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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병영까지 갓 수확한 신선한 상추 보급

구름위 2017. 1. 1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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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병영까지 갓 수확한 신선한 상추 보급

6·25전쟁과 상추


 

깡통 통조림서 벗어난 계기가 된 6·25전쟁  수경재배·냉동선 발달로 병참체제 변화

 

   치열한 전투 후 막사로 돌아왔을 때,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준비된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런 군대의 사기는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집에서 먹는 것처럼 신선한 고기와 싱싱한 채소로 맛깔나게 조리한 식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은, 그리고 평화 시에는 온수 목욕과 조리한 식사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곗바늘을 조금만 거꾸로 돌려보면 전쟁 중 신선한 재료로 방금 요리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후방이라면 모를까 최전선에서는 엄청난 사치였다. 일선 병사들은 주로 통조림을 먹으며 싸웠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군대 급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만들어진 전쟁이다. 전선의 병사가 처음으로 통조림 음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통조림과 건조식품이 아닌 집 밥처럼 신선한 재료로 만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6·25전쟁이 계기가 됐지만 주로 유엔(UN)군에 해당하는 말이었으니 남의 이야기다.

 전선의 음식은 오랜 세월에 걸쳐 변했다. 19세기 나폴레옹 이전까지 일선에서 먹는 음식은 형편없었다. 야전의 병사에게 지급되는 고기는 상했고 곡물은 부패했다. 신선한 채소는 현지 조달이 아닌 한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부패한 음식을 먹은 병사들은 괴혈병에 걸렸다. 그러자 나폴레옹이 당시 1만2000프랑의 거액을 상금으로 내걸고 프랑스군이 먹을 음식을 보관할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이때 통조림이 발명됐다.

 

기사사진과 설명
6·25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미 취사병이 병사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모습. 필자제공

6·25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미 취사병이 병사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모습. 필자제공



 제1·2차 세계대전 때 병사들은 통조림과 건조분말 식품을 먹으며 싸웠다. 미군은 통조림 햄, 분말계란과 우유, 분말 주스를 마셨다. 하루 세 끼 매일 통조림을 먹다 보니 신선한 음식을 몹시 그리워했다. 그런데 6·25전쟁을 계기로 UN군은 통조림이나 말린 육포가 아닌 냉동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직접 조리해 먹을 수 있게 됐고, 신선한 상추와 오이·양배추 등으로 샐러드도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전투에 참가한 다수 병사는 여전히 C-레이션과 통조림, 건조식품으로 이뤄진 B-레이션을 먹었지만 6·25전쟁을 계기로 미군의 병참체제가 바뀌었다.

 미국은 어떻게 전선의 병사들에게까지 신선한 고기와 채소를 보급할 수 있었을까? 깡통 통조림이 아닌 냉동육의 공급은 1950년대 냉동선의 발달 덕분이었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이 싱싱한 채소 공급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하기 쉬운 채소가 상추로 배추·토마토·오이와 달리 상온에서 이틀을 넘기지 못한다.

 하지만, 병사들은 아사 아삭 씹히는 신선한 상추를 먹고 싶어 했다. 상추는 사실 서양 역사에서 군대와 관련이 깊은 채소다. 상추가 정열의 채소이면서 동시에 치유의 야채이기 때문이다. 상추는 고대로부터 다산의 신에게 바친 제물이었다. 이집트 신화에서 상추는 풍요와 다산의 신인 민(Min)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는데 상추가 정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에는 상추가 진통제로 쓰였다. 서기 1세기, 네로황제 시대에 활동했던 그리스 의사 디오스코리데스는 로마 군인을 수술할 때 상추에서 나오는 액체를 진통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서양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역시 상추의 즙은 아편처럼 진통 효과가 있다고 했으니 고대 로마군에서는 야전병원의 필수품목이었다.

 서양인의 식탁에서도 상추는 빼놓을 수 없는 재료다. 샐러드를 만들 때 주로 들어간다. 하지만, 전쟁이 한창인 한반도에서 상추를 대량으로 재배해 보급할 수는 없었다. 미국 본토에서 직접 실어올 수도 없고 일본에서 구매도 어려웠다. 위생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도 우리처럼 분뇨를 비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미군의 위생 기준에 맞지 않았다.

 이때 도입한 기술이 수경재배 농법이다. 상추를 비롯해 오이·토마토·양배추 등 필요한 채소를 흙이 아닌 필요 영양분이 녹아 있는 배양액으로 재배하는 것이다. 미군은 도쿄와 교토에 대규모 수경재배농장을 만들어 상추를 재배했다. 1950년에 100만 ㎏, 이듬해에는 158만 ㎏을 생산해 한국전선에 공급했다. 수경재배농장에서 수확한 상추는 세척과 포장을 끝낸 후 도쿄와 교토의 공군기지를 출발해 다음날 아침 한국에 도착, 트럭으로 일선의 병영까지 배달돼 병사들의 식탁에 올랐다.

   야전의 병사들 식탁에 상추 한 포기가 올라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큰 의미가 있다.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단지 맛있는 식사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집에서처럼 신선한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 전쟁터에 고립돼 있다는 느낌, 잊힌 존재가 아니라 집에서 또 나라에서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야전의 병사에게 통조림이 아닌 신선한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관심과 노력이 최강 군대가 된 비결이 아닐까 싶다. 작은 관심이 만든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