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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떡…훌륭한 전투식량이자 귀한 음식’

구름위 2017. 1. 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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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의 떡…훌륭한 전투식량이자 귀한 음식’

호떡


한나라에 귀화한 흉노의 왕자 김일제가 처음 전해

임오군란·청일전쟁·국공내전 통해 한국에 전파

 

 

 

기사사진과 설명
청일전쟁 당시 인천 모습. 이 무렵 중국인들이 한반도로 건너와 호떡집을 열었다.
필자 제공

청일전쟁 당시 인천 모습. 이 무렵 중국인들이 한반도로 건너와 호떡집을 열었다. 필자 제공



 

 

    겨울철 간식으로 호떡을 빼놓을 수 없다. 값이 저렴한 데다 맛까지 좋아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인기가 높지만, 호떡이 우리 입으로 들어오기까지에는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이 적지 않다.

 우선 호떡의 정체다. 호떡은 우리 전통음식이 아니라 근대에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름 자체가 오랑캐 호(胡)자를 써서 호떡이니 중국 오랑캐들이 먹는 떡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대에 중국에서 전해져 퍼진 것은 맞지만, 중국 오랑캐들이 먹던 떡이기 때문에 호떡이라는 말은 틀렸다.

 호떡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크게 유행한 것은 1920년대다. 당시 통계를 보면 서울에 설렁탕집은 100곳이었던 반면 호떡집은 150곳이 넘었다. 우리 전통 음식점보다도 호떡집이 더 많았을 정도다.

 부산하고 소란스러운 것을 의미하는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표현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호떡집이 많았으니 화재도 잦았다. 1920년대 신문에는 호떡집에 불났다는 사회면 기사가 많다. “?라?라” 그렇지 않아도 시끄럽다는 중국인인데 불이 났으니 얼마나 요란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말에는 부정적 느낌이 강하다. 역시 1920년대 신문 기사에서 이유를 추정할 수 있다. 사건사고 기사에 호떡집이 자주 등장한다. 겉으로는 호떡을 팔지만 내부는 은밀하게 마약거래·인신매매와 같은 범죄와 연결돼 있었다. 호떡집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동아시아의 시대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구한말 임오군란과 청일전쟁을 계기로 청나라 상인과 노동자들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그리고 1920년대에는 중국 국공내전을 피해 중국인들이 건너왔다.

    정리하자면 일제 강점기에 중국인들이 건너와 호떡집을 운영하면서 한국인을 상대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이들은 배타적이면서 돈을 무기로 범죄행위도 많이 저질렀다.

   우리로서는 이러한 호떡집의 중국 주인이 곱게 보일 까닭이 없다.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표현에는 시대상황이 만들어 낸 민족감정이 깃들어 있다.

 따지고 보면 호떡은 전쟁이 퍼트린 음식이다. 호떡은 우리 전통 음식이 아니지만 중국 고유의 음식도 아니다. 옛날 서역이라고 불렸던 지금의 중앙아시아에서 전해졌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오랑캐의 떡이라는 뜻으로 후삥(胡餠), 즉 호떡이라고 부른다.

 중국 문헌 ‘야항선(夜航船)’에는 한나라에 귀화한 흉노의 왕자 김일제가 호떡 만드는 법을 처음 전했다고 나온다. ‘밤에 항해하는 배’라는 뜻의 이 책은 제목만 보면 소설책 같지만, 사실은 역사적 사실을 모아놓은 백과사전 종류의 문헌이다.

 기원전 2세기, 한무제가 표기장군 곽거병에게 기병 1만 명을 주면서 북방의 흉노 정벌을 명령했다. 춘추전국시대 흉노는 틈만 나면 중원의 여러 나라를 공격했는데 이때 이들의 침입을 막으려고 쌓은 성이 만리장성의 기원이다. 

   곽거병은 북방 사막을 넘어 1000리 길을 달려 흉노를 공격했는데 김일제는 이때 흉노가 내분되면서 부친이 계략에 걸려 사망하자 한나라로 귀화해 벼슬을 했다.

 역사책에 김일제가 처음 호떡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는 것은 호떡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호떡이 간식에 지나지 않지만, 옛날에는 왕과 귀족들이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요긴한 전투식량이기도 했는데 흉노 왕자가 처음 호떡을 만들었다는 기록은 한나라가 적의 음식을 응용해 전투식량으로 활용했다는 뜻일 것이다. 당시 기준으로 호떡은 어떤 음식보다 훌륭한 전투식량이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역사책인 ‘영웅기(英雄記)’에는 삼국시대 여포의 군대가 호떡을 먹으며 조조와 맞섰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포가 군량이 떨어져 병사를 이끌고 어느 마을에 주둔했다. 그러자 이 마을의 유지가 여포를 환영하며 소를 잡고 호떡 1만 장을 만들어 여포의 군대를 먹였다고 나온다.

 왜 하필 준비한 음식이 호떡이었을까 싶지만, 호떡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니 삼국시대인 3세기 무렵을 기준으로 보면 엄청 귀한 음식이었다.

   비슷한 시기 한나라 황제였던 영제(靈帝)가 북방 음식을 좋아해서 매일 호떡을 먹었다니 황제와 맞먹는 음식이 장병들에게 특식으로 지급됐던 것이다.

 게다가 삼국시대는 제갈공명이 만두를 만들어 제사를 지낸 이야기가 삼국지에 등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만두가 처음 생겨날 무렵이다.

   당시 대부분의 중국 음식은 만두처럼 끓이거나 쪄서 조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에 호떡은 화덕에 구워서 만드니 휴대가 간편했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다. 그래서 전투를 하는 부대에서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귀화한 흉노 왕자 김일제가 만들었다는 호떡이 금세 전쟁에 활용된 배경일 것이다.

 흉노족의 고급음식 호떡이 우리의 간식으로 변신한 이면에는 2000년에 걸친 아시아의 전쟁 역사가 있었다. 전쟁사는 파괴의 역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와 문화 교류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