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커피믹스 ‘참호 속의 작은 행복’
- 커피믹스
美 남북전쟁 때 커피는 전투력 높이는 ‘활력소’
북군서 인스턴트 커피 개발…최초의 커피믹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 병사들은 휴식을 취하며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필자 제공 |
요즘은 커피가 대세다. 한 집 건너 하나씩 커피 전문점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인은 밥보다 커피를 더 자주 먹는다는 최근의 조사
결과도 있다. “밥보다 커피”다.
예전에 우리 못지않게 커피에 목숨 걸었던 사람들이 있다. 1861년에 시작된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군인들이다. 남군과 북군 모두 마찬가지였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기회만 되면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전투력을 높이는 활력소였다.
커피를 충분히 보급받은 북군 병사는 커피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커피 끓일 시간이 없으면 원두라도 씹으며 행군했다.
한밤중 북군의 야영지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삼삼오오 커피 끓이느라 지핀 불 때문이었다.
남군은 처절하게 커피를 마셨다.
전쟁 시작과 함께 북군이 해안을 봉쇄하자 무기와 식량을 비롯한 전쟁물자 공급이 차단됐다. 커피도 품귀 현상을 빚었다. 전쟁 전 파운드당
20센트였던 커피 원두가 60달러로 치솟았다.
그 때문에 볶은 옥수수, 도토리, 고구마로 커피를 대체하려고 해봤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커피에 중독된 남군 병사 중에는 야전에서 개별적으로 북군에게 휴전하자고 소리친 후 남군의 담배와 북군의 커피를 교환하는 예도 종종
있었다. 목숨 걸고 커피를 마셨던 것이다.
남북전쟁 때 병사들이 커피에 목을 맨 것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먼저 남북전쟁은
장병들에게 커피를 제공한 거의 첫 번째 전쟁이다. 이전까지는 일정량의 럼주를 지급했지만, 술로 인한 사고가 늘어나자 술 보급을 중단하고 커피로
대신했다. 병사들 입장에서는 전쟁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식품이었다.
또 하나는 커피가 전선에서 병사들이 먹을 수 있는
가장 신선한 음식이었다. 당시 병사들의 식사는 소금에 절인 고기나 생선, 잘못 씹으면 치아가 부서질 정도로 단단한 하드태크라는 비스킷, 그리고
약간의 설탕과 소금뿐이었다. 그것도 부패한 군납업자들이 썩고 벌레 먹은 음식을 공급하기 일쑤였다.
반면 커피는 원두로 제공됐기에
악덕 군납업자가 장난칠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원두로 지급된 커피는 마시기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야전에서 커피를 갈아 가루로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뿐더러 커피를 끓여야 했으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번거롭기 그지없었다.
병사들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북군에서는 인스턴트
커피를 개발했다. 최초의 커피믹스다. 커피와 우유, 설탕을 진하게 농축시켜 끈적거리는 액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커피믹스를 깡통에 담아 가지고
다니다가 끓는 물에 타서 마시면 됐다.
하지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악덕 낙농업자들이 썩은
우유를 납품해 병사들이 설사에 시달렸다. 최초의 커피믹스는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사라졌다.
인스턴트 커피의 필요성이
제기된 건 남북전쟁이지만 널리 퍼진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다. 물에 녹는 커피 분말이 1901년에 발명됐다. 이 커피 분말을 응용해
1910년, 미국 초대 대통령과 이름이 같은 조지 워싱턴이 인스턴트 커피를 상업화시켰다. 커피를 끓일 때 주전자 주둥이에 커피가 엉겨 붙는 것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4년이 지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미국은 참전 군인에게 인스턴트 커피를 제공하려고
다량의 커피를 구매했다. 일설에는 독가스인 겨자가스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데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다만 당시
국방부인 전쟁부(War Dep.)에 커피 담당 부서(coffee section)가 따로 있었으니 미군이 전쟁 물자로 커피를 무척 중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선으로 보내진 인스턴트 커피는 병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추운 날씨에 진흙투성이 참호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간편하게 끓는 물에 타서 마시는 커피는 작은 행복이자 큰 위안이었다. 병사가 고향에 부친 편지에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참호 안은 쥐가 들끓고 진흙투성이입니다. 몹시 춥고 포탄 소리도 요란하지만 난 지금 행복합니다. 끓는 물만 있으면 1분
만에 커피를 타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밤마다 조지 워싱턴 씨가 건강하고 복 받으라고 기도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귀국한 병사들이 고향에서도 편리한 인스턴트 커피를 찾으면서 분말 커피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인스턴트 커피는 또 한번
비약적 발전을 한다.
미국은 전쟁 중 부상병 치료에 쓸 응급용 혈장을 냉동보관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도록 진공 상태에서 동결
건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로 혈장과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을 생산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더 이상 대량 생산이 필요 없게
됐다. 그래서 기술과 시설을 식품산업에 활용했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마시는 커피믹스다. 동결 건조한 커피 분말에 우유 분말, 설탕을 섞은
것이다.
커피믹스는 남북전쟁 때 첫선을 보인 이후 100년 동안 여러 차례의 전쟁에서 참호 속 병사들이 스트레스 속에서 찾았던
작은 행복과 위안이었다.
'전쟁..... > 전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美 남북전쟁 터지며 北군 주요 식량으로...애물단지서 愛물단지로 (0) | 2017.01.14 |
---|---|
오랑캐의 떡…훌륭한 전투식량이자 귀한 음식’ (0) | 2017.01.14 |
못나서 버린 아귀 6·25때 피란민 배고픔 해결 (0) | 2017.01.14 |
와인 나라 프랑스, 휴대 편한 전투식량으로 개발 (0) | 2017.01.14 |
감자 칩 - 탄생 배경은 식당 주인의 분풀이 때문? (0) | 2017.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