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1차·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식량으로 보급
정어리 어획량 줄면서 참치 통조림 개발해 팔아
‘바다의 닭고기’라 불리며 인기 식품으로 급부상
미국샌디에이고에서정어리어획이줄어들면서참치를이용한통조림이만들어졌다.사진은 1940년대 미국 샌디에이고의 참치 통조림 생산 공장. 필자 제공 |
혹시 참치 좋아하시는지? 청소년들은 대체로 참치 통조림을 좋아한다. 참치에 밥 비벼 먹고 라면에도 넣는다. 군 생활 중에는 크래커에
참치를 올려놓은 참치 카나페가 별미다. 중장년은 참치회를 즐겨 먹는다. 특히 참치 뱃살은 고소하고 기름진 맛 덕분에 다른 참치 부위에 비해 몇
배 더 비싸다. 이렇게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참치를 좋아한다.
우리보다 참치를 더 잘 먹는 나라가 일본이다. 그런데
일본엔 이상한 속담이 있다. “고양이가 뛰어넘는다(猫跨ぎ)”라는 표현이다. 고양이가 참치를 외면한 채 뛰어넘는다는 뜻으로 쓸모없는 물건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생선이다. 그런데 참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친다는 것이다. 참치를 제일 좋아하는 일본에서 왜
그런 표현이 생겼을까?
또 다른 이야기.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 신문에 낯선 광고가 실렸다. “영국에서 예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 맛있는 살코기로 부드러운 닭고기 같은 맛….”
참치 광고다. ‘바다의 닭고기’라는 설명과 함께 예전
영국에서는 먹을 수 없었던 새로운 음식이라는 것인데 영국인들은 예전에 참치를 먹지 않았던 것일까?
일본 속담과 영국 광고에는 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 지금 일본에서 참치는 고급 생선이다. 하지만 18세기까지만 해도 일본인은 참치를 먹지 않았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참치를
먹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싸구려 생선이었다. 영국도 비슷했다. 예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맛이라고 광고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못 먹은 것이 아니라
안 먹은 것이었다. 참치는 이렇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에서 모두 외면당했다.
100년 전 사람들은 왜
맛있는 참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일까? 잡히기도 많이 잡혔지만 먹을 수가 없는 생선이었기 때문이다. 참치는 살에 혈액이 많아서 쉽게
부패한다. 그 때문에 운송과 보관이 쉽지 않았던 옛날, 참치를 잡아 항구로 가져와 봐야 먹기 힘들 정도로 상하기 일쑤였다. 그러니 고양이마저
외면했던 것이다.
이랬던 참치에 변화가 생긴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약 10년 전인 1903년이었다. 현재 미국
해군기지가 있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샌디에이고는 예전에 정어리 어업의 중심지였다. 정어리가 엄청나게 잡혔던 만큼 통조림 공장이 즐비했는데
1903년부터 갑자기 정어리 떼가 사라지면서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 통조림 공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정어리들이
사라졌으니 잔뜩 쌓아둔 통조림 깡통을 모두 폐기처분해야 할 판이었다.
고민에 빠진 정어리 통조림 공장 사장이 대안을 생각해냈다.
정어리 대신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먹지 않았던 참치를 조리해 통조림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든 참치 통조림은 첫해 겨우
700개 팔렸다, 하지만 해마다 참치 통조림 판매량은 조금씩 늘었고 사람들 역시 참치의 담백한 맛에 익숙해져갔다.
1914년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전화에 휩싸인 유럽 각국은 앞다퉈 미국에서 참치 통조림을 수입해 갔다. 쇠고기나 닭고기
못지않게 단백질이 풍부하면서도 어떤 고기나 생선 통조림보다 값이 저렴했기에 전시 유럽에서 참치 통조림은 식량대체품으로 인기였다. 게다가 배급
품목에서 제외됐기에 바다의 닭고기라며 판촉 경쟁까지 벌였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첫해인 1914년 미국에서 한 해 동안 생산한
참치 통조림은 32만 개였다. 통조림 생산 첫해 겨우 700개가 팔렸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양이다. 3년 후인 1917년 미국이 유럽 전쟁에
참전했을 때는 생산량이 70만 개로 늘어났다. 1917년 남부 캘리포니아의 참치 통조림 공장이 연초 22개에서 연말에는 36개로 증가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참치는 일본에서 퍼트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참치 통조림은 미국에서 발달했고, 제1차 세계대전 때 유럽에서
바다의 닭고기라는 별명으로 널리 퍼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참치는 주로 통조림으로 먹었다. 값이 저렴했기에 2차 대전 때 미군은
물론 일본군과 독일군, 호주군까지 모두 참치 통조림을 전투식량으로 지급했다.
참치가 고급 생선으로 둔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일본에서였다. 전후 일본에서는 참치회와 참치초밥이 유행했다. 그동안 외면 받던 참치가 인기를 얻게 된 배경으로는 냉동보관 기술의 발달과
일본인의 입맛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전후 미군이 진주하면서 기름진 스테이크에 입맛을 들였고 그 영향으로 맛이 쇠고기와 비슷한
참치의 인기가 높아졌다. 일본에서 참치 수요가 크게 늘고 70·80년대 일본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계적으로도 참치초밥과 참치회, 참치스테이크가
유행하게 됐다. 참치는 이렇게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으로 궁핍했던 시절 재발견을 통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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