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비비 꼬였지만 잔치 때나 먹는 고급 과자

구름위 2017. 1. 1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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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꼬였지만 잔치 때나 먹는 고급 과자

꽈배기


광해군 재위기간 먹었던 마지막 음식

밀가루를 사람 모양으로 반죽 몸통은 비틀고

펄펄 끓는 기름통에 풍덩 간신 진회로 생각하고 분풀이

 

 

 

기사사진과 설명
꽈배기

꽈배기



 

 

기사사진과 설명
광해군은 반정 당일 꽈배기를 안주 삼아 대낮부터 술판을 벌여 반정을 자초했다. 남양주에 소재한 광해군 묘.

광해군은 반정 당일 꽈배기를 안주 삼아 대낮부터 술판을 벌여 반정을 자초했다. 남양주에 소재한 광해군 묘.



 

 

기사사진과 설명
꽈배기는 송나라의 간신 진회가 영웅 악비 장군을 모함해 죽이자 분노한 백성들이 진회에게 복수하기 위해 만든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항저우에 있는 악비 사당.

꽈배기는 송나라의 간신 진회가 영웅 악비 장군을 모함해 죽이자 분노한 백성들이 진회에게 복수하기 위해 만든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항저우에 있는 악비 사당.



 

 

 

 

 #지금으로부터 392년 전인 1623년은 광해군 즉위 15년째 되던 해다. 봄이 한창이던 이 해 음력 3월 12일 밤, 반정이 일어났다. 훗날 인조가 된 능양군이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서울 자하문인 창의문으로 쳐들어와 광해군을 왕좌에서 몰아냈다. 인조반정의 성공이다.

 광해군은 불과 몇 시간 후에 자신이 왕위에서 쫓겨나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광해군은 이날 낮을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반정 당일인 12일은 계절적으로 이맘때니 꽃이 활짝 피고 날씨도 따뜻했을 것이다. 광해군은 이날 오시(午時), 그러니까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창덕궁 어수당에서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어수당은 창덕궁 후원에 있었던 정자로 광해군은 총애하던 후궁인 김 상궁과 기생을 이곳에 불러놓고 대낮부터 질펀하게 술잔치를 벌였다.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광해군이 대낮부터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인조반정은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오늘 밤에 반정이 있을 것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낮술을 마신 광해군은 반역에 대한 정보를 무시했다. 광해군 옆자리에 앉아 유흥을 즐기던 김 상궁 역시 광해군이 몹시 취한 것을 보면서도 술과 안주를 권했는데 기록을 보면 이때 광해군이 먹었던 음식이 꽈배기였다. 이 과정에서 쿠데타에 대한 정보는 무시됐고 그 결과 꽈배기를 권했던 김 상궁은 이튿날 반군에게 잡혀 칼을 맞고 죽었다. 아직 술이 깨지 않은 광해군은 내시한테 업혀 도망가다 반군에게 사로잡혔다.

 임금으로서 광해군 최후의 모습을 묘사한 이 장면은 조선 시대 역사를 기록한 ‘조야집요(朝野輯要)’라는 책에 수록돼 있다. 기록에 의하면 광해군이 왕으로서 먹었던 마지막 음식이 마화병(麻花餠)인데 바로 꽈배기다. 광해군은 왜 마지막 잔치에서 아이들처럼 꽈배기를 먹었을까?

 지금은 꽈배기가 아이들 군것질 거리이고 간식에 지나지 않지만 17세기인 조선 중기에는 왕실에서 잔칫날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기록에는 꽈배기가 자주 보이지 않으니 아마 중국에서 전해진 식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인조반정이 성공한 이면에는 고급 수입과자를 먹으며 대낮부터 낮술에 빠져 반정의 정보마저 무시한 광해군의 방심이 있었다.

 


 #광해군한테 꽈배기가 한이 서린 음식이었다면 중국인들한테는 꽈배기가 화풀이의 대상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아침 식사로 꽈배기를 먹는다. 밀가루를 기름에 튀긴 꽈배기를 두유에 찍어 먹는데 빵처럼 겉은 파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것이 가벼운 아침 식사로 거뜬해서 출근길 거리에서 많이 먹는다. 중국말로는 유타오(油條)라고 하는데 유작회(油炸檜)라는 별명이 있다. 진회를 기름에 튀긴다는 뜻인데 이런 별명이 생긴 데는 유래가 있다.

 진회는 중국 송나라의 유명한 간신이다. 송나라 역사를 기록한 책인 ‘송사(宋史)’에 충신 악비 장군을 모함해 죽인 진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송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북방의 금나라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국력이 약해 자주 침략을 당하는 등 핍박을 받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을 피하려고 적국인 금나라에 금은보화를 가져다 바치며 평화를 구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나마 악비 장군이 있어 금나라에 점령당하지 않고 대항하며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권력이 흔들릴까 두려워한 간신 진회(秦檜)는 적국인 금나라와 내통하고 악비가 역모를 꾸몄다고 모함했다. “악비를 제거하지 않으면 영원한 평화는 없다”는 금나라 왕의 밀서에 동조해 반역의 죄를 씌워 살해했다.

 충신 악비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백성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간신 진회의 세도가 대단했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직접적인 복수를 할 수 없으니 간접적으로라도 화를 풀어야 했다.

 그래서 밀가루를 반죽해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몸통을 비틀었고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펄펄 끓는 기름통에 집어넣었다. 밀가루 반죽을 간신 진회로 생각하고 비틀어 기름에 던져 복수했다는 것이다. 꽈배기가 만들어진 유래다. 물론 역사책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사실(史實)이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미워서 고려의 수도였던 송도 사람들은 설날이면 가래떡을 이성계 몸통이라고 생각하고 비틀어 조랭이 떡을 만들었다고 한다. 꽈배기 이야기와 닮은꼴이다.

 우리가 그저 맛있게 먹는 간식인 꽈배기가 간신배에 저항하는 백성의 스트레스를 푸는 역할을 했고, 우리 역사에서도 광해군에게 방심의 빌미를 제공해 인조반정에 기여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