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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짜르 “덩치 크나 헛일” 美 3톤 짜리 “전쟁 끝물이라”

구름위 2017. 1. 1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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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짜르 “덩치 크나 헛일” 美 3톤 짜리 “전쟁 끝물이라”

<12>단명한 전차
2013. 03. 25   21:39 입력


지름 9m 거대한 바퀴가 두 개 지반에 빠지고 기계적 결함도 보병처럼 대규모로 투입 계획 1차 세계대전 끝나가 생산중단

기사사진과 설명
1만5000대가 생산될 예정이었으나 결국 15대만 생산된 포드 3t 경전차.

1만5000대가 생산될 예정이었으나 결국 15대만 생산된 포드 3t 경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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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 차게 개발됐으나 결국 실패한 러시아의 ‘짜르 전차’.

야심 차게 개발됐으나 결국 실패한 러시아의 ‘짜르 전차’.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직접 전차를 만들어 실전에 배치할 수 있던 나라는 사실상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세 나라뿐이었다. 전차를 사용한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이 프랑스와 영국제의 전차 공급에 의존했으며 이것은 러시아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러시아와 미국 모두 외국제 전차의 공급에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두 나라 모두 나름대로 자국산 전차를 만들고 싶어 했으며 그 중 러시아는 전차의 역사상 길이 남을 독특한 차량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러시아로서는 나름대로 전차의 필요성을 가장 일찍 절감한 나라 중 하나였다. 러일전쟁을 통해 가장 먼저 철조망과 참호, 기관총이라는 3대 요소가 결합되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효과를 발휘하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미 1914년부터 이 나라에서는 전장을 돌파할 수 있는 전차의 개발이 이뤄졌으나 문제는 그 개발의 방향이었다.

 알렉상드르 미쿨린과 보리스 슈테츠킨 등 여러 명의 기술자가 함께 개발한 러시아의 전차는 ‘짜르(러시아 황제)의 전차’라고 불리는 것으로, 다른 나라들의 무한궤도 대신 무려 지름 9m의 거대한 바퀴를 두 개 가진 3륜 자전거 같은 형태였다. 두 개의 거대 바퀴로 움직이며 앞에 있는 1.5m 높이의 작은 바퀴로 방향을 바꾸는 것인데, 사실 원리 자체로 보면 무한궤도와 큰 차이가 없다. 무한궤도 역시 원리 자체는 거대한 바퀴가 땅에 닿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노리고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거대한 바퀴를 이용해 험한 지형을 돌파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였다. 게다가 거대한 크기 때문에 무장이 모두 적의 머리 한참 위에 있기 때문에 적의 무개호 위를 쉽게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포탑만 해도 8m 높이에 위치하는 이 괴물은 당장 무게 배분부터 좋지 않아 연약지반에 종종 처박혀 움직이지 못했으며 그 밖에도 수많은 기계적 결함과 운용상의 난점을 안고 있었다. 애당초 이런 거대한 바퀴를 겨우 250마력의 엔진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이기도 어려웠으며 바퀴 자체도 파손되기 쉬웠다. 거대한 크기 역시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효과 이상으로 적의 포화를 끌어들이기 쉬울 터였다.

 결국 1915년까지 이 전차는 여러 차례의 테스트를 겪었으나 좋은 평가를 받을 방법은 없었고, 러시아군도 결국은 개발을 포기하고 말았다. 개발이 취소된 뒤 단 한 대의 시제품은 모스크바에서 약 6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험장에 여러 해 방치돼 있다가 1923년에 해체됐다.

 러시아와 정 반대 방향으로 개발된 것이 미국의 포드 3톤 경전차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 육군은 프랑스의 르노 FT-17에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고, FT-17을 ‘6톤 경전차 M1917’이라는 이름으로 면허 생산하는 한편으로 이를 보충할 더 작은 경전차를 개발했다. 미국이 개발할 경전차는 회전 포탑조차 없었으며, 유일한 무장인 기관총은 차체 앞에 직접 거치됐다. 승무원은 르노와 마찬가지로 2명이었으나 이처럼 최대한 컴팩트하게 만든 덕분에 무게는 르노의 거의 절반인 3톤으로 억제될 수 있었고 속도 역시 45마력의 엔진으로 당시로서는 꽤 빠른 12.8㎞/h이 나왔다.

 1918년 중순에 시작된 개발 자체는 자동차 업체인 포드에 의해 그리 어렵지 않게 진행됐다. 미국의 구상은 이 작은 전차를 무려 1만5000대나 만들어 마치 보병처럼 대규모로 전선에 쏟아붓겠다는 야심찬 것이었다.

 하지만 기술적 문제는 없어도 전술적 문제는 있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회전포탑도 갖추지 못하고 기관총 하나만으로 무장한 이런 전차의 효용성이 의문이었으며 이 때문에 미군 관계자들은 이 전차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타이밍이었다. 1918년 11월에 1차 세계대전이 끝날 시점까지 생산된 수는 겨우 15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났는데 1만 대가 넘는 전차를 보유할 이유가 없었고, 미군은 이미 생산이 시작된 6톤 경전차와 프랑스에서 받은 르노 경전차 합계 약 1100여 대만을 운용하기로 했다. 3톤 경전차는 결국 15대만 생산된 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