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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28 M1931 보기륜 하나마다 독립 현수장치 채택

구름위 2017. 1. 1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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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28 M1931 보기륜 하나마다 독립 현수장치 채택

<17> 경사 장갑 개념에 폭로면적 감소 효과까지 노려 높은 주행능력·궤도 없이도 달릴 수 있도록 설계
2013. 04. 29   17:03 입력


 

기사사진과 설명

크리스티 M1928전차. 대형의 보기륜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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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M1931전차. 짧은 포신의 37㎜ 포를 장착했다. 
필자제공

크리스티 M1931전차. 짧은 포신의 37㎜ 포를 장착했다. 필자제공


 

1920년대부터 30년대 초반 사이, 전차 기술의 진보는 정체돼 있었다. 신규 수요가 크게 제한된 데다 그나마 있던 수요도 대부분 고성능 차량이 아니라 유지비와 구매비용 모두 부담이 적은 미니 전차들로 채워지면서 고성능 차세대 주력전차에 대한 수요 자체가 지극히 위축됐다. 결국 전차 개발 전체가 위축되니 기술 발전의 여지도 많이 줄어든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전차 기술의 진보를 불러올 혁신적 변화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다. 그것도 군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한 천재적 기술자의 창의성과 고집이 낳은 변화였다. 게다가 그 변화는 처음 등장한 당사국에서는 천대받고 오히려 다른 나라들에서 빛을 발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변화의 당사자는 바로 미국의 자동차 경주 선수이자 발명가인 J. 월터 크리스티였다. 20세기 초반 세계 곳곳에서의 자동차 경주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였던 그는 초기에는 자동차 관련 분야의 발명에 손을 댔지만 점차 다른 분야로 분야를 옮겼다. 그런 그가 가장 관심을 보인 분야가 바로 전차였다.

1920년대부터 여러 종류의 전차 시제품을 설계했던 그는 1928년 M1928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전차 시제품을 설계, 전차 역사에 길이 남을 첫 발자국을 남겼다.

 M1928은 포탑이 없고 차체에 무장이 집중된 불완전한 형태였으며 이것을 기초로 제대로 된 전차로 재탄생한 것이 1931년 등장한 M1931이었다. 하지만 M1928과 M1931 모두 공통으로 가진 특징이 있었으니 바로 경사 장갑과 새로운 현수장치를 통한 높은 주행능력, 그리고 궤도 없이도 달릴 수 있는 능력이었다.

 사실 이 모든 특성은 궤도 없이도 전차를 달리게 하려는 크리스티의 고안 끝에 나온 것이었다. 크리스티는 궤도가 끊어져도 전차가 달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오히려 궤도 없이 도로를 달릴 때 더 빠른 속도가 나오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전차의 무게를 직접 지탱하는 보기륜을 자동차처럼 크게 만들고 여기에 대형 코일 스프링을 이용해 새로 설계한 현수장치를 만들어 가동 범위를 넓게 하고 충격 흡수 효과도 높였다. 또 보기륜 하나마다 독자적인 현수장치가 달린 독립 현수장치 방식도 채택했다.

엔진에 연결된 기동륜과 보기륜 하나를 필요하면 체인으로 연결해 궤도 없이도 달릴 수 있게 했으며, 차체도 정면 부분이 당시로서는 새로운 개념이던 경사 장갑 개념 및 폭로면적 감소 효과를 노려 쐐기 형태로 디자인했다.

 그 결과 M1928과 M1931 모두 속도부터 두드러지게 빨라졌다. 궤도를 장착한 상태에서도 최고 시속은 60㎞/h에 달했으며 궤도가 없는 상태에서는 포장도로만 달릴 경우 거의 113㎞/h라는 엄청난 속도에 도달했다. 하지만 속도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험지에서도 기존 전차보다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게 하는 대형의 보기륜과 독립 현수장치의 존재였다.

이전의 전차들은 보병들과의 합동작전에 필요한 수준 이상의 속도는 대부분 필요 없다고 여겼다. 그 때문에 참호나 장애물의 극복에 유리하도록 작은 보기륜을 여럿 배열하는 쪽을 선호했지만 그로 인해 속도 면에서는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크리스티의 전차들은 이런 발상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러나 정작 크리스티의 전차, 심지어 나름 완성형이라 할 만했던 M1931만 해도 실용을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았다. 당장 방어력과 화력 모두가 당시 미군에서 생각하던 수준에 비해 부족했다.

특히 방어력은 제일 두꺼운 곳도 16㎜가 채 안 됐다. 기동성이 뛰어나기는 해도 당시 미군에서 기동성은 그리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는 데다 그만큼 연약지반에서의 기동성이 낮다는 불평도 있었다.

 크리스티 본인의 성격도 문제였다. 고집불통인 성격 때문에 일부 우호적인 군 장교들이 요청한 설계 변경에도 완강하게 저항했고 결국 미군에는 몇 대만이 시험적으로 납품되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그의 설계는 곧 다른 나라에서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꽃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