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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승리 비결? 도토리에 달려 있다

구름위 2017. 1. 1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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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승리 비결? 도토리에 달려 있다



와이즈만 박사, 화약 제조에 필요한 아세톤 얻는 법 개발

영국의 1차 대전 승리·이스라엘 건국 배경에 한 몫

 

기사사진과 설명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5년 영국은 화약 제조에 필요한 아세톤이 부족해 탄약 위기를 겪었다. 사진은 영국의 포탄 제조 공장.



 

기사사진과 설명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분을 이용한 아세톤 제조 기술을 개발한 체임 와이즈만 박사.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분을 이용한 아세톤 제조 기술을 개발한 체임 와이즈만 박사.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가을, 영국 초·중·고등학교에 뜬금없는 공문 한 통이 날아들었다.

 “선생님들은 학생을 독려해 도토리를 수집할 것. 도토리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 긴급한 필수 군수품이니 최대한 많이 도토리를 주울 것.”

 밑도 끝도 없었다. 도토리가 왜 필요한 것인지, 도토리로 어떻게 독일군을 물리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인지 일체의 설명이 없었다. 무조건 도토리를 긁어모아 달라는 주문이었다. 도토리를 가져오면 약간의 보답이 주어지기도 했지만, 전쟁 승리에 필요한 물자라기에 선생님과 학생들은 열심히 도토리를 모았다. 화물열차로 다 수송하지 못할 정도로 기차역마다 도토리가 쌓였다. 어쨌든 정부에서 목표로 했던 3000톤의 도토리가 모였다. 영국은 전쟁이 한창일 때 도토리를 모아서 어디에 쓰려고 했던 것일까?

 영국 정부에서 도토리 모으기에 열을 올리기 2년 전인 1915년,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던 서부전선에 황당한 명령이 떨어졌다. 참호에서 치열한 포격전을 주고받던 영국군에게 하루 네 발 이상 포 사격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

 하루 네 발 이상 포탄을 쏘지 말라는 터무니없는 지시에는 이유가 있었다. 탄약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일선의 일부 부대가 탄약 공급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영국군은 물론 연합군 전체의 탄약비축량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전쟁사에 기록된 1915년의 탄약 위기(Shell Crisis)였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 영국군은 독일군 참호를 향해 비처럼 포탄을 퍼부었다. 포탄을 적에게 쏟아부었는데 전쟁 발발 약 일 년이 지나면서 탄약이 바닥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본토가 직접적인 폭격을 당한 것도 아니니 탄약이야 공장에서 생산하면 될 것 같지만 문제가 있었다. 화약 제조에 필수적인 재료가 딱 한 가지 부족해 원활하게 탄약 생산을 할 수가 없었다. 아세톤이라는 화학물질의 재고가 부족해진 것이다.

 아세톤은 박달나무·밤나무·단풍나무와 같은 목재를 건조 증류시켜 만든다. 나무를 밀폐된 용기에 넣고 열을 가하면 생기는 증기에서 얻어지는 물질이다. 그 때문에 아세톤을 대량생산하려면 엄청 많은 목재가 필요했다.

 전선에 공급할 탄약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약 3만 톤의 아세톤이 필요한데 남은 아세톤 물량은 3000톤에 불과했다. 하루 네 발 이상의 포탄을 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진 배경이다.

 탄약이 없어 각종 무기가 무용지물이 될 지경이었다. 영국은 하루속히 목재 이외의 다른 물질에서 아세톤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때 아세톤 제조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유대인으로 당시 맨체스터 대학의 화학교수였던 체임 와이즈만(Chaim Weizmann) 박사다.

 와이즈만 박사는 1910년, 인조 고무를 만드는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설탕을 분해해 순수 아세톤으로 만드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 하지만 영국은 설탕 원료인 사탕수수나 사탕무 생산국이 아니다. 그 때문에 영국에서 재배하는 감자·귀리·밀 등의 작물을 이용해 아세톤을 생산했지만, 그 양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아세톤 품귀 사태가 벌어질 무렵 와이즈만 박사가 새롭게 옥수수 전분을 이용해 다량의 아세톤을 얻는 방법을 개발했다. 영국군은 물론 프랑스를 비롯한 연합국 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양을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아세톤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숨 돌렸다 싶을 무렵인 1917년,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전쟁이 길어진 데다 독일 U보트의 해안 봉쇄로 식량 부족 현상이 심각해졌다. 화약 제조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군인과 국민에게 지급할 양식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다. 아세톤 생산에 쓸 옥수수는 물론 감자 등의 전분까지도 모두 식량 배급으로 돌려야 했다.

 이때 대체품으로 등장한 것이 도토리였다. 옥수수 대신 도토리 전분을 이용해 아세톤을 생산한다는 계획이 마련됐다.

 영국의 전쟁 승리에는 이렇게 도토리와 옥수수가 한몫을 했다. 그리고 전분을 이용한 아세톤 생산 기술을 개발한 와이즈만 박사는 이때 영국 정치 지도자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훗날 이스라엘이 건국하는 데 일조했다. 그 결과 1949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영국의 1차 대전 승리와 이스라엘 건국에 엉뚱하게 도토리가 기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