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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궤도식 장갑차 ‘전투용으로 가치’ 확인

구름위 2017. 1. 1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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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궤도식 장갑차 ‘전투용으로 가치’ 확인

궤도식 트랙터+장갑+무장 종군기자 아이디어서 출발
2013. 01. 28   20:19 입력 | 2013. 01. 28   20:21 수정



 




 

 

 무한궤도식 차량이 실용화된 지 오래 지나지 않은 1914년,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암살당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초기만 해도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발전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고, 참전국들은 하나같이 이 전쟁이 길어야 3개월 이내에 자국의 압도적 승리로 끝날 것을 확신했다. 모든 나라가 자국 군대의 병사와 장군들이 나폴레옹식의 화려한 기동전으로 적을 제압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식 기동전의 꿈은 오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신무기인 연발 소총과 기관총 때문에 보병의 돌격은 빈번하게 저지당했고 특히 방어자가 참호를 파고 자신을 방어하는 동시에 철조망으로 적의 진격로를 차단하면서 전투는 방어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전개됐다. 단 하루에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오래지 않아 연합군과 추축군의 양측 군대는 기동전을 포기하고 참호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양측 모두의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적진을 돌파할까. 잘 구축된 참호는 대대적인 포병 사격으로도 제압할 수 없었으며 적 참호 제압에 실패하면 공격하는 보병은 문자 그대로 기관총에 학살당하기 일쑤였다. 전통적으로 적의 방어망에 대한 돌파는 기병의 몫이었으나 기병 역시 잘 준비된 진지 앞에서의 운명은 보병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양측 참호선 사이에 생긴 무인지대는 버려진 개인 호나 포탄 구덩이 등으로 인해 마치 달 표면처럼 우툴두툴해지면서 대부분의 기동수단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의 최신 장비이던 장갑차도 이 무인지대에서는 얼마 가지 못하고 바퀴가 빠져버렸다. 말이나 트럭으로는 야포나 물자를 전선으로 추진하기 어려워 궤도식 트랙터를 투입할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한 영국 육군 소령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궤도식 트랙터(견인차)에 장갑과 무장을 장착하고 전투에 투입하면 어떨까?

 이 아이디어의 주인공은 1914년 당시 종군기자로 일하던(당시 영국은 민간인 기자의 전선 출입을 통제하는 대신 현역 군인에게 전선 취재를 맡기고 검열된 기사를 언론사에 송고하게 했다) 어니스트 스윈턴 소령이었다. 최전선에서 미국제 홀트 트랙터가 험지에서도 거침없이 움직이는 것을 목격한 스윈턴은 여기에 적의 총탄을 막는 장갑판을 부착하고 무장을 달면 적의 철조망과 참호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돌격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스윈턴은 처음에는 영국 육군 수뇌부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지만, 곧바로 거절당했다. 보수적인 육군 수뇌부로서는 농기계였던 트랙터 ‘따위’가 적진을 돌파할 수 있 으리라고는 믿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엉뚱하게도 해군을 중심으로 실현된다. 당시 해군 장관이던 윈스턴 처칠이 스윈턴의 ‘전투용 장갑 트랙터’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 하면서 해군이 주도하는 신무기 개발 위원회가 설립됐다. 해군이 주도하는 곳답게 ‘육상 군함 위원회’로 이름 붙은 이 새로운 위원회는 곧 영국제의 포스터 궤도식 트랙터를 개조해 최초의 전차 시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1915년 9월에 완성된 최초의 전차 시제품은 당시 독일 황태자의 별명을 따 ‘리틀 윌리’로 명명됐으며 곧바로 여러 종류의 테스트를 거쳤다. 리틀 윌리는 트랙터 차대 위에 박스형 차체를 얹은 단순한 차량으로, 차체도 제대로 된 장갑판이 아니라 보일러 철판을 이어붙인 엉성한 것이었고 무장도 결국 장착되지 못했다. 최고 속도 역시 사람이 걷는 것보다 느렸지만, 테스트 결과 적어도 기존의 장갑차와는 비교도 안 되는 험지 돌파능력이 있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테스트 결과 리틀 윌리 그 자체는 실전용으로는 채택되지 못했다. 주행 능력, 특히 참호 돌파 능력이 군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떨어졌던 것이다. 결국, 리틀 윌리는 단 한 대의 시제품만으로 끝났지만, 적어도 이 차량을 테스트하면서 무한궤도식 장갑차량이 전투용으로 상당한 잠재력이 있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 차량을 세계 최초의 근대적 전차 시제품으로 인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