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전투식량에 전쟁영웅 이름? 삼시세끼 먹는 빵에 별명 붙여
- 순무
1차 대전 당시 음식이라기보다 가축사료에 가까웠던 순무. 필자 제공 |
순무 빵. 1차 대전 중 독일군은 삼시세끼 순무 빵을 먹었다. 필자 제공 |
독일의 전쟁영웅 힌덴부르크 장군. 필자 제공 |
1차 대전 때 러시아군을 물리친 타넨베르크 전투. 필자 제공 |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장군은 독일의 전쟁 영웅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동부 타넨베르크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궤멸시키고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독일군 참모총장이 돼 전쟁을 지휘했으며 종전 후에는 바이마르공화국 대통령까지
지냈다.
1차대전 식량은 ‘힌덴부르크 빵과 버터’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은 보급받은 빵과 버터를 힌덴부르크 빵과 버터라고 불렀다. 병사들이 자신들이 먹는 음식에 참모총장이자 전쟁 영웅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어떤 빵과 버터였기에 그랬을까?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 당시 독일군 병사가 먹던 음식이 나온다. “아침은
순무로 만든 빵, 점심은 순무 수프, 저녁은 순무를 튀긴 커틀릿과 순무 샐러드….” 전선에 새로 배치된 독일군 병사가 투덜거리자 참호 속 고참이
대꾸한다. “너희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순무로 만든 빵을 먹다니…. 이곳에서는 가끔가다 톱밥으로 만든 빵이
지급되거든.”
힌덴부르크 빵은 순무로 만든 빵이었다. 순무 빵은 순무를 바짝 말린 후 밀가루처럼 갈아서 반죽해 만든다. 빵이라고
불러서 그렇지 순무를 그대로 삶아서 먹기 무엇하니까 갈아서 쪄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온종일 찐 순무만 먹다 보니 독일군 병사들은 불만이
커지고 사기도 떨어졌다.
그러자 독일군 사령부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힌덴부르크 빵이라는 별명이 붙은 순무 빵에다 발라 먹으라고
버터를 지급했다.
버터는 우유를 원료로 만드는 낙농제품이다. 하지만 식량이 떨어져 순무로 빵을 만들어 먹어야 했던 독일에 제대로
된 버터가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혹시 돼지비계로라도 만들었을까? 생김새는 비계처럼 하얀 덩어리였지만, 사실은 순무를 갈아서 만든 순무
잼이었다. 잼이라고는 하지만 설탕을 넣고 제대로 만든 것이 아니라 물기를 제거한 순무 즙일 뿐이었다. 매일 아침·점심·저녁으로 순무 빵을 먹는
것이 지겨우니까 진짜 버터를 발라 먹는 것처럼 기분전환이라도 하라는 독일군 사령부의
고육지책이었다.
독일경제 파탄으로 먹을 것이 없어
독일의 전쟁 영웅이었던
힌덴부르크 장군은 왜 병사들에게 하루 종일 순무로 만든 빵과 버터를 먹여야만 했을까?
패색이 짙은 전쟁이었으니 물자 부족이
당연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초기에 독일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독일이 질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었다. 준비가 전혀 안 된 채 시작했기 때문이다. 단기전으로 끝났으면 모를까 5년이라는 장기전이 되면서 독일경제는 파탄이
났다.
민간경제를 바탕으로 한 군수조달계획 등 전시동원체제도 마련하지 않은 채 치른 전쟁이었기에 발발 몇 달 후부터 독일은 물자
부족에 시달렸다. 민간경제에 대한 계획과 통제 없이 전시정책이 집행돼 곳곳에서 부작용이 생겼다.
예를 들어 숙련된 광부를
징집하면서 탄광에서는 석탄 생산이 줄었고, 섬유공장 기술자들이 모두 입대하는 바람에 군복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 농부의 대거 징집으로 식량생산도
줄었다. 게다가 1916년부터 영국이 독일 해안을 철저하게 봉쇄하면서 해외로부터의 물자 반입이 중단됐다. 철저하게 독일 영토에서 생산하는
식량으로 자급자족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1916년 겨울, 독일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는다. 농사를 완전히 망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이 한창일 때라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었기에 독일은 재배 작물을 두 종류로 단순화했다. 하나는 독일인의 주식인 감자였고 또
다른 하나는 가축들에게 사료로 먹일 순무였다.
가축사료였던 순무로 배고픔
달래
그런데 갑자기 내린 가을비로 사람들이 먹을 양식인 감자가 수확도 하기 전에 밭에서 모두 썩어 버렸다. 그
결과 심각한 식량난을 겪게 됐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순무는 썩지 않았다. 순무는 추위에 강하고 웬만한 기후조건에는 잘 자라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 무렵 순무는 사람들이 잘 먹지 않았고 음식이라기보다는 가축사료에 가까웠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순무가
강화도 특산물로 유명하고 덕분에 순무 깍두기, 순무 김치도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요즘은 순무가 건강에 좋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사정이 달랐던 것이다.
먹을 것이라고는 순무밖에 없으니 독일군 병사들은 삼시세끼 순무 빵과 순무
버터를 먹어야 했다. 힌덴부르크 빵과 버터가 생겨난 배경이다. 그나마 병사들의 식량 사정은 후방의 민간인들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민간인들은
밭에서 썩고 있는 순무와 이파리로 수프를 끓여 먹고 살았다. 그 결과 1916년 겨울, 독일에서는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약 74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탈북자 증언에 의하면 지금도 북한군의 주요 식량과 반찬은 염장 무라고 한다. 북한 병사들은 염장 무를 무엇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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