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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주스 한 잔이영국 해군 구했다

구름위 2017. 1. 1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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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주스 한 잔이영국 해군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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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혈병의 습격

1792년부터 1815년까지

수병 사망원인 81%가 괴혈병

1955명 싣고 항해 떠난 전함

1300여명 병으로 잃기도

 

특효약은 레몬·오렌지

군의관 린드가 1747년 밝혀내

英 함선 레몬주스 선적 의무화

기사사진과 설명
괴혈병 치료효과를 밝힌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 
필자제공

괴혈병 치료효과를 밝힌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 필자제공


 

레몬주스는 영국 해군을 구한 음료였다. 당시 영국 해군 규정은 모든 함정의 수병들에게 의무적으로 레몬주스를 마시도록 했다. 때문에 배에서 가장 흔한 것이 바로 레몬주스였다. 왜 영국 해군은 유람선도 아니면서 레몬을 싣고 다녔을까?

 이유는 다음의 기록 때문이다. 1792년부터 1815년까지 23년간 사망한 10만3,660명의 영국 해군 수병 중 전투 중에 전사한 수병은 6.3%에 지나지 않았다. 함정이 파손되거나 화재 등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약 12.2%, 반면 절대 다수인 81.5%에 해당하는 8만4,440명이 질병으로 사망했다. 도대체 어떤 질병이 이렇게 영국 해군을 괴롭혔을까?

 가장 극적인 사건이 1744년에 일어났다. 발단은 1739년 10월 23일, 스페인에 대한 영국의 선전포고, 즉‘젠킨슨 선장의 귀’라는 별명의 전쟁이었다. 전쟁 발발 8년 전, 영국 무역선 선장이었던 젠킨슨이 밀무역을 하다 스페인 순시선에 체포돼 귀가 잘렸다. 귀국한 젠킨슨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당시에는 개인의 사소한 일로 치부돼 잊혀졌다. 그러다 영국과 스페인이 갈등을 일으키면서 젠킨슨의 귀를 핑계로 전쟁이 시작된 것인데 진짜 이유는 남미 시장에 대한 이권을 놓고 벌인 다툼이었다.

 이때 영국이 스페인의 뒤통수를 치는 작전을 세웠다. 멀리 아시아에 함대를 파견해 당시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비롯해 아시아에서 스페인이 누리던 이권을 빼앗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740년 조지 앤슨 제독을 사령관으로 여섯 척의 전함이 지구를 한 바퀴를 도는 항해에 나섰다.

 영국을 떠난 지 5년 후인 1744년, 조지 앤슨 제독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식민지 탈취 대신에 적지 않은 경제적 이익을 챙겨서 돌아왔지만 결과는 충격이었다. 떠날 때 1,955명이었던 수병 중에서 돌아 온 사람은 고작 600명 남짓이었다. 그것도 전투로 인한 전사자는 불과 네 명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가 모두 질병으로 사망했는데 대부분 사망 원인이 괴혈병이었다.

 괴혈병은 비타민 C의 결핍으로 생기는 병이다. 초기 증세는 잇몸에서 피가 나는 것으로 시작해 온몸에 반점이 퍼지고 사지가 점차 마비되다가 이가 빠지고 염증이 생기며 몸 전체가 썩어 들어가며 결국 갈증 속에서 고열에 시달리다 사망한다. 보통 항해를 시작한 지 6주가 지나면 어김없이 괴혈병 환자가 생겼다. 괴혈병의 치료법은 간단해서 비타민 C가 풍부한 레몬이나 오렌지와 같은 신선한 과일이냐 채소를 섭취하면 증상이 금세 사라진다. 그러나 당시에는 비타민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괴혈병의 원인도 알지 못했다. 물론 예전에도 레몬이나 오렌지 등의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괴혈병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다만 괴혈병에 걸리지 않은 것이 레몬 등의 과일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인지 확실하게 몰랐을 뿐이다.

 게다가 장기간의 항해 중 부패하는 식량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쉽게 썩는 채소나 과일을 배에 실을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긴 항해 도중 신선한 야채나 과일은 먹지 못하고 곰팡이 핀 비스킷과 부패한 고기만 먹다가 괴혈병에 걸렸다.

 조지 앤슨 함대의 참사가 있은 후인 1747년, 영국 해군 군의관 제임스 린드가 괴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환자를 여섯 그룹으로 나누어 동일한 식사를 지급하면서 각각의 그룹에 별도로 사과 술, 산성 음료, 식초, 바닷물, 레몬 두 개와 오렌지 한 개, 그리고 보리차와 양념을 먹였다. 그 결과 오렌지와 레몬을 먹은 환자 그룹이 확실한 치료효과를 보였고 제임스 린드는 이 실험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남극과 호주를 발견한 제임스 쿠크 선장이 1768년 세계일주 항해를 떠나기 전, 린드의 논문을 읽고 보리 싹인 맥아(麥芽)와 레몬 대신 값이 훨씬 싼 양배추 절임을 싣고 떠났다. 결과는 2년의 항해 후 괴혈병으로 쓰러진 환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이후 레몬, 오렌지, 양배추 절임을 싣고 장기 항해를 떠나는 선박이 늘면서 괴혈병 환자가 크게 줄었다.

 1795년 영국 해군성에서 모든 해군 함선은 반드시 레몬주스를 선적하라는 규정을 마련했다. 수병들에게 의무적으로 레몬주스를 마시게 한 것이다. 1805년의 트라팔가 해전에서 전사한 넬슨 제독이 죽기 직전 레몬주스를 마신 까닭이다.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를 통해 영국을 구한 것처럼 매일 마시는 레몬주스 한 잔이 괴혈병으로부터 영국 해군, 나아가 모든 해군 장병과 선원을 구했다. 

1805년 10월 21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가 프랑스 해군을 격파했다. 30척의 프랑스 전함 중 18척이 나포되거나 격침됐다. 나폴레옹에 대항해 영국에 승리를 안겨준 트라팔가 해전이다. 넬슨 제독은 하지만 이날 포탄 파편이 가슴을 관통해 전사했다. 사망 직전, 부상으로 인한 고열과 갈증에 시달리며 목마름을 호소하는 제독에게 부하들은 레몬주스를 마시게 했다. 넬슨 제독의 마지막 레몬주스는 그저 평범한 주스 한 잔이었을까? 아니면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