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신<君臣> 간 신뢰는 보리밥 한 그릇이면 충분
- 보리밥
후한 광무제와 풍이 장군을 이어준 보리밥
한신이 유방에게 충성한 까닭도 밥 한 그릇
후한 광무제. 필자제공 |
한신 동상. 필자제공 |
옛날 천하의 명장들이 주군에게 충성을 다했던 것은 대단한 보상 때문이 아니었다. 밥 한 그릇, 음식 한 접시가 계기가 돼 장군은 주군을
따랐고 임금은 신하를 잊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 후한 광무제와 풍이 장군이 그 예다.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나라는 진시황이 죽은 후 멸망했고 천하가 다시 어지러워진다. 이때 유방이 군사를 일으켜 항우와 싸움을 벌여 이긴 후 설립한 나라가
한나라다.
흔히 전한(前漢)이라고 하는데 건국 후 약 200년이 지난 서기 9년, 황태후의 조카이자 재상이었던 왕망이 황제를
폐위하고 국호를 신(新)으로 정한 후 스스로 황제가 되었지만, 재위 14년 만인 서기 23년, 유수와의 전쟁에서 패했다. 왕망은 살해당하고
신나라는 멸망했다.
유수는 유방의 후손으로 황제가 돼 광무제라고 칭했는데 그가 다시 세운 한나라가 전한의 뒤를 이은
후한이다.
나라를 되찾기 전, 광무제 유수는 세력이 약해 역적인 왕망에게 쫓겨 다니며 갖은 고초를 겪었다. 쫓기던 유수가
무루정이라는 곳에 도착했지만, 날씨는 춥고 먹을 것은 떨어져 군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유수 자신도 배가 고파 주저앉을 지경이었는데 신하인
풍이(馮異)가 팥죽을 구해와 간신히 허기를 면하고 이동했다.
이어 ‘호타하’라는 강가에 이르렀을 때는 바람이 크게 불고 비가
몰아쳐 어려움을 겪자 풍이가 장작을 구해 불을 지피고 배를 곯고 있는 유수를 위해 어느 곳에선가 보리밥을 가져와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보리밥 한 그릇에 기운을 차린 유수는 덕분에 호타하를 건널 수 있었고 군사를 이끌고 왕망과 접전을 벌여 승리함으로써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풍이는 원래 왕망의 부하였지만 유수에게 사로잡혀 투항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적장 출신인 셈인데 유수는 한번
믿음을 준 풍이를 철저히 신임했다. 황제가 된 후 관중(關中) 땅을 지키느라고 황제의 곁에 있지 않은 풍이를 누군가 모함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자 광무제는 아예 상소문을 풍이에게 보내줘 신임을 과시한다.
유수가 황제가 된 후 6년이 지나 관중에 있던 풍이가 황제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그러자 광무제는 모든 신하를 모아 잔치를 베풀고 “창졸간에 대접받았던 무루정의 팥죽과 호타하의 보리밥에 대한 고마움을 오랫동안
보답하지 못했다”며 큰 상을 내렸다.
그러자 풍이 역시 “신은 폐하께서 그동안 겪었던 고생을 잊지 마시기를 바라며 신 역시
폐하께서 구해주셨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후한서(後漢書) 풍이(馮異)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호타하의 보리밥은 충성의
표상이면서 임금이 신하의 충성을 잊지 않고 보답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또 다른 예도 있다. 눈칫밥을 먹으며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았던 한신은 유방을 만나 그를 도와 천하를 통일한다.
유방의 대장군인 한신과 맞서는 제나라를 도우려고 항우가 20만 대군을
보냈지만 한신은 이를 대파하고 제왕(齊王)에 봉해졌다.
한신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낀 항우는 무섭이라는 사신을 보내 한신을
포섭했다. 유방으로부터 독립해 항우의 초, 유방의 한, 그리고 한신의 제, 세 나라로 천하를 삼분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자 한신이 이렇게
말하며 거절했다.
“내가 항우를 섬길 때는 벼슬이 낭장에 불과해 겨우 창을 들고 문지기 노릇을 했소. 그래서 한나라로 귀순했는데
유방은 내게 장군의 허리띠를 내리고 수만의 병력을 맡겼으며 자기 옷을 벗어 내게 입혔고 자기 밥을 나눠주었으며, 내 계책을 받아주었소. 그래서
내가 지금에 이르렀소. 남이 나를 깊이 신뢰하는데 내가 먼저 배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니 죽더라도 그 뜻을 바꿀 수
없소.”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 열전에 실린 이야기다. 자기 옷을 벗어주고 자기 밥을 나누어줄 정도로 각별하게 챙기는 것을
해의추식(解衣推食)이라고 하는데 한신의 충성도 밥 한 그릇, 옷 한 벌에서 비롯됐다.
중국의 전국시대 때 위(衛)나라의 자사가
임금에게 “능히 500기의 전차부대를 통솔할 수 있는 장군”이라며 구변(苟變)이라는 장수를 추천했다. 그러자 위나라 임금은 구변이 장수감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가 하급 관리로 있을 때 계란 두 개를 뇌물로 받은 일이 있다며 청렴한 장수가 아니라고 난색을 표했다.
이에
자사가 “사람을 등용하는 법은 목수가 나무를 고르는 것과 같습니다. 장점만 취하고 단점은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아름드리 나무라면 설사
가지가 썩어 있더라도 솜씨 좋은 목수는 절대 그 나무를 버리지 않는 법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전쟁의 시대에 처해 능력 있는 장수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달걀 두 개 때문에 나라를 지킬 훌륭한 장수를 버리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에 소문이 나면 큰일 날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라를 지키는 믿음직한 장수라는 뜻의 간성지장(干城之將)이라는 말이 여기서 생겼다.
주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알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리더의 덕목이고 보리밥 한 그릇에 담긴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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