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와인 나라 프랑스, 휴대 편한 전투식량으로 개발

구름위 2017. 1. 14. 19:13
728x90

와인 나라 프랑스, 휴대 편한 전투식량으로 개발

포도주 젤리


포도주 수분 증발시킨 젤리 형태로…파병부대 보급

적진에 떨어뜨린 ‘비노젤’ 회수작전에 지원자 쇄도

 

기사사진과 설명

포도주 젤리가 개발되기 전,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병사에게 보급한 포도주 통.



 

기사사진과 설명
프랑스군은 베트남군과 싸운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 포도주를 젤리 형태로만들어 전투식량으로 지급했다. 사진은 디엔 비엔 푸 진지의 프랑스군. 필자 제공

프랑스군은 베트남군과 싸운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 포도주를 젤리 형태로만들어 전투식량으로 지급했다. 사진은 디엔 비엔 푸 진지의 프랑스군. 필자 제공



 

 

   “신은 물을 만들고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God made only water, but man made wine).”

 ‘레미제라블’ ‘노트르담의 꼽추’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한 말이다. 프랑스 사람의 포도주 사랑, 심지어 포도주에 대한 자부심까지 엿볼 수 있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와인은 술이 아니다. 식사에 빼놓아서는 안 되는 음료이자 자연스러운 프랑스의 음식문화 그 자체다.

 프랑스 군인도 마찬가지다. 평소 포도주를 곁들인 식사에 익숙한 프랑스 사람들인 만큼 군에 입대해도 포도주와 함께하는 식사를 해야 만족스럽다. 포도주 없는 식사는 입가심 못한 것처럼 허전하다. 월남전 초기, 김치를 먹지 못해 힘들어했던 한국군과 비슷하다. 우리는 그래서 김치 통조림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육군 역시 포도주 때문에 꽤 고민했다. 평소에는 별문제가 없다. 주둔지에서는 필요하면 포도주를 병째 보급하면 된다. 하지만 야전에서는 다르다. 전쟁터에서 포도주 병을 들고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도주 통조림을 만들 수도 없다. 그까짓 포도주 마시지 않으면 그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한국군에게 김치 없이 버티라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사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군 병참사령부에서 전투식량용 포도주를 개발했다. 비노젤(vinogel)이다. 프랑스어로 ‘포도주’와 반고체 상태를 뜻하는 ‘젤’을 합쳐 만든 합성어다. 비노젤은 붉은색 포도주에서 수분을 증발시켜 만든다. 알코올 레벨은 유지하면서 부피를 3분의 1로 줄였다. 휴대가 편리해 작전을 나갈 때도 다른 전투식량과 함께 갖고 다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포장용기가 파손돼도 액체 포도주와 달리 줄줄 새지 않는다.

 비노젤, 즉 포도주 젤리와 물을 1 대 2의 비율로 혼합하면 평소 식사 때 마시는 포도주처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다수의 병사들은 비노젤과 물을 1 대 1의 비율로 혼합하거나 물을 섞지 않고 비노젤을 녹여 그대로 마셨다고 한다. 그러면 식사할 때 곁들이는 포도주가 아니라 술처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군에서는 1960년대까지 비노젤을 주로 해외 전쟁지역에 파견된 부대에 전투식량으로 보급했다. 당시 군 생활을 했던 프랑스 노병들은 포도주 젤리를 가장 기억에 남는 군대 음식으로 꼽는다. 맛이 사회에서 마시는 포도주만 못하지만 적포도주 특유의 떫은맛은 살아있어서 알코올 섞인 감 주스를 마시는 기분이었다는 회고도 있다.

 비노젤은 병사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였다. 프랑스 병사들은 비노젤을 유용하게 활용했다. 특히 1950년대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벌어진 프랑스군의 마지막 전투인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 비노젤이 효과를 발휘했다.

 디엔 비엔 푸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베트남이 독립을 선언하자 프랑스가 베트남 독립 혁명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프랑스 외인부대를 중심으로 한 진압부대를 파병하면서 발생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진주한 프랑스군 총사령관 앙리 나바르 장군은 월맹으로 알려진 베트남군 주력을 유인해 격파하기 위해 베트남 북서부 라오스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인 디엔 비엔 푸에 프랑스군 외인부대와 공수부대 등 정예부대를 공중으로 침투시켰다. 베트남군으로 둘러싸인 한복판에 진지를 구축한 후 공격해 오는 적군을 우세한 공군 전력과 화력으로 섬멸하려는 미끼 작전이었다. 이른바 달려드는 적에게 상처를 입히는 고슴도치(Hedgehog) 작전 개념이다.

 그러나 베트남군의 전력은 예상 외로 강했다. 디엔 비엔 푸에 투하된 프랑스군은 철저하게 포위된 채 고립됐다. 탄약과 식량, 의약품이 모두 떨어졌고 마실 물조차 없었다. 할 수 없이 흙탕물이 흐르는 강에서 물을 떠 진흙을 가라앉힌 후 마셔야 했다. 병사들은 이때 간신히 진흙만 걸러낸 강물에 비노젤을 혼합해 포도주처럼 마시면서 음료수 문제를 해결했다.

 포위돼 고전하는 와중에 비노젤이 적게나마 프랑스군 외인부대의 사기를 올리는 데 기여한 적도 있다. 어느 날 공중에서 보급품이 낙하산으로 투하됐는데 그중엔 비노젤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비노젤이 베트남군 지역 한복판에 떨어진 것이다. 그날은 마침 부대 전승기념일이었다. 120여 년 전 멕시코 전쟁에서 그 외인부대는 65명의 중대원이 2000명의 멕시코군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뒀다.

 비록 한 치 앞의 운명도 모르는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그런 때일수록 사기를 높여야 했다. 대대장은 부대 전승기념일을 축하하기로 했다. 그런 자리에 포도주가 빠질 수 없었다. 그래서 적진에 떨어진 포도주 젤리, 비노젤을 회수해 오기 위해 특공대를 조직했는데 지원자가 넘쳐났다는 이야기가 디엔 비엔 푸 전투를 회고한 책(제목 military bluders)에 기록돼 있다. 아주 작은 포도주 젤리 하나가 부대원의 사기를 좌우했던 것이다.

 참고로 디엔 비엔 푸는 결국 1954년 5월 7일, 베트남군에 함락됐다. 그리고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