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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모두에게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 프랑스 찜닭
16세기 종교전쟁을 마무리한 프랑스 국왕 앙리 4세
국민에 꿈·희망의
상징으로 전통 찜닭 ‘코코뱅’ 탄생
종교전쟁 중 생 바틀레미 학살(프랑스와 드부아 작). 필자제공 |
16세기 말 프랑스 국왕이었던 앙리 4세가 한 말이다. 국민 모두에게 일요일마다 닭 한 마리씩을 먹도록 해주겠다는 공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의 일이었는데, 당시 프랑스는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모든 국민이 일주일에 한 번 닭고기를 먹기란 쉽지 않았다. 앙리 4세는 지키지도 못할 것 같은 약속을 왜 했을까? 듣기에 좋은 말이니까 일단 뱉어놓고 보자는 무책임한 왕이었기 때문일까?
이 무렵 프랑스 국민은 절대적으로 위로가 필요했다. 36년 동안 지속했던 종교전쟁인 위그노 전쟁이 끝나면서 나라는 황폐해졌고 국민들 사이에는 갈등의 앙금이 켜켜이 쌓였다. 지도자라면 백성을 어루만지고 다독일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시점이었다.
위그노 전쟁은 프랑스에서 신교인 기독교도와 구교인 가톨릭교도가 싸웠던 전쟁이다. 1562년 예배를 올리던 신교도를 가톨릭 세력이 공격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대규모 전투가 치러졌다. 겉보기에는 종교간 갈등, 구교 세력의 탄압에 대한 신교의 저항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신흥 부르주아 세력과 기존 귀족 간의 갈등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의 결과 국토는 철저하게 파괴됐고 갈등의 고리는 깊어졌지만 피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정치가 안정돼 프랑스가 이후 유럽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앙리 4세는 위그노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종전 후에는 패자와의 화합을 위해 정치적·종교적 뿌리인 프로테스탄트 신교를 떠나 구교인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이 과정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온 국민이 일요일마다 먹는 닭찜을 제시했던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동양보다 더 발달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임진왜란에 시달린 것만큼 프랑스 역시 전쟁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앙리 4세가 내걸었던 공약은 과연 실현됐을까?
지금 프랑스의 국민 음식이라는 찜닭요리 코코뱅(coq au vin)이 이때 발달한 요리다. 물론 앙리 4세의 공약이 만든 요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이 무렵 국민이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먹을 수 있을 만큼 발전의 기틀은 마련했으니 완전 ‘흰소리’만은 아니었다.
코코뱅은 프랑스어로 포도주에 빠진 수탉이라는 뜻이다. 냄비에 닭고기와 각종 채소를 넣은 후 와인을 붓고 장시간 졸여서 닭고기에 포도주 향이 스며들게 한다. 방법이나 재료는 다르지만 얼핏 보기에 간장으로 졸이는 우리 안동 찜닭과 닮았다.
코코뱅은 프랑스 농민들이 주로 먹었던 요리에서 비롯됐는데 대중적인 음식에서 출발해 지금은 프랑스 모든 국민이 즐겨 먹는 요리로 발전했다. 그런데 농민들은 왜 암탉도 아닌 수탉을, 그것도 포도주에 푹 담가서 조리했을까?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먹게 해주겠다는 앙리 4세의 약속과 관련이 있다. 아무리 약속이라지만 없는 닭을 갑자기 키워낼 수는 없다. 농민들이, 또 서민들이 닭고기를 먹으려면 값은 싸지만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는 늙은 수탉을 먹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귀족과 부자는 연하고 부드러운 어린 암탉을, 농민과 서민은 수탉을 먹었다. 맛없는 수탉을 와인에 담아 오랜 시간 동안 끓이거나 졸이면 살이 부드러워져 어린 닭고기만큼 맛있는 요리가 된다.
코코뱅이라는 프랑스 닭찜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실제로 앙리 4세의 공약과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사실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고 없고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 농민들이 질기고 맛없는 수탉을 요리로 재창조했고, 희망의 상징으로 삼으면서 그 공로를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고 아픔을 어루만져 준 지도자, 번영의 꿈을 실현해 준 지도자에게 돌렸다는 사실이 앙리 4세와 프랑스 찜닭 코코뱅 이야기의 본질이다. 꿈을 제시하고 이루게 해준 지도자만이 받을 수 있는 찬사다.
국민에게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약속했던 지도자가 또 있다. 미국의 제31대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다. 후버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식량청 청장으로 미국은 물론 연합국의 식량까지도 총괄해 지휘했던 인물이다. 전쟁 때 성공적으로 양식을 조달한 업적과 상무부 장관으로 일했던 능력을 인정받아 1928년 공화당 후보로 지명돼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때 내걸었던 구호가 “일요일에는 모두의 식탁에 닭고기를, 모든 이의 집 차고에는 자동차를”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약 10년이 지난 후, 전쟁의 상처가 아물 때 새로운 삶, 번영의 시대를 약속했던 것이다. 후버 대통령의 공약은 곧이어 닥친 세계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다음 루스벨트 대통령 때에 실현됐다.
비슷한 공약을 했던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닭고기는 아니지만 “쌀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다. 1962년 10월, 북한의 제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당시 내각 총리였던 김일성이 한 말이다. 50년이나 지난 지금 결과는 반대다.
꿈을 보여주는 것이 리더의 권리라면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은 리더의 책임이고 의무다. 반대로 의무를 저버린 채 권리만 찾는 리더는 어떤 리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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