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탄생 배경은 일본군 각기병 예방 위해 개발

구름위 2017. 1. 1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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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배경은 일본군 각기병 예방 위해 개발

카레라이스


해군 급식 모방쌀밥에 어울리게 메뉴 개량

해군, 잡곡밥 싫은 병사들 위해 카레 만들어

 

 

 

기사사진과 설명
카레라이스는 옛 일본 해군이 청일전쟁·러일전쟁 당시 병사의 각기병 예방을 위해 만들었다. 사진은 카레라이스의 본고장이라는 일본의 요코스카 해군기지.  필자 제공

카레라이스는 옛 일본 해군이 청일전쟁·러일전쟁 당시 병사의 각기병 예방을 위해 만들었다. 사진은 카레라이스의 본고장이라는 일본의 요코스카 해군기지. 필자 제공



기사사진과 설명
카레라이스

카레라이스



 

 

 

 

우리가 먹는 카레라이스는 본고장 인도의 커리(Curry)와는 많이 다르다. 일본에서 발전했다. 제국주의 일본 해군이 만들어 퍼트렸다.

다른 음식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카레라이스를 병사들의 메뉴로 채택했을까? 카레라이스를 통해 제국주의 일본이 군대를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육성했는지를 알 수 있다.

19세기 말, 일본 농촌에서는 쌀밥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농부들은 주로 보리밥 등의 잡곡밥을 먹었고, 속된 말로 뼈 빠지게 일해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시 일본 농촌 사람들의 꿈은 흰 쌀밥을 원 없이 먹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원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도시로 가서 공장에 취직하거나 막노동을 해봤자 농촌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었다. 다만 젊은 남자라면 또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 군에 입대하면 됐다. 군대에 가면 쌀밥만큼은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1894년 청일전쟁 때 병사의 식사규정은 일인당 쌀밥 900g이었다. 하루 세 끼 쌀밥으로만 실컷 먹고도 남는 분량이다. 이렇게 입대하면 시골에서는 구경도 하기 어려운, 잡곡 한 톨 섞이지 않은 흰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기에 가난한 농촌 청년들에게 군대는 매력 있는 집단이 됐다.

그런데 병사들이 고향인 농촌에서는 먹어보지 못했던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게 문제가 됐다.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러일전쟁 무렵 일본군은 각기병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일본인은 쌀밥만 있으면 단무지 한 조각, 간장 한 종지를 반찬 삼아 밥을 먹는다. 각기병은 비타민 B1 부족으로 생기는데 맨쌀밥만 먹을 때 잘 발병한다. 고기나 채소 등 반찬과 함께 먹으면 문제가 없다. 당시 일본군에 각기병이 유행했다는 것은 쌀밥을 그만큼 많이 먹었다는 뜻이다.

육군과 해군이 경쟁적으로 각기병의 원인을 찾다가 해군 군의관 다카기 가네히로(高木兼寬)가 먼저 쌀밥에 부족한 비타민 B1이 발병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쌀밥과 함께 반찬으로 고기를 먹거나, 아니면 서양의 해군 수병처럼 빵과 수프를 먹거나, 그도 아니면 보리밥이나 현미밥 같은 잡곡밥을 먹으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일이었다.

손바닥 뒤집기처럼 간단히 해결될 것 같았지만, 병사들이 크게 반발했다. 식사 때 고기를 지급해도 병사들이 좋아하지 않았다. 일본은 7세기 무렵부터 19세기 말, 20세기 초 메이지 유신이 시작될 때까지 1200년 동안 육식을 금했던 나라다. 돼지고기는 물론 닭고기·쇠고기에도 거부감을 느꼈다. 조선의 선비가 상투를 자르라는 단발령에 반발했던 것처럼 일본인들은 고기를 먹으라는 일왕의 명령에 저항했다. 게다가 예산 때문에 매일 고기를 지급할 수도 없었다.

한때 유럽 군대처럼 일본 해군에서도 빵과 수프를 지급한 적이 있었는데 병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일본에서 빵은 간식이지 절대 밥 대신 먹는 식사가 아니었다. 잡곡을 먹으면 됐지만, 이 경우에도 병사들의 불평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입대하면 쌀밥을 먹여준다기에 기꺼이 군에 들어왔는데 고향에서 지긋지긋하게 먹었던 보리밥이 웬 말이냐는 것이다. 식사를 잡곡밥으로 바꿨다가는 농어촌 청년들에게 군의 인기가 추락할 판이었다.

군 당국은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졌다. 계속 쌀밥을 배식하자니 각기병이 문제가 되고, 쌀밥을 대체할 음식으로 고기, 빵과 수프, 잡곡밥을 배식해도 병사들이 싫어해 사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해군이 먼저 해결책을 찾았다. 1902년 영일동맹 체결 이후 양국 해군은 서로 군사교류를 해 왔는데 영국 해군이 함정에서 먹는 커리 수프에 주목한 것이다. 커리는 인도인들이 즐기는 향신료지만 18세기 영국 해군에서 함상용 식량으로 개량했다. 항해 중 수병들이 먹는 쇠고기 수프에 들어가는 우유가 쉽게 상했기 때문에 자극성이 강한 향신료인 커리를 넣어 보존성을 높였다. 이후 영국 해군에서는 쇠고기 커리 수프와 빵이 장교와 병사 가릴 것 없이 모두 좋아하는 메뉴로 정착됐다.

영국 해군의 커리 수프를 일본 해군에 도입했지만, 초기에는 인기가 없었다. 국처럼 떠먹는 커리 수프는 밥과 어울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빵을 지급하자니 반발이 심했다. 결국 개량을 거듭한 끝에 강황 등의 커리 분말에다 밀가루 전분을 섞은 지금과 같은 카레를 만들었다.

영국식 수프와 달리 걸쭉해서 쌀밥에 얹어 먹을 수 있는 데다 쌀밥과 궁합이 맞았다. 흔들리는 함정에서 엎지르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무엇보다 비타민 B1이 다량 함유된 밀가루를 섞었기 때문에 병사들이 싫어하는 잡곡을 섞거나 특별히 반찬을 따로 먹지 않아도 각기병 문제가 해결됐다.

결국 제국주의 일본 해군이 1908년 해군조리술참고서(海軍割烹術參考書), 1910년 육군이 군대조리법(軍隊調理法)을 배포하면서 카레라이스가 널리 보급됐다. 카레라이스에 감춰져있는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