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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무적함대 격퇴 숨은 공로가 비스킷?

구름위 2017. 1. 1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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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무적함대 격퇴 숨은 공로가 비스킷?

비스킷


130척의 무적함대, 무기와 군량 잔뜩 실은 느림보  영국의 빠른 기동력…새 전투식량 비스킷이 한 몫

 

 

기사사진과 설명
스페인 무적함대의 패배, 필립 루더부르 작(1796년). 필자제공

스페인 무적함대의 패배, 필립 루더부르 작(1796년). 필자제공


 

기사사진과 설명
영국 해군을 지휘한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필자제공

영국 해군을 지휘한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필자제공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Armada)가 영국을 향해 출발했다. 스페인 국왕 필리페 2세의 공격 명령에 따라 130척의 함선이 닻을 올린 것이다. 다양한 명분과 목표가 있었다. 유럽의 가톨릭을 보호하고 스페인 상선을 공격하는 영국 해적을 응징하며, 스페인령 네덜란드 반군에 대한 영국의 지원을 차단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종 목표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영국을 점령, 필리페 2세의 여동생을 영국 여왕에 앉힌다는 계획이었다.

 곧이어 역사적인 해전이 벌어졌다. 무적함대는 수적으로 압도적이었지만 영국 전함은 빠른 기동력으로 스페인 함대를 뒤쫓다 영국 동부해안에서 기습 공격으로 무적함대에 큰 타격을 입혔다.

 무적함대의 패배는 충격이었다. 물론 알려진 것처럼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치면서 바로 유럽의 제해권을 장악한 것은 아니다. 또 무적함대가 궤멸될 정도로 파괴된 것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당시 절대 약자였던 영국 해군이 유럽의 최강 스페인 해군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무적이라는 스페인 함대는 왜 영국 해군에 패했을까? 여러 이유를 꼽는다. 날씨가 영국을 도운 측면도 있고, 무기를 지적하기도 한다. 무적함대 함포는 사정거리가 짧지만 영국은 사거리가 긴 최신 함포를 장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스페인 함대는 대형 전함이었던 반면 영국은 기동력 중심의 소형 전투함이어서 기습 공격이 성공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리고 스페인 함대가 생각만큼 무적의 함선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덧붙여 그동안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요인으로 전투식량의 차이를 꼽는 전문가도 있다.

 스페인 해군은 전투할 때 제한된 식량을 싣고 다니며 단기간의 결전을 통해 승부를 보거나, 장기전에 들어갈 경우는 대규모 보급선단을 끌고 다녔다. 반면 이 무렵 영국 해군은 전투식량을 개선, 빵 대신 비스킷을 대량으로 싣고 다녔기 때문에 선적량을 줄여 기동력이 높아졌고 추가 보급 없이도 장기전이 가능해졌다. 이 부분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지만, 전세에 우위를 점하는 데 적지 않은 변수가 됐다는 것이다.

 당시 스페인 무적함대의 구성을 보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무적함대는 약 130척의 함선으로 구성됐다. 해전을 지휘한 경험이 없는 육군 장군,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 알론소가 지휘해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네덜란드로 가서 그곳에 주둔 중인 약 2만 명의 스페인 육군을 태우고 영국을 공격한다는 계획이었다.

 병력과 식량을 실어야 했기 때문에 130척의 함선 중 실제 전투선은 35척 정도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주로 상선을 개조한 수송선이었다. 그리고 이 함선에 대포와 총검·화약은 물론 엄청난 군량을 실었다. 스페인 기록에 의하면 당시 무적함대가 실었던 식량은 1100만 파운드, 다시 말해 약 495만㎏의 빵과 4만 갤런의 올리브기름, 1만4000톤의 포도주, 60만 파운드, 즉 약 27만㎏에 이르는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실었다. 엄청난 군량인 것 같지만 돼지고기만 봐도 해군과 육군 합쳐서 1인당 5~6㎏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상선을 개조한 수송선 중심이었던 데다 무기와 병사들이 장기간 먹을 식량을 잔뜩 싣고 떠났으니 빠른 기동에는 부적합했다.

 반면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 전함은 날렵했다. 기본적으로 함선의 크기는 훨씬 작았지만, 상대적으로 민첩해 작전 기동이 훨씬 쉬웠고 함포 성능 역시 무적함대보다 뛰어났다. 여기에다 15세기 말 영국 해군이 주로 싣고 다닌 식량은 비스킷이었다.

 비스킷이라고 하지만 지금처럼 맛있는 과자인 비스킷과는 거리가 멀었다. 딱딱하게 말린 빵 덩어리로 당시 수병과 선원들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딱딱한(hard) 장비(tack)라는 뜻으로 하드태크라는 뜻으로 불렀을 정도다.

 문자 그대로 비스킷(Biscuit)이었기 때문에 건조하고 딱딱했는데 비스킷은 라틴어로 두 번 구웠다는 뜻이다. 빵을 두 번 구우면 수분이 완전히 제거돼 장기 보관이 가능해진다. 미국 남북전쟁 때는 무려 15년이 넘은 비스킷을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너무 딱딱하게 굳어 먹다가 치아가 부러질 정도였기 때문에 총알보다 무서운 비스킷이라고도 불렀다. 이 때문에 장기 항해할 때 보통 빵은 썩어 먹을 수 없지만, 비스킷을 실으면 먼 바다로도 나갈 수 있었다. 15세기 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영국 선원들이 주로 비스킷을 먹었다는 내용이 자주 보이니 이 무렵 비스킷이 보급된 것으로 본다.

 덕분에 영국 해군은 기동이 자유로웠다. 무적함대를 물리친 프란시스 드레이크는 소형 함대로 정박 중인 대규모 스페인 전함을 기습 공격, 30척의 전함을 침몰시키고 보급품을 불사르는 등 초반부터 기습공격으로 무적함대를 무력화시켰다.

 영국이 무적함대와의 해전에서 승리한 요인은 기상조건을 비롯해 다양하다. 하지만 새로운 전투식량 비스킷과 같은 2% 디테일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작은 부품이 모여야 전체가 완성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