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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ⅠMk.Ⅱ1930년대까지 영국군 주력 전차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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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ⅠMk.Ⅱ1930년대까지 영국군 주력 전차로 사용

<15>대형 회전포탑 갖춰 승무원 3명이 역할 분담
2013. 04. 15   16:48 입력


기사사진과 설명
기관총과 47㎜ 주포를 동시에 갖춘 회전포탑으로 비교적 현대적인 형태의 빅커스 Mk.I 전차.

기관총과 47㎜ 주포를 동시에 갖춘 회전포탑으로 비교적 현대적인 형태의 빅커스 Mk.I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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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I을 개량한 빅커스 Mk.II 중전차. 
필자제공

Mk.I을 개량한 빅커스 Mk.II 중전차. 필자제공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각국의 전차 개발은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전쟁이 끝나기 직전 설계돼 6000대가 대량 생산될 예정이던 영국의 신형 중(中)전차 Mk.C형 역시 생산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면서 결국 50대라는 극소수만 생산되고 말았다. 당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 끝나면서 많은 나라는 앞으로 대규모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에 휩싸였다. 자연스럽게 국방비도 전쟁 전보다 더욱 줄어들면서 신형 전차를 개발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전차 개발국이자 여전히 우수한 전차 설계 기술을 보유한 영국은 예외였다. 물론 영국도 전차 전력을 급속도로 줄인 것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이 끝난 뒤 영국의 전차 총 전력은 겨우 5개 대대라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영국은 얼마 안 되는 전차라도 새로 개발해 유지하겠다는 야심으로 신형 중(中)전차인 마크 D형의 개발에 꽤 많은 예산을 투입했으나 이것이 실패하면서 얼마간 전차 설계의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정부 예산은 크게 줄고 결국 1923년에는 정부의 전차 설계국까지 폐쇄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은 최초로 전차를 생산한 나라이기 때문에 민간 기업들에도 전차 개발의 노하우가 전수된 상태였다. 이것을 토대로 당시 영국 최대의 방산기업인 빅커스(Vickers)사는 육군이 요구한 경전차 프로젝트를 위한 새로운 전차를 개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영국이 전쟁 뒤 최초로 개발한 전차인 빅커스 Mk.I 중(中)전차의 시작이었다.

 사실 이 전차의 개발과정은 1차 대전 직후의 영국 전차개발 속에서 말 그대로 우여곡절을 겪은 것이었다. 원래는 보병 지원을 위한 경전차로 개발됐으나 야심 차게 개발하던 마크 D가 취소되면서 사실상 다른 대안이 없게 되자 그나마 가장 괜찮은 대안이던 빅커스 Mk.I 경전차를 사실상의 주력전차인 중(中)전차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1924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빅커스 Mk.I은 1921년에 프랑스의 샤르 2C 전차 생산이 종료된 뒤로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생산된 전차였다. 전 세계적인 군축 열풍으로 인해 무려 3년간 어느 나라도 새로운 전차를 만들지 못한 것이다. 만약 영국이 빅커스 Mk.I조차 생산하지 않았다면 한동안 세계 전차개발의 맥이 끊길 뻔했다. 사실 영국도 여전히 세계 최대의 식민지를 유지하는 제국으로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전차 생산을 결정한 것이며 자칫하면 그들조차 전차 개발을 중도에 포기할 뻔했다.

 이처럼 어려운 여건에서 간신히 생산된 Mk.I이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개발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문제점 역시 많았다. 무엇보다도 주행기구에 문제가 많았다. 보기륜, 즉 차중을 직접 지탱하는 바퀴와 현수장치 등은 자주 고장 났다. 한 장군은 Mk.I의 기동을 보고 ‘이 전차가 지나간 자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떨어진 바퀴가 흩어져 있으니 말이다’라고 조소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들은 1931년이 되어서야 해결됐다. 하지만, 초기형인 Mk.I(30대 생산)은 장갑이 6.5㎜에 불과했고 개량형인 Mk.IA형(50대 생산) 역시 8㎜에 불과해 방어력은 오히려 1차 대전 당시보다 퇴보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에도 빅커스 Mk.I 중전차는 역사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전차다. 하나의 대형 회전포탑을 갖춘 현대적인 형태를 완전히 정착시킨 데다 포탑에는 역할이 분담된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해 업무 효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전차장은 다른 일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지휘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1930년대 후반까지 이런 특징은 다른 나라들에서 장점으로 인식되지 못했다.

 빅커스 Mk.I, 그리고 약 120대가 1925년부터 생산된 빅커스 Mk.II 중전차는 1930년대 후반까지 영국군의 주력 전차로 사용됐으며 영국의 현대적 기갑전술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됐다.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현대적 전차의 개발과 운용을 단절 없이 계속할 수 있게 한 점에서 빅커스 Mk.I과 Mk.II는 현대 전차사에 중요한 연결고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