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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리틀윌리 단점 보완 첫 실용전차 Mk.I 개발

구름위 2017. 1. 15.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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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리틀윌리 단점 보완 첫 실용전차 Mk.I 개발

덩치는 “믿을만” 파워는 “글쎄요”
2013. 02. 04   17:50 입력


무게 27톤 넘지만 소총탄 막는 수준

속력도 빨리 내봐야 어른 걸음 속도

 

기사사진과 설명
영국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실용 전차 Mk.I ‘마더’. 리틀 윌리의 단점을 상당히 보완했다지만 능력에 비해 덩치가 크고 무거운 데다 최고 속도도 어른이 걷는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문제점이 많았다. 필자제공

영국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실용 전차 Mk.I ‘마더’. 리틀 윌리의 단점을 상당히 보완했다지만 능력에 비해 덩치가 크고 무거운 데다 최고 속도도 어른이 걷는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문제점이 많았다. 필자제공



 

 

 1915년, 영국에서 첫 전차 시제품인 리틀 윌리가 막 시험을 거치는 동안 영국 기술자들은 이미 그 단점을 충분히 실감하고 있었다. 트랙터 차대 위에 장갑 박스를 얹은 형태 때문에 리틀 윌리는 이미 무게중심이 꽤 높았다. 그 높은 차체 위에 회전포탑까지 얹으면 더욱 높아졌다. 이로 인해 영국 육군이 요구한 장애물 돌파능력, 즉 평균 1.2m 높이의 독일군 참호 방벽 돌파도 어려웠고 궤도의 길이도 독일군의 참호 최대폭인 2.4m 구덩이를 돌파하는 데도 불충분했다.

 이 때문에 ‘육상 군함 위원회’의 기술 실무를 맡은 월터 윌슨 중위와 민간인 기술자인 윌리엄 트리튼은 리틀 윌리의 구성품을 활용하되 외관은 완전히 바꾼 새로운 차량을 만들기 시작했다. 차체 자체가 더 크고 길어졌고, 궤도는 차체 아래에 따로 설치되는 게 아니라 차체 바깥쪽에 완전히 둘러지는 독특한 스타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직 장애물 돌파능력이 크게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참호 극복 능력도 크게 높아졌다. 이런 형태의 전차는 나중에 능(陵)형 전차로 불리게 된다.

 무장의 탑재 위치도 완전히 바뀌었다. 원래 위쪽에 독립된 포탑을 장착할 예정이었던 리틀 윌리와 달리 새로운 차량은 포나 기관총 등의 무장을 차체 양 측면과 앞뒤에 분산 배치했다. 이렇게 해서 무게중심은 크게 낮아진 반면 여러 방향을 커버하기 위해 많은 무장이 필요하고 그만큼 필요한 승무원 수가 늘어난 것은 분명한 단점이었다.

기사사진과 설명
Mk.I 전차의 4면도. 뒤에 달린 바퀴는 방향전환을 돕기 위한 것이다. 필자제공

Mk.I 전차의 4면도. 뒤에 달린 바퀴는 방향전환을 돕기 위한 것이다. 필자제공





 하지만 이렇게 해서 새로 만들어진 새로운 차량은 리틀 윌리보다 더 실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15년 12월에 완성돼 Mk.(마크)I이라는 제식 번호를 부여받은 새로운 시제품은 ‘마더’(Mother)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1916년 초 성공적으로 시범을 마쳤다.

 특히 이 시범을 통해 당시 탄약 담당 장관이던 로이드 조지(나중에 총리로 발탁되는)가 감명을 받아 Mk.I 전차의 양산을 책임지기로 약속한 것은 큰 진전이었다. 1916년 2월 12일 정식으로 Mk.I의 생산 주문이 들어왔고, 100대의 첫 물량 제작이 곧 그 뒤를 따랐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초의 실전용 양산 전차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육상 군함 위원회’는 이름을 ‘탱크 공급 위원회’로 바꾸었고 육군에서도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가했지만 여전히 육군 수뇌부는 그 가능성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Mk.I 전차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재미있지만 문제점도 많은 물건이었다. 당장 덩치가 능력에 비해 크고 무거웠다. 무게는 27t이 넘지만 장갑은 간신히 소총 탄을 막는 수준이었다. 이것은 덩치가 길이 약 8m, 폭 4.3m로 상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진은 105마력의 가솔린 엔진 하나뿐이었기에 최고 속도는 6㎞로 어른이 걷는 속도에 불과했다.

 이처럼 덩치가 커진 이유는 승무원이 8명이나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종에 필요한 인원이 무려 4명이었다. 조종수 1명에 전차장 겸 브레이크 조작수 1명, 여기에 변속 기어 조작에 또 2명이 필요했다. 나머지 4명은 전차 사방에 설치된 기관총과 포를 다뤘다. 게다가 이 많은 인원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도 어려웠다. 차내 통신시설이 없는 데다 엔진과 승무원 탑승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소음이 엄청났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수신호로 이뤄져야만 했다. 게다가 엄청난 내부 소음으로 인해 무전기도 쓸모가 없었다. 그로 인해 외부와의 의사소통은 미리 탑승한 두 마리의 전서구(통신용 비둘기)에 의존해야만 했다.

 소음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충격을 흡수할 현수장치가 없어 진동 또한 엄청났다. 장애물을 좀더 쉽게 넘게 하려 한 설계였다지만 이로 인해 차내의 승무원들은 주행 중 극도의 소음과 진동에 시달려야 했다.

 Mk.I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57㎜포 2문과 3정의 기관총을 갖춘 메일(male:수컷), 또 하나는 기관총 5정만을 갖춘 피메일(female:암컷)이다. 당시만 해도 전차의 주적은 적 보병이었기에 굳이 전차 전부에 포를 갖추는 것보다는 기관총만 갖춘 전차와 포를 갖춘 전차를 일대일로 섞어 배치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