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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전투식량으로~ 구강 청결·긴장 해소에 ‘딱’

구름위 2017. 1. 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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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전투식량으로~ 구강 청결·긴장 해소에 ‘딱’

 추잉 껌


알라모 전투 멕시코 산타 아나 장군

전쟁 재기 발판 위해 원료 수입

…‘껌’ 탄생의 숨은 공로자

추잉 껌은 1870년대에 상업화

 

 

기사사진과 설명
껌의 원료인 치클을 생산하는 사포딜라 나무.

껌의 원료인 치클을 생산하는 사포딜라 나무.



 

   미군 전투식량에는 껌이 포함돼 있다. 미국에서 처음 발명된 만큼 미국인이 껌을 좋아하는 측면도 있지만, 비상 전투식량으로 나름대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장점은 먼저 위생상 문제다. 전투 시에는 긴장감으로 입안에 박테리아가 증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양치질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때 껌을 씹으면 입안을 개운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구강 청결에 도움이 된다. 설탕이 들어 있어 열량 공급도 되고 긴장 해소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전투 스트레스를 날리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 껌을 전투식량에 포함시킨 배경이다. 다만 미군의 경우 껌은 야전에서만 허용된다. 평상시 제복을 착용한 상태에서 껌을 씹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민간인에게는 껌이 심심풀이 기호품이지만 군인에게는 전투수행에 필요해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추잉(chewing) 껌이 만들어진 것은 1870년대다. 미국의 토머스 애덤스가 멕시코 치클을 이용해 상업화했다. 토머스 애덤스는 껌 제조에 성공해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정작 껌 개발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은 따로 있었다. 멕시코의 장군 겸 총사령관과 대통령을 역임한 산타 아나(Santa Anna)다. 산타 아나가 껌 개발에 기여한 계기 역시 전쟁과 관련이 있다.

 산타 아나는 우리에게 낯설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고전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알라모(Alamo) 전투 당시 멕시코군 사령관이었다. 1936년의 알라모 전투는 텍사스 독립 전쟁 때 텍사스 군인과 주민이 멕시코 군대에 패해 전멸당한 전투다. 오직 주둔 군인의 아내와 아이, 그리고 노예 등 3명만이 살아남았다.

 약 한 달 후 벌어진 산 하신토 전투에서 “알라모를 기억하라”며 복수를 다짐한 텍사스 군은 멕시코 군대를 철저하게 짓밟았다. 수백 명의 전사자를 냈고 수백 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그중에는 사령관인 산타 아나도 있었다. 텍사스 군 지휘관이었던 샘 휴스턴 장군은 텍사스 독립을 보장받고 산타 아나 장군을 석방했다.

 알라모 전투를 비롯한 당시 전쟁으로 멕시코 연방에서 탈퇴한 텍사스는 독립했다. 그리고 약 10년 후인 1845년 미합중국의 28번째 주로 합병이 됐다. 하지만 텍사스를 원래 자기 영토라고 여겼던 멕시코가 합병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결국 이듬해인 1846년 발발한 전쟁이 멕시코-미국 전쟁이다. 이 전쟁을 지휘했던 멕시코군 총사령관 역시 산타 아나 장군이었다. 전쟁에 패한 멕시코는 영토의 약 절반을 잃었고 산타 아나 장군 역시 정적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쿠바로 망명했다.

 쿠바에서 살던 산타 아나는 이후 한때 적국으로 싸웠던 미국 뉴욕으로 망명지를 옮기고 멕시코로 돌아가기 위한 사업을 구상했다. 수차례 멕시코 대통령과 군 총사령관을 역임했던 산타 아나였지만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무력이 필요했고 군사력을 장악하기 위한 군자금 마련이 시급했다.

 이때 산타 아나가 구상했던 사업이 고무 대체 사업이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미와 남미에 풍부한 사포딜라 나무에 상처를 냈을 때 나오는 수액인 천연 치클을 이용해 고무나무의 수액을 굳혀 만드는 고무를 대체하자는 것이다. 1869년 산타 아나는 토머스 애덤스라는 미국 사업가와 손잡고 멕시코 천연 치클을 원료로 고무를 대체할 수 있는 합성수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에 따라 다량의 천연 치클을 수입했다.

 수차례 실험을 거쳤지만 결국에는 치클로 고무를 대체할 수 있는 합성수지를 개발하는 데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산타 아나는 1874년 멕시코 정부로부터 사면을 받고 거의 빈털터리가 된 상태로 멕시코로 돌아갔다. 그리고 2년 후 정치가로서 재기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편 산타 아나와 손잡고 대체 고무 개발에 몰두했던 미국인 사업가 토머스 애덤스 역시 사업 실패를 인정하고 원료인 치클을 강물에 쏟아버리려고 했다. 실행에 옮기기 직전,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용도를 찾았다. 약국으로 껌을 사러 온 소녀를 보고 고무를 대체할 합성수지 대신 치클을 이용해 씹는 껌을 만들면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이다.

 사실 치클로 대체 고무를 개발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고무처럼 딱딱하게 굳지 않고 적당히 물렁물렁한 상태로 굳는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고무바퀴 원료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지만 씹는 껌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1871년 껌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 특허를 받은 토머스 애덤스는 산타 아나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1톤가량의 치클로 씹는 껌을 만들었다. 오렌지 향을 첨가해 식후에 먹는 디저트로 껌을 개발하면서 아들과 함께 사업체를 세워 큰돈을 벌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치클 껌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얻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전투식량에 포함된다. 전쟁 중 미국 정부는 설탕 사용을 통제했지만, 군용 껌만큼은 설탕 첨가를 허용하면서 맛있는 미제 껌이 세계로 퍼지게 됐다. 평소 심심풀이 기호품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이런 껌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뜻밖에도 미국과 멕시코의 영토 갈등과 전쟁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