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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1927년 초미니 전차 ‘카든-로이드’ 개발

구름위 2017. 1. 1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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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1927년 초미니 전차 ‘카든-로이드’ 개발

<16>?무게 1.5톤·22.5마력 엔진에 시속 48km로 빨라 1930년대 중반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급돼
2013. 04. 22   17:16 입력


기사사진과 설명

3.7인치 곡사포를 견인 중인 카든-로이드 경전차. 견인차로도 요긴하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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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든-로이드 경전차 중 가장 많이 생산된 Mk.VI 버전. 그야말로 기관총 하나를 갖춘 궤도식 트랙터 수준의 간단한 차량이다. 
필자제공

카든-로이드 경전차 중 가장 많이 생산된 Mk.VI 버전. 그야말로 기관총 하나를 갖춘 궤도식 트랙터 수준의 간단한 차량이다. 필자제공


1920년대는 전차 개발의 분명한 정체기였다. 1921년부터 수년간 전 세계에서 단 한 대의 신규 전차도 생산되지 않을 정도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났고 세계 각국은 군축 분위기에 휩싸인 데다 전차가 동원돼야 할 전쟁 자체도 한동안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각국 군대가 아예 없어진 것도 아니고, 전차에 대한 필요성 자체가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특히 1차 대전을 거치면서 전차와 장갑차량을 통해 지상군을 기계화시킨다는 명제 자체에는 거의 모든 나라가 공감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기계화를 어떻게, 어디에서 재원을 마련해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잠깐 돌려 당시 전차에 대해 전력 입안자들이 가진 생각의 두 갈래 큰 흐름을 살펴보자.

1차 대전 이래 전문가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하나는 적진을 강력한 화력과 방어력으로 돌파할 수 있는 강력하고 거대한 전차를 중시하는 세력, 또 하나는 마치 보병의 집단돌격처럼 대규모로 운용할 수 있는 아주 작고 가벼운 경전차를 중시하는 세력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 중간 정도의 전차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마련이었지만,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 얼마 동안은 아주 작고 가벼운 쪽이 거의 주류를 형성하기 직전까지 도달한 바 있었다.

 그 주역은 영국에서 만든 카든-로이드 경전차였다. 1925년대 중반 영국에서는 앞서 언급한 ‘보병처럼 대량으로 운용할 수 있는 초미니 전차’, 즉 탱킷(Tankette)에 대한 아이디어가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영국 육군이 이에 관심을 보이면서 존 카든과 비비언 로이드가 설립한 카든-로이드 트랙터 사가 이런 아이디어에 매우 가까운 초미니 전차를 개발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카든-로이드 경전차. 이것이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중반 사이 세계 전차 전력에 큰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등장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1927년부터 1935년까지 생산된 카든-로이드는 몇 종류의 개량형이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이 생산된 Mk.VI형도 정말 꼭 필요한 것만 있는 전차였다. 전차라기보다는 그저 장갑판을 두르고 기관총을 장착한 궤도차량이었다.

이는 2.5m도 안 되고 폭 역시 2m가 채 안 되는 지극히 작은 이 차량에는 단 두 사람이 앉을 수 있었다. 무장도 한 쪽에 거치된 단 한 자루의 기관총뿐이었다. 무게도 겨우 1.5톤, 장갑도 가장 두꺼운 곳조차 9㎜에 불과해 소총탄도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되면 방어를 100% 단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카든-로이드는 두 가지 면에서 절대 유리했다. 먼저 가격이 대단히 저렴했다. 그야말로 간단한 궤도 차체에 장갑판을 둘렀을 뿐인 단순한 구조로 비싸질 구석이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엔진조차 따로 개발하지 않고 저렴한 22.5마력의 미국제 포드 T 승용차용 엔진을 얹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가벼운 무게 덕분에 속도는 48㎞/h로 당시의 전차로서는 대단히 빨랐다. 게다가 단순한 만큼 유지 비용도 적게 들었다. 작고 단순한 만큼 야포나 트레일러 등을 견인하는 견인차로도 안성맞춤이었다.

 당장 개발국인 영국부터 이 차량에 주목했다. 그렇잖아도 줄어든 국방비로 수많은 식민지를 유지하려면 이런 간단한 장갑차량을 넉넉히 유지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던 것이다. 영국 육군은 325대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많은 수량을 주문해 운용했다. 하지만 영국군만이 고객은 아니었다. 해외 수출도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1929년의 대공황은 카든-로이드에게 오히려 기회였다. 대공황으로 군비 지출이 어려워진 많은 나라가 값싼 카든-로이드를 수입한 것이다.

직접 수출량은 120대가 조금 넘어 그리 많지 않았으나 많은 나라가 기술을 도입해 자체적으로 생산, 배치함으로써 실제 생산량은 그 몇 배에 달하게 됐다. 적어도 20여 개국이 이 차량을 어떤 형태로든 도입했다.

여기에는 소련·일본도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 해서 1930년대 중반까지 카든-로이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전차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 많은 나라의 경전차 개발에 큰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