전차’

구름위 2017. 1. 1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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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종전 직후 최고 ‘걸작 전차’

<20>프랑스 르노 FT-17·후속 모델
2013. 05. 20   18:23 입력


성능·운용 편의성 좋아 양산…‘전차 왕국’ 부상  시속 8㎞로 지나치게 느려 기동성 가장 큰 약점  FT케그레스· NC- 27 · 샤르 D1 개량 소량 생산

 

기사사진과 설명
수출용으로 20여 대만 생산된 르노 NC-27.

수출용으로 20여 대만 생산된 르노 NC-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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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이후 처음으로 양산된 프랑스 전차 샤르 D1. 1936년부터 탑재된 신형 포탑을 장착했다.필자제공

1921년 이후 처음으로 양산된 프랑스 전차 샤르 D1. 1936년부터 탑재된 신형 포탑을 장착했다.필자제공


 제1차 세계대전에서 후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걸작 전차라면 단연 프랑스의 르노 FT-17이었다. 성능부터 운용 편의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에서 당시 가장 실용적인 전차였던 FT-17은 많은 양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1차 대전 직후의 프랑스군은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전차 왕국’이 됐다.

 그러나 이 뛰어난 경전차가 뜻밖에 프랑스의 전차 개발에 장애로 다가왔다. 프랑스는 FT-17을 대량 보유한 데다 전쟁 이후 예산 부족까지 겹치면서 전차 개발의 수요가 크게 줄었다. 그 결과 1920년대 후반까지 신형 전차의 개발이 다소 정체됐다. 이웃 영국이 1920년대 내내 전차 개발을 계속한 것과 비교하면 꽤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FT-17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20년대에 이런저런 성능이 문제시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기동성이었다. 8㎞/h에 이르는 속도는 당시로서도 그리 빠른 것이 아니었다. 특히 평시에 훈련 등을 위해 이동할 때는 지나치게 느렸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우선 기존 FT-17의 궤도와 현수장치 등을 대대적으로 개조한 ‘FT케그레스’ 모델을 내놨다. 이 모델은 금속으로 보강된 고무 궤도와 신형 현수장치를 갖춰 최고 시속이 17㎞/h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고속으로 달릴 때 궤도가 잘 끊어지는 등의 문제가 있어 42대만 생산되고 끝났다.

 결국 FT-17 대부분은 큰 변화 없이 2차 대전에까지 쓰였다. 이와는 별도로 기존 문제를 개량한 신형 전차의 개발이 르노 사에서 시작됐다. 이들은 아예 차체를 대형화하고 현수장치와 궤도를 새로운 형태로 바꾼 전차 시제품을 1925년 개발했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르노 NC-1으로, 최고 시속이 18.5㎞/h까지 높아지고 장갑도 최대 30㎜까지 늘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성능이 향상됐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이를 채택하지 않았고, 결국 NC-1은 1927년부터 1929년 사이 NC-27이라는 이름으로 소수가 생산돼 폴란드·스웨덴·일본 등으로 수출됐다. 특히 일본에는 1929년에 10대가 수출돼 상하이 공격 등의 대륙 침략에 동원되기도 했다. 일본은 이전에 수입한 르노 FT-17과 구분하기 위해 NC-27을 ‘르노 을’ 형으로 부르기도 했다.

 프랑스군은 NC-27에 만족하지 못했으나 르노가 이것을 베이스로 새로운 전차를 개발하는 것에는 관심을 보였다. 그 결과 르노는 NC-27을 베이스로 새로운 전차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차는 현수장치와 동력장치는 물론 장갑도 보강됐고 프랑스 육군은 1929년 르노 사가 NC-31이라고 이름 붙인(31이라는 숫자는 르노 측이 채택되기를 희망한 연도) 시제품을 채택했다. 10대의 NC-31이 먼저 프랑스 육군에 채택돼 테스트받았으며, 여기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추가 개량이 이뤄진 모델이 샤르(Char, 프랑스어로 전차라는 뜻) D1이다. 1930년 70대의 샤르 D1 정식 주문이 들어갔다. 이것들의 생산은 1931년부터 시작됐으며 프랑스는 1921년을 끝으로 중단됐던 전차의 대량생산을 10년 만에 재개할 수 있었다. 샤르 D1의 생산은 1935년까지 이어졌고 총생산 수량은 150대였다.

 문제는 포탑이었다. 포탑은 슈나이더 사에서 별도 제작하기로 했으나 초기형 포탑은 문제가 많아 결국 납품이 거부됐다. 이 때문에 1936년까지 르노 FT-17의 포탑을 얹고 운용해야 했다. 결국 1936년 완전한 모습이 된 샤르 D1은 약간 어정쩡한 전차가 됐다. 포탑에 47㎜라는, 당시로서는 꽤 준수한 주포를 얹었음에도 차체는 최고 시속 19㎞/h라는, 1930년대 기준으로는 다소 떨어지는 기동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새로운 포탑을 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1937년 모든 샤르 D1이 프랑스 본국에서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로 ‘추방’됐다. 성능이 좀 떨어져도 현지의 원주민 반란을 진압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1940년 6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할 때 43대가 프랑스로 돌아왔으나 이것들은 전부 격파당하거나 노획됐다. 북아프리카에 남은 100여 대는 프랑스군의 손에 남았으며, 이들은 1943년까지 실전에 운용되다가 결국 더 현대적인 전차들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졌다. 이것이 르노 FT-17 최후 직계 후손의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