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1·2차 세계대전 승리로 이끈 영국의 ‘국민음식’

구름위 2017. 1. 14. 20:36
728x90

1·2차 세계대전 승리로 이끈 영국의 ‘국민음식’

피시 앤드 칩스


영국인 누구나 즐겨 먹는 대표음식

 

‘피시’라고 물으면 ‘칩스’로 대답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비공식 암호로 쓰이기도

 

 

기사사진과 설명
피시 앤드 칩스

피시 앤드 칩스



 

 

기사사진과 설명
피시 앤드 칩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식료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영국의 국민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식료품 구매를 위해 줄을 선 런던 시민.

피시 앤드 칩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식료품이 부족한 상황에서 영국의 국민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식료품 구매를 위해 줄을 선 런던 시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영국 축구선수 웨인 루니는 엄청난 부자다. 순수 연봉만 작년 기준으로 150억 원을 넘는다. 경기 출전 수당에 광고 수입까지 더하면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번다. 이런 부자인 웨인 루니가 2008년 결혼했을 때 피로연에 내놓은 음식 중 하나가 피시 앤드 칩스(fish & chips)였다. 생선튀김에 감자튀김을 더한 음식이다.

 한때 음악으로 세상을 흔들었고 지금은 전설로 남은 영국 그룹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는 채식주의자였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되기 전까지는 피시 앤드 칩스를 열정적으로 좋아했다.

 둘 다 엄청난 부자이면서도 비교적 값싼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에 푹 빠졌다는 사실이 의외라면 의외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둘 다 전형적인 영국인이고 피시 앤드 칩스가 영국의 대표적인 국민음식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는 음식이고 게다가 세계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생선과 감자튀김이 왜 영국을 대표하는 국민음식이 됐을까?

 여러 계기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배경이 된 것은 제1·2차 세계대전이다. 나라를 구한 영웅은 많다. 하지만 나라를 구한 음식은 흔치 않다. 영국인들은 피시 앤 칩스를 1·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영국을 구한 음식으로 꼽는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총리 처칠이 그렇게 말했고 영국인 모두가 공감했다.

 처칠은 피시 앤드 칩스야말로 영국 국민들이 전쟁을 함께 견디게 한 ‘훌륭한 동반자(good companions)’라고 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우라는 소리다.

 실제로 영국인들은 피시 앤드 칩스를 먹으며 전쟁의 고통을 이겨냈다. 영국은 섬이니만큼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물자를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그리고 독일 유보트가 영국으로 향하는 수송선단을 무차별 공격하면서 식료품 공급량이 전쟁 전의 30%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식료품이 배급제로 바뀌었다. 이때 생선과 감자는 배급품목 지정에서 제외된 몇 가지 안 되는 식품이었다. 상대적으로 공급 물량이 많기도 했고, 생선의 경우 배급제로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저장이 쉽지 않은 것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의 사기를 고려해서였다.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아도 후방에 남은 사람들 역시 어린이와 노약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탄약 생산 등을 위해 군수공장에서 일해야 했기에 충분한 칼로리의 음식이 필요했다. 이때 그 역할을 담당한 것이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이었고 이때부터 내각 수반인 총리부터 공장 노동자까지 국민 모두가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심지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피시 앤드 칩스가 영국군의 비공식 암호로 쓰였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연합군끼리도 뒤엉키고 피아가 제대로 식별이 안 되는 혼란의 와중에 “피시(fish)”라고 물으면 자동적으로 “칩스(chips)”라는 대답이 돌아와 영국군끼리는 서로 식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피시 앤드 칩스가 영국의 국민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이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하지만 영국인들 사이에 이 음식이 널리 퍼진 것은 훨씬 이전부터다.

 따지고 보면 피시 앤드 칩스의 뿌리는 영국이 아니다. 생선을 프라이팬에 튀기는 음식은 17세기 포르투갈에서 온 유대계 이민자가 퍼트렸다. 반면 감자튀김은 원래 벨기에에서 발달했던 음식으로 영국에서는 18세기에 벨기에 이민자가 처음 판매했다고 전해진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 피시 앤드 칩스가 됐는데 영국에서 이 음식이 유행한 계기를 만든 것은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의 결과 기계공업이 발달하면서 영국에서는 바다에서 그물을 끌어 생선을 잡는 트롤 어업이 도입됐다. 먼바다까지 나가 조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피시 앤드 칩스의 재료인 값싼 생선이 대량으로 공급됐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북해의 깊은 바다에서 트롤 어업에 종사하던 경험 많은 어부들이 영국 해군에 입대해 해군 전력 강화에 힘을 보탰다고 하니 피시 앤드 칩스가 이래저래 전쟁에 기여한 셈이다.

 기계화로 감자 생산이 증가하고 산업혁명의 결과 철도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피시 앤드 칩스는 영국 내에 널리 퍼지게 됐다. 감자와 대량으로 잡은 생선을 철도를 통해 면방직 공장이 밀집한 주요 도시로 신속하게 운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19세기 후반부터 피시 앤드 칩스는 영국 도시 노동자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의 조합이라는 음식의 구성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때까지만 해도 피시 앤드 칩스는 주로 공장 노동자들과 서민들이 먹는 음식이었다.

 이랬던 피시 앤드 칩스가 식료품이 부족해 전면적인 배급제가 실시된 1·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지위나 빈부귀천을 떠나 모두가 즐겨 먹는 영국의 국민음식으로 발돋움했다. 전형적인 영국 사람인 웨인 루니와 폴 매카트니가 피시 앤드 칩스를 좋아한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