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을 피해 살아남은 것은 농어회 덕분?
- 농어회
진나라 재상 장한, 농어회 먹겠다며 사표던지고 낙향
내전에 이민족 끌어들인 중국…5호16국 시대로 혼란
7월 농어는 바라보기만 해도 보약이 된다는 말이 있다. 순챗국과 농어회라는 뜻의 ‘순갱노회(蓴羹?膾)’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을 이를
때 쓰는 성어다. 4세기 중국 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장한이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먹고 싶다며 벼슬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에서
비롯됐다.
장한은 떠밀려 진나라 재상에 임명됐다. 그는 친구에게 “세상이 어지러워 난리가 끊이지 않는데 벼슬에서 물러나기가 쉽지
않다”면서 인생살이 마음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어찌 그까짓 벼슬에 연연하겠느냐면서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다 농어가 많이
잡히는 계절이 되자 고향의 농어회를 먹겠다며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순갱노회라는 말은 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인생을 자신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배경을 들여다보면 그 이상의
의미가 함축돼 있다. 벼슬도 마다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낭만이나 인생을 초연하게 바라보는 달관의 경지와는 거리가
멀다.
‘순갱노회’ 고사는 전쟁 때문에 생겨났으며 병법서 삼십육계(三十六計)의 첫째 계책인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를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확한 상황판단과 적절한 수단, 최적의 타이밍을 택한 결과다.
진나라는 서기 265년
삼국지에 나오는 사마중달의 후손 사마염이 당시 임금이었던 조조의 후손 조환을 몰아내고 세운 나라다. 사마염이 죽자 진나라 역시 후손인 여덟
왕자가 왕권을 두고 다투면서 내전이 벌어진다. 순갱노회는 이 과정에서 나온 고사다.
황제 자리를 놓고 암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장한의 주군으로 제나라 제후였던 사마경이 실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장한을 재상에 임명한다. 사마경은 폭군인 데다 인심도 잃었기에 권력이
불안정했다. 그 때문에 폭군에 의해 내키지 않은 자리에 앉게 된 장한은 위기를 벗어날 궁리를 하며 친구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지금 천하는 어지럽고 전쟁은 그칠 줄 모르는데 자네는 명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니 정계를 떠나고 싶어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본래 자연에서 사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으로 어지러운 세상일에는 관심이 없으니 곧 기회를 봐서 물러날 생각이다. 자네 역시 분명하게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잘 헤아려서 처신하기 바란다.”
그리고 곧 농어회와 순챗국을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머지않아 다른 왕자들이 세력을 모아 장한의 주군 사마경에게 반기를 들었다. 내전에서 패한 사마경은 죽임을 당했고 측근인 신하들 역시 모조리
죽음을 면치 못했다. 다만 장한만이 정세를 정확히 판단해 재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때맞춰 물러났기에 재난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장한이 그리워했다는 고향의 농어회가 얼마나 맛이 좋았기에 농어를 핑계로 낸 사표가 수리된 것일까? 먼저 장한의 고향은
송강(松江)이 흐르는 오군(吳郡)으로 지금의 중국 쑤저우(蘇州) 부근이다.
농어는 요즘이 제철이다. 여름 농어는 단백질 함량이
높아 보양식으로 꼽는다. 반면 중국은 가을 농어를 최고로 치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송강 농어를 으뜸으로 여긴다.
송강에서 잡히는
농어는 황하의 잉어, 양쯔 강의 시어, 헤이룽 강의 연어와 함께 옛날부터 중국의 4대 생선으로 꼽혔다. 송강 농어로 회를 뜨면 육질이 눈처럼
하얀 데다 입에 넣으면 오래도록 입 안에 향기가 돈다고 할 정도였다. 이런 농어회 중에서도 또 최고는 6세기 수양제가 먹었다는
금제옥회(?玉膾)다. 천하를 통일한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망하기 전, 수도인 장안을 떠나 남쪽 지방을 순시했는데 황제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관리가 송강에서 농어를 잡아 회를 뜨고 곁들여 먹는 야채 장을 만들어 황제에게 바쳤다.
금제옥회라는 이름은 양념장(?)이
금처럼 빛나고, 회로 뜬 농어의 살이 옥처럼 하얗다(玉膾)고 해서 생겼다. 참고로 금제라는 양념장을 만드는 방법이 고문서에 나오는데 귤 껍질을
짓이겨서 마늘·생강 등과 버무려 만든다.
이렇게 유명한 요리였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농어회를 먹겠다고 벼슬을 버려도 용납이 됐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장한이 떠나온 진나라 조정은 어떻게 변했을까? 여덟 왕의 내전이 지속되면서 각각의 왕들은 자신의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주변의
흉노족과 선비족 등 이민족을 용병으로 고용했다. 내전은 끝났지만, 북방의 흉노족과 선비족은 강력하다고 생각했던 중원 한족의 실체를 파악하게
됐다. 무기력한 진나라의 실체와 약점을 알게 된 북방의 유목민족이 남쪽으로 치고 내려오면서 결국 진나라는 망하고 북방 유목민족과 한족이 각축전을
벌이는 5호16국 시대가 열린다.
농어회를 먹겠다며 고향으로 돌아간 장한은 전란의 시대에 냉철한 상황판단과 최적의 타이밍으로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정확하게 판단했기에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알려진 순갱노회라는 고사성어에는 낭만이 아니라 당시
중국의 지독한 혼란상이 반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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