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탱크등,,,

소련, BT전차로 불리는 ‘고속전차’ 개발

구름위 2017. 1. 15. 19:24
728x90

소련, BT전차로 불리는 ‘고속전차’ 개발

<19>초기형은 美 크리스티가 개발한 전차가 기본 바탕험지서도 고속 장거리 주행하는 데 초점 맞춰 등장
2013. 05. 13   16:41 입력


기사사진과 설명
1932년에 등장한 BT-2 전차.

1932년에 등장한 BT-2 전차.


 

기사사진과 설명
1938년에 등장한 BT-7 전차. 필자제공

1938년에 등장한 BT-7 전차. 필자제공


1930년대의 전차 개발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아마도 소련이 개발한 ‘고속전차’, 즉 BT 전차 시리즈일 것이다. 소련에서 개발됐지만 그 근본이 된 것은 전혀 뜻밖의 전차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같으면 전혀 상상할 수 없지만, 바로 미국의 전차가 BT 전차 시리즈의 기본 바탕(그것도 초기형은 거의 차체 카피)이 된 것이다.

 1928~1931년, 미국의 발명가 J. 월터 크리스티는 기존의 전차와 전혀 다른 새로운 전차를 개발했다. 험지에서도 고속으로 주행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이 새로운 전차는 등장한 직후에 미국 자신은 물론 여러 나라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정작 미국에서는 군 당국의 보수적인 견해에 더해 크리스티 자신의 모진 성격 등으로 인해 대규모 채택 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희박해졌다. 그런데 크리스티는 자신의 전 재산은 물론 투자자들의 돈까지 끌어들여 당시 돈으로 38만2000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개발비를 쏟아 부은 상태였다. 지금 돈으로 따지면 수백만 달러, 즉 수십억 원에 달하는 거금인 이 돈은 미 육군에서의 대량 채택을 전제로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그 가능성이 갈수록 희박해지면서 그에게는 다른 수입원이 필요했다.

 여기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잠재 고객이 소련이었다. 소련은 당시 갓 정권을 잡은 독재자 스탈린이 대규모의 공업화 계획을 진행하면서 전차 국산화 역시 빠른 속도로 진행했지만 기술이 부족한 소련으로서는 외국제 전차를 모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외국제 전차들 중 광대하고 거친 소련의 지형에 적합한 기동성을 가진 것은 없었고, 그런 중에 갓 등장한 크리스티 전차는 매력적인 해결책이었다. 외국제이기는 해도 대량생산이 이뤄지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고속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만큼 ‘국산’으로 포장하는 대국민 홍보 차원에서도, 또 실용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괜찮은 대안이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과 소련이 냉전 시대처럼 신경전을 벌이던 때도 아니었고, 이 때문에 소련은 쉽게 크리스티에게 접근해 그의 전차를 소련에 팔라는 제안을 할 수 있었다. 소련은 당시 뉴욕에 암토그(Amtorg)라는 무역상사를 차리고 실제 무역은 물론 첩보 활동까지 진행했고, 크리스티는 암토그를 통해 2대의 M1931 전차 및 설계도면을 넘겼는데, 비록 무기가 아닌 ‘농업용 트랙터’로 위장하기 위해 포탑은 뺀 상태였지만 이것만으로도 소련에 필요한 신형 전차는 충분히 확보된 셈이었다.

 소련은 이것을 토대로 BT 전차로 불리는 일련의 고속 전차들을 개발했다. 최초의 생산차량인 BT-2는 37㎜ 주포를 장착했으나 그 뒤에 나온 개량형인 BT-5와 BT-7은 45㎜ 주포로 화력을 대폭 늘렸고, 그 뒤의 개량형인 BT-7M은 엔진을 디젤로 바꿔 주행거리를 250~300㎞ 정도이던 이전 모델들보다 두 배가 넘는 700㎞까지 늘렸다. 특히 최고 속도는 궤도를 떼고 포장도로에 올라가면 무려 70~80km/h에 달해 ‘고속’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았다.

 이들 BT 전차들, 특히 가장 많은 양이 생산된 BT-5와 BT-7은 소련군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관통력을 갖춘 45㎜ 주포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1939년에 일본군과 벌인 노몬한 전투에서 일본군 전차와 진지를 제압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게다가 노몬한 전투가 벌어진 만주에서는 높은 기동성으로 광활한 지역을 이동할 수 있었던 점이 높게 평가됐다. 반면 스페인 내전에서는 기동성과 화력은 높게 인정받았으나 방어력이 약한 점(장갑 두께가 최대 13㎜)이 약점으로 지목받았으며, 노몬한에서도 장갑뿐 아니라 휘발유 엔진이 적의 화염병 공격에 쉽게 화재를 일으킨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목받았다.

 종합적으로 BT 시리즈 전차들은 1938년까지 1만 대 이상이 생산돼 소련군의 중요한 전차로 자리 잡았으나 과도기적 전차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전차가 소련의 전차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틀림이 없고, 특히 2차 대전 중에 나온 T-34 전차는 BT 전차의 경험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전차의 역사 전반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