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일찍이 전쟁통에 의약품이 동나면 마늘이 ‘만병통치’

구름위 2017. 1. 1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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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전쟁통에 의약품이 동나면 마늘이 ‘만병통치’



부상병 세균 감염 막고 이질 예방 효과

2차 세계대전 땐 페니실린 대용으로 써

고대 전쟁 기록에도 병사의 필수 휴대품

 

 

 


 

 

기사사진과 설명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군의관들은 항생제가 떨어지자 마늘로 대신했다. 사진은 들것에 부상병을 실어 나르는 영국 위생병들.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군의관들은 항생제가 떨어지자 마늘로 대신했다. 사진은 들것에 부상병을 실어 나르는 영국 위생병들.




 

 

 한국인은 마늘을 무척 좋아한다. 김치 양념은 물론이고 우리 밥상에서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반찬을 찾기 어렵다. 삼겹살 먹을 때는 마늘도 함께 굽고 매운 생마늘 역시 거침없이 먹는다. 하기야 마늘 먹고 곰에서 여인으로 탈바꿈한 웅녀의 자손이니 우리나라 사람이 유독 마늘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마늘을 흔히 일해백리(一害百利)의 작물이라고 한다. 먹었을 때 냄새가 많이 나는 것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사람에게 이로운 식품이라는 뜻이다. 전쟁의 역사를 봐도 한 가지만 해롭고 100가지는 이롭다는 마늘의 특성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작고한 미국의 영화배우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던 제임스 가너가 생전에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했다. 한밤중에 보초를 서던 중 고지 아래쪽 계곡에 적군이 있음을 감지하고 지휘관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중이었고 또 귀를 기울여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지휘관은 북한군이 있는 것이 확실하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가너가 북한군 냄새가 난다고 대답했다. 확신에 찬 초병의 말에 지휘관이 야간 포격을 요청했다. 날이 밝은 후 계곡 아래를 정찰하자 과연 음식을 먹던 몇 명의 북한군이 포격에 죽은 것을 확인했다. 냄새에 민감했던 제임스 가너가 다른 병사들은 미처 감지하지 못한 마늘 냄새를 맡았던 것이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 병사는 이질에 걸려 고생했지만,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은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조선인들은 평소 마늘을 즐겨 먹기 때문에 이질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 역사적으로 마늘만큼 많은 생명을 구한 식품도 흔치 않다. 특히 전쟁터에서 마늘은 의약품이 떨어졌을 때 부상당한 병사의 상처를 치료하는 대용 의약품으로 활용됐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군의관들이 의약품이 떨어졌을 때 이용한 식품이 마늘이었다. 조미료로 쓰려고 준비한 마늘을 야전병원으로 가져와 부상병을 치료했다. 항생제는 말할 것도 없고 붕대마저 떨어지자 이끼를 뜯어다 마늘 즙에 적신 후 부상병의 상처에 덮었다. 그 결과 파편에 찢긴 상처 부위가 세균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 고름 생성을 방지할 수 있었다.

 응급 대용 의약품으로 마늘의 효과가 입증되자 영국 정부는 전쟁이 한창이던 1916년 영국 농가에 마늘 재배를 적극 장려했다. 비싼 가격으로 수톤의 마늘을 구매하면서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자이니 생산량을 늘려줄 것을 주문했다. 조미료는 물론 의약품 대용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늘은 현대에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의약품으로 쓰였다. 전쟁 당시 마늘의 별명이 ‘러시아제 페니실린’이었다. 전선이 확대되면서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떨어지자 소련 군의관들은 할 수 없이 전통적인 민간요법으로 부상병을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쓰인 약재가 마늘이었다. 광범위한 전선에서 페니실린 대신 마늘을 사용했기에 러시아제 페니실린이라는 별명이 생긴 것이다.

 근대 이후 마늘이 의약품 대용으로 쓰였지만 고대 군대에서는 마늘 그 자체가 필수 휴대품이었다.

 전투에 의한 희생보다는 질병으로 인한 피해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한 전투가 1552년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메츠(Metz) 공방전이었다. 스페인의 카를 5세 황제는 프랑스 북동부 지역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20만의 병력을 동원해 메츠 성을 포위했다. 프랑스는 기즈 공작이 6000명의 병력과 주민으로 성을 방어했다. 기즈 공작은 포위를 당하자 질병 발생을 막기 위해 깨끗한 물과 음식을 공급하고 분뇨와 동물의 시신은 성 밖으로 버렸다. 특히 이질 증상을 보이는 설사 환자는 철저하게 분리했다.

 반면 스페인군은 용변 처리를 비롯한 위생관리를 소홀히 해 이질이 돌았다. 그 결과 65일 동안 포위 공격을 하면서 스페인군은 질병으로 2만 명이 쓰러졌다. 결국 스페인군은 이질이 퍼지면서 포위를 풀고 철수해야만 했다. 전쟁사에서 질병으로 승패가 결정된 최초의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마늘을 이질 치료 약품으로 활용했다. 서기 1세기 무렵 중국 한나라 때 훗날 후한의 황제 광무제가 되는 유수(劉秀)가 반란군에게 쫓겨 달아나는데 병사들이 이질에 걸려 전투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군대가 마침 마늘 밭을 통과하고 있었기에 의사의 조언에 따라 병사들에게 마늘을 먹였더니 이질이 치료돼 바로 전투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축적돼 옛사람들은 여행 갈 때 낯선 음식과 환경에 대비해 마늘을 상비약으로 휴대했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마늘이 사실은 고대부터 대용 의약품으로 쓰였음은 전쟁사가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