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쟁이야기

“나치 독일에 이기려면 홍당무를 먹어라”

구름위 2017. 1. 1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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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에 이기려면 홍당무를 먹어라”

홍당무


2차 대전 때 식량 70%를 수입에 의존했던 영국

U-보트 공격으로 곤욕…채소 자급 캠페인 전개

기사사진과 설명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어린이들이 먹은 홍당무 막대 사탕. 필자제공


 

전쟁 중에도 한참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간식을 먹여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어린이들은 무엇으로 군것질을 했을까? 홍당무 막대 사탕을 먹었다. 막대기에 홍당무를 끼워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처럼 빨거나 깨물어 먹었다.

 전시에는 무엇으로 생일 케이크를 만들었을까? 평소처럼 크림 케이크 대신 홍당무로 케이크를 만들었다. 적은 양만 배급되는 밀가루·설탕으로 케이크를 만들 수는 없어 홍당무를 갈아 홍당무 케이크를 만들었다.

 1939년 10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 영국 정부는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홍당무를 먹자는 캠페인을 펴기 시작했다. 물론 홍당무만 먹자는 운동은 아니었고 앞이나 뒷마당에 밭을 일궈 채소를 직접 길러 먹자는 캠페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홍당무 재배를 적극 장려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는 매일 아침 5분씩 요리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전쟁이 한창인데 뜬금없이 웬 요리 프로그램일까 싶지만, 부족한 식료품을 갖고 맛있는 음식, 영양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자는 취지에서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시청률이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식료품 대부분은 배급제로 전환됐고, 그나마도 부족해 제대로 구할 수도 없었으니 이용 가능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 방법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홍당무를 이용하는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는데, 그중에는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고 영국과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 사람들까지도 즐겨 먹게 된 음식도 있다. 바로 우리가 먹는 것과 비슷한 홍당무와 양파가 들어간 카레 소스다. 카레에는 홍당무가 빠져서는 서운한데 바로 2차 대전 때 적극적으로 장려했던 요리법에서 비롯됐다. 영국의 카레는 우리 카레라이스와 요리법이 다르니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홍당무와 양파를 듬뿍 넣고 만드는 카레 소스는 우리와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생일에는 홍당무로 케이크를 만들기도 했지만 아이들 간식으로 홍당무 쿠키도 준비했다. 홍당무 샌드위치에 홍당무 푸딩·고로케·스크램블·수프는 물론 홍당무찜에 홍당무구이까지 모든 음식에 홍당무가 들어갔다. 심지어 주당들은 홍당무로 술까지 만들었는데 홍당무를 잘게 썰어 당밀과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면 값싸게 술을 빚을 수 있었다.

 1939년부터 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줄기차게 홍당무를 먹었으니 영국인들은 홍당무에 그만 물리지 않았을까? 오히려 반대였다. 전쟁 발발 이듬해인 40년부터 홍당무 수요가 꾸준히 늘었다. 홍당무 재배와 소비를 적극 장려한 정부의 캠페인, 식료품이 전반적으로 부족하지만 홍당무는 풍부해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 홍당무를 많이 먹어야 승리에 도움이 된다는 애국심도 작용했겠지만 홍당무를 먹어야 실제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홍당무에는 비타민 A가 많고, 카로틴 성분이 풍부해 홍당무를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고 홍보했다. 특히 어두운 밤에도 물체를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야간 시력이 좋아진다는 것이었다. 전쟁 기간 중 영국은 당연히 등화관제를 실시했다. 독일 공군의 야간 공습에 대비해 어둠이 내리면 일체의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통제했고, 밤만 되면 어둡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홍당무를 먹으면 야간 시력이 좋아진다고 하니 영국인들이 열심히 홍당무를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왜 이렇게 홍당무를 많이 먹으라고 장려한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영국은 자국민이 먹는 식량의 70%를 수입에 의존했다. 고기는 50%, 치즈·설탕 70%, 과일 80%, 곡물은 70%, 그리고 버터는 90%를 외국에서 들여왔다.

 나치 독일은 전쟁 시작과 함께 잠수함 U-보트로 식량을 포함해 전쟁 물자를 싣고 영국으로 오는 선박을 모두 침몰시켰는데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40년에만 72만8000톤의 식량이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바다에 빠졌다.

 전시에도 계속 식량을 수입에만 의존하면 전 국민이 굶주림에 시달릴 판이었다. 이 때문에 영국은 “승리를 위해 밭을 가꾸자(Dig for Victory)”라는 운동을 전개했는데 채소를 직접 가꿔 식량을 자급하자는 캠페인이었고, 그 중심이 되는 채소가 홍당무였다. 미국이 ‘승리의 정원’ 캠페인을 통해 시금치 재배를 장려한 것과 비슷하다.

 영국 정부는 당시 식량 자급이 절실했다. 이 때문에 밭 가꾸기 운동과 같은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편 것인데 단순히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차원 때문은 아니었다. 식량 자급률이 높아지면 식료품 수송과 호위에 필요한 병력·전략을 무기와 탄약 등의 수송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 중 펼친 승리를 위한 밭 가꾸기, 홍당무 많이 먹기 캠페인 등의 결과로 45년 전쟁이 끝날 무렵 영국은 국민이 먹을 식량의 75%를 자국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식량 수입 비중이 전쟁 전 70%에서 전쟁 말기에는 25%까지 떨어진 것이다. 홍당무 많이 먹기 운동은 승리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