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軍의 중요한 군량·구급 약품 역할 ‘톡톡’
- 양배추
제1·2차 세계대전 때도 식사 때마다 밑반찬 역할 항바이러스 성분이 있어 소염제 대용으로 사용해
양배추 |
‘자유 배추절임’(Liberty Cabbage)으로 바꿔 부른독 일 양배추 절임 사우어크라우트.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식량 절약 포스터. 필자제공 |
군대 음식에 대한 기억은 나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는데, 일부 세대에게는 양배추 김치가 군 시절에 대한 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물론 기억의 상당 부분은 결코 맛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첫째 우리 한국인의 입맛에 양배추 김치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김치는 역시
배추김치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양배추는 주로 배추 값이 폭등했을 때 대신 먹던 부식이다. 속된 말로 땜빵 김치였으니 원본 배추김치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며 짝퉁은 상대적으로 더 괄시를 받았다. 그렇다고 양배추가 장병들한테 괄시만 받은 것도 아니다. 군대 햄버거에는 양배추가
빠지면 허전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양배추는 사실 군인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채소다.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군인들이 양배추를 먹으며 전쟁을 했다. 양배추가 서양 채소이기 때문인데 특히 로마제국의 전성시대를 연 로마 병사들에게 양배추는 식사에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음식이었다.
로마 군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반드시 절인 양배추를 갖고 떠났다. 양배추로 따뜻하게 수프를
끓이거나 신선한 샐러드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혹은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 빵과 함께 먹었다. 절인 양배추는 우리 김치만큼이나 저장성이 좋기
때문에 이동이 잦은 로마 군인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로마군은 당시 야만족으로 취급했던 게르만족과 달리 고기보다 주로 빵과 채소를 먹었던
채식주의 군대였기 때문에 양배추가 더욱 환영받았다.
로마군이 굳이 양배추를 가지고 이동한 것은 양배추가 중요한 군량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양배추는 식량이면서 동시에 전투 중 부상을 입었을 때에 대비한 구급 약품 역할도 했다. 상처가 났을 때 양배추를 이용하면 감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현대과학에서도 양배추에는 항바이러스 성분이 포함돼 있어 급할 때는 소염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진작부터 양배추의 효능을 알았다. 1세기 때, 나폴리 주둔 로마함대 사령부의 해군 제독이면서 유명한 박물학자였던
플리니우스는 박물지(The Natural History)에 양배추는 약용으로도 쓰는 채소로 부기를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18세기 대항해 시대 때 탐험가들이 원정을 떠날 때 양배추 절임을 실었던 것도 괴혈병 예방을 위한 것이었으니 서양 군대에서 양배추를 식용과
치료용·예방용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양배추에 대한 인기가 높았으니 로마의 정치가이며 문인이었던 카토는
“양배추는 채소 중에서 으뜸이다. 요리로 먹어도 되고 날로 먹어도 된다. 날로 먹을 때는 식초에 담갔다 먹는다. 놀라울 정도로 소화를 도우며
이뇨작용을 한다. 연회에서 술을 많이 마실 때는 가급적 많은 양의 양배추를 날로 먹는 것이 좋다. 양배추를 먹었을 때와 확실히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마음껏 술을 마셔도 괜찮다”며 양배추 예찬론을 폈다.
양배추는 군대와 이렇게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채소였기 때문에
로마시대 전쟁은 물론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식사 때마다 병사들의 밑반찬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서로 대치하고 싸웠던
독일군이나 미국과 영국, 연합군 병사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양배추 절임은 독일이 유명하다. 현대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배추절임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우리나라 김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식초에 절인 독일 양배추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다.
사우어크라우트는 독일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도 많이 먹는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병사들은 자기네 전통 음식이었으니 당연히 식사 때마다 사우어크라우트를 먹었고 영국·미국
병사들 역시 평소처럼 식초에 절인 양배추를 먹었다. 그런데 독일군과 총부리를 맞대고 싸우는 입장에서 먹는 음식이름이 독일어였다는 것이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다. 암묵적으로 독일 음식에 대한 반감이 퍼졌는데 평소 익숙한 음식을 거부할 수는 없었는지 이름만큼은 독일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사우어크라우트를 자유 배추절임(Liberty Cabbage)이라고 바꿨다. 비단 양배추 절임뿐만이
아니었다. 독일과 관련된 것은 모조리 바꿨는데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원한 프랑크 소시지 역시 자유의 소시지라고 했다. 심지어 어린이들이 걸리는
전염병인 풍진이 영어로는 독일 홍역(German measles)인데, 독일이라는 단어가 싫어 풍진마저 자유 홍역이라는 말로 바꿔 불렀을
정도다.
터무니없는 말장난 같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이런 분위기가 국민 사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적국 독일에 대한
적개심과 독일 음식에 대한 분노까지도 국민의 단합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는 음식 이름 하나도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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